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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역사

불교의 역사(53) - 유식 불교(1) / 유식 불교의 문제 의식

by 아미타온 2024. 8. 25.

<불교의 역사(53) - 유식 불교(1) / 유식 불교의 문제 의식>

 

<유식 불교를 공부하던 일본 법상종찰 나라 흥복사(고후쿠지)>

 

 

1. 유식(唯識)의 뜻

 

유식 불교는 대승 중기에 여래장, 불성 사상과 함께

발달한 중요한 불교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식(唯識)"은 "오직 식(識)의 작용이다.",

"모든 것은 마음뿐이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 구조를 살펴보고,

이에 대한 통찰을 통해

해탈로 나아가는

일종의 해탈을 위한 심리 불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식 불교는 공(空) 사상과 함께

대승 불교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다음의 하나의 비유를 통해

유식불교가 문제 삼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경험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옛날 시골의 논둑이나 밭둑길을 걷다 보면

풀섶에서 썩은 짧은 새끼줄이 떨어진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간혹 그 새끼줄이 사람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다름 아니라 새끼줄을 뱀으로 착각했을 경우입니다.

 

뱀이 풀섶에서 몸을 늘이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뒷걸음쳤던 이러한 비슷한 경험을

우리들의 일상에서는 자주 접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재미있고 유익한

이치를 생각해낼 수가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왜 썩은 새끼줄을 하필이면

뱀으로 착각을 하였는가 하는 점입니다.

 

왜 뱀으로 착각하게 되었을까요?

 

새끼줄을 염주로 볼 수도 있었을 것이고,

긴 막대기로 볼 수도 있었을텐데

어째서 뱀으로 인식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가장 흔한 답변은

"당연히 새끼줄이 뱀의 모양을 닮았기 때문이다."라는 것입니다.

 

즉, 썩은 새끼줄이 뱀으로 착각되어 보이는 것은

새끼줄 자체가 염주나 꽃을 닮지 않고

뱀의 모습과 흡사하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주장에 동조를 합니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깊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답도 가능합니다.

 

새끼줄을 뱀으로 본 것은

새끼줄이 뱀을 닮은 것이 아니라,

새끼줄을 보고 뒤로 도망친 사람이

뱀에 대한 생각을 자신의 마음 속에 저장시켜두었기 때문입니다.

 

즉, 새끼줄을 뱀으로 보고 도망친 이유가

단순히 새끼줄이 뱀과 닮아서가 아니라,

새끼줄을 보고 있는 사람의 마음 속에

뱀에 대한 정보가 미리 있다가

새끼줄이라는 인연을 만나 착각 현상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거꾸로 하면

아무리 썪은 새끼줄이 뱀을 닮았다라도

바라보는 사람이 만약 뱀이라는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고

뱀이라는 형태를 본 적이 없다면

절대로 이 사람이 썪은 새끼줄을 보고 뱀으로 착각하여

도망가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새끼줄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인식, 마음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흥복사의 일본 국보 불두상>

 

2.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유식 불교는 이와 같은 두 가지 견해에 대해

두번째 견해에서 문제를 파악합니다.

 

즉, 이 세상은 모두 자기 마음이 지은 그림자일뿐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마음 속에

염주 생각을 간절하게 쌓아둔 경험으로 논둑길을 걸어갔다면

그 사람은 새끼줄이 뱀으로 보이지 않고 염주로 보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자기 마음이 한 짓거리만큼

세상도 그렇게 보이고, 과보를 받는 것입니다.

 

똑같은 산을 보고도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은

저 산에다 골프장을 지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고대광실같은 집에서 살고 싶은 사람은

저 산에다 대궐 같은 집을 지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등산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저 산을 보고

등산을 하고 싶다는 생각과 상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들이 어떠한 잘못을 해서 엄마가 화를 낼 때에도

아들이 객관적으로 잘못했기 때문에 당연히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엄밀하게 말하면 아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고

엄마의 평소의 화내는 습성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사람들은 항상 자신 바깥의 객관만 문제 삼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인식과 마음으로 모든 것을 그리고 만들어 놓고

그것에 집착하여 벗어나지 못하고 얽매이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라에서 제일 높은 흥복사 5층 목탑>

 

 

3. 착각의 원리

 

바로 자신의 마음과 자신의 마음에서 일으킨 업과

자신의 업이 일으킨 세계가 분리되어 따로 있지 않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이것들이 각각 따로 있다고 보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를 본다면

불교의 업과 수행의 원리를 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자신이 일으키는 업이란

수행적 입장에서 볼 때는 '마음짓거리(일체유심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식불교는 바로 이러한 우리의 마음의 현상을 문제삼고,

이러한 마음의 현상에 대한 철저한 관찰과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러한 현상적, 표층의 마음,

즉 지각하고 감각하는 마음뿐 아니라,

우리의 심층 의식까지 마음의 구조를 철저히 파헤쳐서

잘못된 마음을 바로잡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여래장이나 불성 사상에서는

본래의 청정한 마음이라는 불성적 측면에서 접근하는데 반해,

유식에서는 '나"라고 하는 자의식을 뿌리로 하여 일어나는

현상적 마음이나 번뇌 망상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적 마음이나 번뇌 망상에 의해

세상을 보면 착각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유식 불교는 이러한 현상적 마음의 구조를 명백히 밝히고

그 착각을 깨닫고 치유함으로써 해탈에 이르는 불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유식불교는 해탈을 위한

하나의 심리학적 체계를 가진 불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흥복사 동금당>

 

4. 유식불교의 세 논사

 

유식불교의 주요 경전으로는 <해심밀경(解深密經)>이 있습니다.

 

그리고, 유식을 체계화한 논사로는 세 사람이 유명합니다.

 

<유가사지론>을 지은 미륵(270~350)과

<섭대승론>을 지은 무착(395~470),

<유식30송>을 지은 세친(400~480) 입니다.

 

이 중 무착과 세친은 형제지간입니다.

 

형인 무착은 <섭대승론>을 지어 유식불교의 기본 구조를 세웠습니다.

 

세친은 부파불교의 대표적인 논서로

유명한 <구사론>을 쓰신 분인데,

처음에는 부파불교의 뛰어난 논사로서

대승불교를 공격하는 입장에 서서 대승불교를 공격했습니다.

 

그런데, 형인 무착의 지도로 대승불교로 귀의하고

대승을 공격했던 자신의 과오를 깊이 참회하였습니다.

 

세친은 후일 과거의 잘못을 참회하고

자신의 혀를 자르려고 하였는데,

자르려는 그 혀로 대승불교를 선양하려는

형 무착의 권유에 따라 <유식30송> 등을 저술하여 유식사상을 확립하였습니다.

 

그래서, 세친은 용수 보살과 함께 대승 불교의 대표적인 논사로서 유명합니다.

 

그리고, <서유기>의 삼장법사로 유명한 중국 당나라의 현장도

인도로 구법을 위해 유학을 했을 때 인도 나란다 대학에서

"계현"이란 유식의 장로로부터 유식 불교를 공부했습니다.

 

그는 많은 불경을 인도에서 가져와 번역한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유식불교를 인도에서 들여와 중국에 널리 전파하여

후일 유식불교 종파인 "법상종(法相宗)"을 확립한 이로도 유명합니다.

 

이러한 배경과 역사를 가지고 

우리의 인식과 마음에 대한 문제의식과

통찰을 통해 해탈을 추구해나가는 유식불교를 공부해 보겠습니다.

 

유식 불교는 우리의 마음의 구조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해탈을 추구하는지에 대해 다음 시간부터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