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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역사

불교의 역사(55) - 유식 불교(3) - 심층의식과 종자식

by 아미타온 2024. 9. 10.

<불교의 역사(55) - 유식 불교(3) - 심층의식과 종자식>

 

 

 

1. 유식 불교와 마음의 구조

 

우리는 내면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무수한 생각과 감정을 매일 접하면서 살아갑니다.

 

바꾸어 말하면 이러한 생각과 감정의 부단한 흐름이

곧 우리의 삶의 생생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과 느낌의 흐름을 제대로 포착하고

이해하며 사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저 일어나고 사라지는 마음에 이끌려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고작입니다.

 

즉, 일어나고 사라지는 마음에 언제까지 이끌리고 예속되어

살아가는 삶이 우리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식 불교는 이러한 우리의 현실을 제대로 진단하여

이러한 허망한 마음의 예속 상태에서 벗어나

참다운 자유와 해탈을 향해 가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유식 불교의 출발점은 우리의 마음의 구조에 대한 이해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구조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만 

우리의 참된 모습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심층 의식과 훈습

 

앞에서 살펴본대로 유식 불교는 우리의 마음을

표층 의식인 전5식과 6식,

심층의식인 제7 말나식제8 아뢰야식으로 나누었습니다.

 

유식불교는 우리의 마음을

단순히 표층의식의 작용에 그치지 않고

심층 의식까지 깊이 있게 분석해내고 통찰해 내었다는데 큰 공이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심층 의식을 통해

유식 불교는 무엇을 문제삼는지를 다시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5가지 감각 기관을 통해

무엇인가를 보고 듣고 느끼며,

이를 6식인 의식을 통해 종합하고 정리합니다.

 

그런데, 유식불교에서는 이러한 의식 행위는

모두 심층 의식인 제8 아뢰야식에 쌓여 훈습이 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빨간 꽃을 보면 빨간 색이라는 형상과 느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아뢰야식에 쌓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유식에서는 이렇게 우리들의 모든 경험은

아뢰야식에 '종자(種子)'로서 훈습이 된다고 합니다.

 

'종자'란 경험을 통해 아뢰야식의 내면에 축적되어진 상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꽃을 보면 꽃의 형태나 색깔,

그리고 꽃을 본 느낌이 종자로서 훈습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쌓인 아뢰야식의 종자가

우리의 삶과 윤회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종자가 싹을 틔우기 위해서는 종자 자체만으로는 불가능하고,

종자에 수분이나 햇빛, 공기, 양분 등이 적절히 주어질 때 싹을 틔우게 됩니다.

 

아뢰야식의 종자가 우리의 삶 속에서 나타나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인연의 작용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의지 작용, 감각 기관과 감각 대상의 부딪힘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러한 의지작용과 부딪힘을 통해

새로운 경험과 인식이 표층의식을 통해 심층 의식에 영향을 미치면

종자는 싹을 틔워 활동하며 이렇게 해서 새롭게 생긴

경험과 인식을 통해 종자는 새롭게 변화하여 다시 아뢰야식에 쌓입니다.

 

따라서, 아뢰야식의 종자란 고정불변의 실체가 아니라,

인연가합의 존재로서 항상 변화하며 탄생과 소멸을 반복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삶은 

과거에 지은 말이나 언어, 행동, 무수한 관계 속에서 지은

갖가지 경험의 잔재인 종자에 의해 현실화된 것입니다.

 

그리고, 과거의 무수한 경험의 흔적으로 오늘의 자신이 태어났듯이

그렇게 오늘의 자기가 갖가지로 짓는 선과 악의 무수한 경험을 잔재로 하여

미래의 자기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즉, 오늘의 현실의 자기는 과거의 결과이며,

또한 동시에 미래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3. 제8아뢰야식과 종자식

 

유식불교에서 이러한 제8 아뢰야식의 종자식의 발견은

우리의 윤회와 삶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힌트를 제공해줍니다.

 

이와 같은 흐름을 아는 것은 유식 불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유식불교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보는 것은

그 대상의 객관적 실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우리의 아뢰야식에 쌓인 종자가 현행(現行)하여

나타난 마음의 그림자를 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앞에서 설명한대로 제8 아뢰야식의 종자로

훈습된 마음을 통해 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사람을 보고 사람에 따라서

밉다, 곱다, 좋다, 싫다 는 생각을 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즉, 우리의 훈습된 마음을 통해

예쁘고 밉다는 구별이 생기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의 틀이 있고 이러한 한계에서 놀아나는 한

우리는 깨치지 못한 중생이라는 것입니다.

 

 

4. 존재의 실상과 마음의 그림자

 

존재의 실상을 보지 못하고 마음의 그림자만을 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 우리가 남산을 본다고 했을 때

우리는 객관 대상으로서의 남산은 저기에 누구나 똑같이 있으며,

우리가 그러한 객관적인 대상으로서의 남산을 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러한 남산은 없고

각자의 마음을 통해 남산을 보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남산을 보았던 경험을 통해 남산을 봅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남산이 모두 다르게 보이는 것입니다.

 

남산을 가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보는 남산은 다릅니다.

 

그리고 남산 타워에서 하루종일 근무하는 사람이 보는 남산과

과거 이 곳에서 연애 추억을 가진 사람이 느끼는 남산은 다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남산에서 이별의 아픔을 맛본 사람이 느끼는 남산 역시 다른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인식에는 그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유식에서는 오직 "식(識 마음)"뿐이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