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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역사

불교의 역사(54) - 유식불교(2) - 유식의 마음 구조

by 아미타온 2024. 8. 29.

<불교의 역사(54) - 유식불교(2) - 유식의 마음 구조>

 

<안성 석남사 영산전>

 

1. 전5식(前五識)

 

그렇다면 유식불교에서는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요?

 

유식에서는 우리의 마음의 구조를

8가지로 구분하여 이해하고 있습니다.

 

제1식은 우리의 눈을 통해 형상과 색깔을 구분하는 시각,

제2식은 우리의 귀를 통해 소리를 듣는 청각,

제3식은 코를 통해 냄새를 맡는 후각,

제4식은 혀를 통해 맛을 구별하는 미각,

제5식은 몸을 통해 감촉을 아는 촉각입니다.

 

이 5가지를 전 5식(前五識)이라고 부릅니다.

 

전5식은 우리들의 감각 기관의 최전선에서

바깥 정보를 받아들이는 역할을 합니다.

 

즉, 우리의 5가지 감각기관을 통한 감각 작용입니다.

 

<의식 작용>

 

2. 의식(6식)

 

그리고, 제6식은 감각기관을 통해

받아들인 전5식을 뇌 작용을 통헤 종합, 정리하는 의식(意識)입니다.

 

우리들이 흔히 의식이 있다, 없다라고 할 때의 그 의식을 말합니다.

 

우리들이 책을 보고 그 뜻을 이해하거나,

아름다운 경치나 좋은 음악을 듣고는

감동을 하는 것도 이러한 의식의 작용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나도 보리심을 내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겠다는 의욕과 발심을 내는 것도,

여러가지 과거의 일들을 추억할 수 있고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것도

모두 이러한 제6식인 의식의 작용입니다

 

따라서 의식이란 우리들의 일상적인 마음입니다.

이 의식은 깨어있는 마음으로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들이 일상 생활을 할 수 있는 것도,

그리고 인류가 각종 과학이나 예술, 철학을 발전시켜

문명 사회를 만들수 있었던 원동력도 의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식은 항상하지 못해 끊긴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잠을 자거나, 기절하거나,

술에 만취하여 취하게 되면 이 의식 작용은 끊기게 됩니다.

그리고, 아주 깊은 선정에 들었을 때에도 의식활동은 중단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의식을 우리 마음의 전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전 5식과 제 6식(의식)은 우리들의 표층의식,

즉 표층의 마음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유식불교는 이러한 표층의 6가지의 마음이 아니라,

더 깊은 곳에 심층의 의식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7식과 8식>

 

3. 7식과 8식

 

6식인 의식보다 더 깊은 심층의식이 제7식입니다.

이 7식을 "말나식(Manas識)"이라고 합니다.

 

"말나(Manas)"라는 말의 의미는 '생각한다.",

'이것저것 헤아린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이 말라식은 항상 끊이지 않고 생각하는데,

그냥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자의식(ego)이기심이 항상 끼어들어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즉, '나'라는 색안경을 끼고

내가 생각하고

내가 무엇인가 한다는 생각이 항상 있는 마음입니다.

 

따라서, 유식에서는 제7식에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나'라는 자의식(ego)과 이기심이 발동하는 것은

바로 잠재되어 있는 말나식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우쭐해지는 자만감이나,

높은 사람에게 기죽는 열등한 마음을 내는 마음을 내는 것도 이 때문이고,

'나'에 대한 집착으로 나의 이익만 생각하고 각종 탐심을 내는 것도 이 말나식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의식으로 하는 행동도

사실은 잠재되어 있는 '말나식'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제 7식보다 더 심층의 깊은 '나'의 마음이 있습니다.

 

이것이 제 8식입니다.

 

<나한상>

 

4. 아뢰야식(8식)

 

이 8식을 "아뢰야식(Alaya識)"이라고 부릅니다.

 

'아뢰야'는 "밑에 깔려 있다.","감추고 있다.",

"창고에 쌓아두고 있다."는 의미를 지닌 말입니다.

 

그래서, 아뢰야식을 다른 말로 감출 '장(藏)'자를 써서

"장식(藏識)"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아뢰야식은 아주 깊은 심층에 있으면서

모든 것을 다 저장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과거의 경험이나 기억도

모두 여기에 쌓여 있습니다.

 

예를들어, 우리가 길을 가다 낳선 사람의 옆을 지나쳤는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당시에는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며칠 지나서 우연히

'아하! 그 사람이었구나."라고 생각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누구일까?' 라고 기억하는 것은 제6식의 작용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는 생각이 나지를 않다가

우연히 며칠이 지나서 떠오르는 것입니다.

 

그런 기억이 어디에 있다가 나타났을까요?

 

유식에서는 그것이 아뢰야식에 쌓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억뿐 아니라 습성이나 버릇도

이 아뢰야식에 모두 쌓여져 있는 것입니다.

 

평상시에는 예의도 바르고 점잖은 사람이

술만 먹으면 이상한 술버릇이 나오거나,

꽁하는 마음으로 있던 사람이 어떤 경우에

분노로 폭발하여 험악한 행동을 하는 경우도 가끔씩 경험합니다.

 

이것도 모두 아뢰야식에 그러한 습성이나 버릇이 잠재되어 있다가

어떤 조건을 만났을 때 나타나는 행동들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 아뢰야식에서는 과거의 경험이 모두 함장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의 한 생각,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업이 되어 쌓여있는 곳이 바로 아뢰야식이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아름다운 꽃을 보고 느낀 감정이나,

좋은 생각과 나쁜 생각들도

모두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여기에 쌓여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식30송에서는 아뢰야식을

"아뢰야식은 과거의 결과이며

미래를 낳는 일체의 종자(씨앗)이다."라고 말합니다.

 

<나한상>

 

5. 훈습

 

그리고, 이렇게 쌓이는 것을 "훈습(熏習)"이라고 말합니다.

 

법당 안에서 예불을 드릴 때 행 냄새가 몸에 배이는 것이나

안개 속을 걸어갈 때 자신도 모르게 습기로 촉촉히 젖는 것처럼

바로 우리들의 삶의 모든 경험이 우리들의 습성이나 취향으로

하나하나 쌓여 성격과 인격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아뢰야식을 통해

우리의 삶이 훈습되었기 때문이라고

유식에서는 바라보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취미가 다르고,

식성의 취향이 다른 것도

이 아뢰야식의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습관이 의식의 힘만으로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것은

바로 우리의 습관이 오랫동안 훈습된 것이기 때문에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치 무우를 된장에 넣어 한달이 지난 다음 꺼내면,

그 무우는 된장 냄새에 찌들어

그 냄새를 없앨려면 쉽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나쁜 습성을 고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이러한 아뢰야식도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인 흐름 속에 있습니다.

 

마치 강물의 흐름처럼

같은 강물이 계속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연이어 새로운 물이 계속해서 흘러가는 것처럼

아뢰야식은 이러한 강물의 흐름과 같은 성질이 있는 것입니다.

 

즉, 아뢰야식은 고정되거나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행위에 따라 아뢰야식도 계속 흐르고 변한다는 것입니다.

 

이상의 유식에서 이야기하는 8층의 마음의 구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감각, 지각하는

표층의식(제 1식~6식)이 심층의식에 쌓이고,

반대로 심층의식에 따라 우리의 행위가 나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심층 의식의 내용물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현재의 나의 생각과 행위가 중요한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지금의 한 생각이 나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유식 사상은 우리의 마음을 심층의식까지 깊게 파고 들어

우리의 마음의 구조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통찰을 통해

우리의 행동을 관찰하고 잘못된 점을 고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