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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법구경(93) 면도칼로 자해하려 했던 삽빠다사 비구 이야기

by 아미타온 2024. 9. 20.

<법구경(93) 면도칼로 자해하려 했던 삽빠다사 비구 이야기>

 

<백제의 미소 서산 마애 삼존불>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시던 어느 때,

삽빠다사 비구와 관련하여 게송 112번을 설법하시었다.

출가한 비구 생활에 보람을 느끼지 못하던 비구가 한명 있었다.

 

그는 그렇다고 다시 세속으로 돌아간다는 것도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차라리 목숨을 끊으리라 결심했다.

 

그래서, 그는 한번은 독사가 들어 있는 항아리에 손을 넣었다.

그러나, 독사는 전생에 비구의 하인이었으므로 전생의 주인을 물지 않았다.

 

이 일 때문에 그는 '뱀의 주인'이라는 뜻의

"삽빠다사"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뒤에 그는 또 이번에는 날카로운 면도칼로 자기 목을 찔러 죽으려고 했다.

 

그런데, 날카로운 면도날이 자기 목에 닿는 순간

자기가 일생 동안 청정하게 비구 생활을 해온 것에 대한

환희와 만족감이 전신에 넘쳐흐르는 것을 느끼고 크나큰 행복감에 몸을 떨었다.

 

그런 환희를 체험하고 나서 그는 마음을

자기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모든 현상에 집중시켰다.

 

그리하여 그 관찰력에 의해 삼매를 이룰 수가 있었고,

곧 아라한 과에 도달하였다.

 

그는 수도원으로 돌아왔다.

 

그가 수도원으로 돌아오자 비구들은 그에게 어디를 다녀왔으며,

왜 손에 면도칼을 들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그 비구는 모든 일을 다 고백했다.

그러자 비구들은 왜 죽으려고 했으면서 죽지 않고 돌아왔느냐고 되물었다.

 

이에 삽빠다사 비구는 대답했다.

“처음에 나는 이 칼로 내 목을 자르려고 했었소.

그러나, 나는 내적 관찰을 지혜라는 칼로써 모든 번뇌를 끊어 버렸소."

그러나, 비구들은 그의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비구들은 부처님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렸다.

“부처님이시여,

이 비구는 생명을 끊으려고 목에 칼을 대었다가

아라한 과를 성취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같이 짧은 순간에도 아라한 과를 성취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대답하시었다.

"비구들이여,

그러하니라.

그것은 가능한 일이니라.

어느 누구든지 용맹스럽게 마음을 다잡아 고요하게 하여

내적으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모든 현상을 예리하게 관찰한다면

그는 어느 한순간에 아라한 과를 성취하게 되느니라.

예를 들어 어떤 비구가 걷는 행위에 마음을 집중시킨다고 할 때

그가 발을 들어 올렸다가 그 발이 다시 땅에 닿기 전에 아라한을 이룰 수도 있느니라.”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을 읊으시었다.

게으르고 노력 없이

백 년을 사는 것보다는
단 하루라도 사마타 위빠싸나¹⁾를
용맹스럽게 수행하는 것이 훨씬 낫다.


1) 사마타 위빠싸나 : 마음을 고요히 하여 자기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일념으로 관찰하는 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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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행복한 수행자

 

비구 생활에 보람을 느끼지 못하여 자살까지 감행하려 했던 비구!

 

왜 비구 생활에 보람을 느끼지 못했는지는

법구경에는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습니다.

 

오랜 기간 열심히 수행하였지만,

수행자로서의 성취를 이루지 못한 자책감 때문이었을까요?

 

자살까지 감행하려 했던 것을 보면

수행자로서의 삶이 행복하고 만족하지 못한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독사가 있는 항아리에 손을 집어넣어 독사에 물려 죽으려 했으나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면도칼로 목을 그어 죽으려고 결심하고

면도칼이 목에 닿는 날카로운 감촉을 느끼는 순간

자신이 계율을 잘 지키고 청정한 수행 생활을 해 왔다는

환희심과 행복감에 젖어들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환희와 행복을 맛본 다음부터

위빠사나 수행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집중력을 기반으로 짧은 시간에 수행의 완성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수행자뿐 아니라 모든 인간은 행복해야 합니다.

 

고통을 싫어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의 마음이 "불성(佛性)"입니다.

 

수행을 하더라도 수행만을 쫓는 삶이 더 허망해질 수도 있습니다.

 

수행의 성취만을 쫓는 행복하지 않은 수행자는

언제나 불만족의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비록 수행에 대한 열정이 있고,

의지와 인내를 갖추었다도 하더라도

그 열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성취에만 목매달고

끌려다니다 지치고 상처입은 수행자는 행복할까요?

 

마치 돈에 집착하고

사랑에 집착하는 사람처럼

수행에 집착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수행자라도 이와 같은 집착과 성취욕, 조급증을 물리치지 못하면

마치 암세포가 몸에 퍼져 자신을 죽이고 해치고 말 것이며

그것은 '수행'이라는 탈을 쓴 욕망과 집착의 또다른 이름입니다.

 

그 집착과 욕망은 결코 수행자를 행복하게도 편안하게도 해 주지 못합니다.

 

자신이 바른 수행자의 길을 가는 것은 수행의 길을 통해

얼마나 행복하고 평안한 길을 가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면도칼을 들이대는 자해의 순간

자신의 그동안 수행자로서의 삶에 대한

환희와 행복을 느꼈다는 설정이 좀 끔찍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수행자로서의 환희와 행복을 느낀 순간부터

그는 비로소 평온하고 행복한 수행자의 길을 걷게 되었고

이를 통해 바른 집중과 해방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2. 거문고 줄의 비유

 

"거문고 줄의 비유"로 유명한 한 수행자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수행자도 수행의 성취를 보지 못하자 

출가 생활을 그만두고 환속하려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 수행자에게

거문고 소리가 맑게 잘 나기 위해서는

줄을 너무 팽팽하게 조이거나 너무 느슨하게 풀어놓아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줄을 적당히 조율해야

맑고 고운 거문고 소리가 나고 훌륭한 연주를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수행의 성취에 목이 매어 조급해지고

지친 상태에서는 수행의 결과를 이룰 수 없습니다.

 

수행의 성취에 목이 매어 조급한 집착,

수행의 탈을 쓴 욕망을 멈추고 스톱해야 합니다.

 

행복하고 평온한 수행자가 된 상태는

줄을 적당히 조율한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행복한 수행자의 마인드가 된다면

용맹정진을 하더라도 그 수행자는 괴롭거나 지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행복하게 수행해야 수행의 성취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이

이번 법구경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