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역사(59) - 유식 불교(7) - 유식삼성 >
1. 유식삼성
앞에서 살펴본대로 유식 불교에서는
"변계소집"을 고통과 고통의 원인으로 봅니다.
"변계소집"은 사물을 존재하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색안경을 끼고 왜곡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새끼줄을 뱀으로 잘못 인식한 결과로
공포와 두려움의 고통을 느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유식의 견해에 따르면
고통은 현실을 그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그것을 잘못되게 분별한다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잘못된 분별을 교정하여
존재를 존재하는 그대로 수용하게 된다면 고통으로 벗어나게 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유식에서는
허망한 분별인 변계소집에서 벗어나
의타기성(衣他起性)과 원성실성(圓成實性)을
바르게 자각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변계소집성, 의타기성, 원성실성을
흔히 "유식3성(唯識三性)"이라고 합니다.
유식3성은 우리의 인식과 존재와 깨달음의 문제를
3가지 각도에서 탐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왜곡하고 집착하는 실상과
이러한 집착된 현실이 우리가 듣고 보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의 허망한 분별의 결과로 빚어진 것임을 일깨우고,
집착과 분별에서 벗어나서 있는 그대로를 깨달아가는데 근본 뜻이 있습니다.
유식에서 "지혜"는 이러한 측면을 말하는 것입니다.
2. 의타기성
먼저 의타기성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의타기성이란 문자 그대로 "타(他)"에 의해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타(他)”는 인연으로서의 조건을 말합니다.
즉, 원시불교 이래로 “연기”의 이치를
유식에서는 “의타기”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연기의 법칙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슴으로 이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연기의 법칙은 이것과 저것, 있고 없슴,
일어나고 사라짐의 조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
연기의 법칙은 존재의 궁극을 찾아 길을 헤맬 것이 아니라,
존재는 상호 의존성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것이며,
존재는 엄격한 의미에서 하나의 사건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있슴으로 저것이 있다는 것은
이것과 저것의 실체성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이것과 저것이라는 존재는
임시로 설정된 인연가합에 의한 현상입니다.
우리가 연기적인 조건에서
존재를 이렇게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진정한 존재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엄밀하게 본다면 '이것'과 '저것'이라는 지칭은 언어의 작용이며,
있고 없슴은 분별 작용이며,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은 개념적 사유의 작용입니다.
언어와 분별 작용과 개념적 사유는 다름 아닌 마음의 작용입니다.
그러므로, 연기를 유식에서는 분별에 의한 “의타기”라고 부릅니다.
분별이 사라지면 이것과 저것, 있고 없슴,
일어남과 사라짐의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즉, 2개의 볏단이 서로 의지하고 있는 것을 '의타기성'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H2O는 2개의 수소와
1개의 산소로 구성된 물의 화학적 구조입니다.
물이란 구조는 수소와 산소가 상호 의존된 상태로서
일정한 조건 아래에서 존재합니다.
물은 산소와 수소의 상호결합, 상호 의존성에서 존재하게 되는 까닭에
그 자체의 고유한 실체를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남편은 아내와 연결된 사회적인 상호 의존된 관계이자 관습입니다.
남편은 그 자체로 성품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것은 언제나 아내와 연결된 관계, 맥락에서만 의미를 가집니다.
아내의 죽음으로 혼자가 된 사람을 '남편'이라는 사회적 용어로 호칭하지 않습니다.
이런 까닭에 서로 의존된 모든 현상은
스스로 자체의 성품(실체)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것이 자체로 실체가 존재한다고 하는 착각이고,
언어적인 분별의 결과로서 마음의 작용일 뿐이지
스스로 성품을 가진 실체는 아닙니다.
이와 같이 의타기성(연기)은 항상 존재하고 불변하는 실체가 아니라,
인과 연, 즉 일정한 조건이 어우러진 임시적 존재로
만일 여러 조건이 흩어지면 존재도 흩어지는 그러한 성품입니다.
3. 원성실성
한편, 원성실성은 원만하게 성취하며 진실성을 구족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원성실성은 진실을 뜻하며, 불교적 용어로 진여(眞如)를 말합니다.
그런데, 유식에서는 이러한 원성실성에 대해
“원성실성이란 의타기성에서 변계소집을 멀리 떠난 것이다”(유식30송)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원성실성, 의타기성, 변계소집성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말한 것입니다.
의타기적인 연기적 현실을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면 그것은 원성실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인식의 주관과 객관이 오염되고 왜곡되게
대상을 보고 집착하면 변계소집이 됩니다.
선가에서 ‘평상의 마음이 그대로 도이다(平常心是道)’라고 했습니다.
<신심명>에서는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니,
오직 이것 저것 따지는 분별심과 간택심을 버리기만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말씀은 유식의 위의 말씀과 동일한 의미를 다르게 표현한 말씀입니다.
세계는 인연을 따라서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이 자체로 문제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젊음은 무너지고 늙어갑니다.
이 자체로 부족함이 없는 원성실성입니다.
이것은 언제 어디서나 널리 편재하고(遍),
한결같으며(常), 거짓됨이 없는(非虛) 것입니다.
4. 잘못된 분별과 망집에서 벗어나라
유식에서 원성실성과 의타기성은 같으면서도 다른 측면을 가집니다.
잘못된 분별에 물들지 않으면 원성실성과 의타기성은 같습니다.
이때는 깨끗한 의타기성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분별을 내면,
그 순간부터 고통스런 집착으로서 변계소집이 발생합니다.
이런 경우는 의타기성은 원성실성과 다릅니다.
이것은 물든(오염된) 의타기성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깨닫게 되면 현실이 그대로 정토이지만,
갈망에 물들면 현실은 정토가 아니라 예토가 된다는 것입니다.
의타기성이란 이와 같이 상호 의존되어 전개되는 현실인데,
우리는 자아와 세계라는 견해를 내고 여기에 집착을 합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실재로는 존재하지 않는 착각과 같습니다.
마치 새끼줄을 잘못 알고 뱀으로 오인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예를 들어, 강박이 심한 어떤 사람의 경우를 살펴보면
그는 부모를 비롯한 세상은 나를 비난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실수를 절대로 하면 안 되고,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무척 애를 씁니다.
이것은 세계, 세상에 대한 그의 견해입니다.
반면에 그 내면에는 왜소하고 불안한 자아개념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그는 비난받을까 전전긍긍합니다.
자신은 매우 나약하고 실수투성이고,
잘 하기 위해서 계속적으로 긴장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긴장 상태는 오래가지 못하고 폭발하거나 자포자기를 반복합니다.
그래서 쉴 날이 없습니다.
자아와 세계에 대한 잘못된 견해가 변계소집입니다.
이것이 불안과 우울증을 만들어냅니다.
자아와 세계를 변하지 않는
어떤 대상으로 파악하는 상태를 보통 얼음에 비유합니다.
이런 경우는 딱딱하고 차가워서 대인관계에서
매우 불편함을 야기하고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피곤하게 합니다.
이것이 변계소집입니다.
봄이 와서 변계소집의 얼음이 풀리고
강물을 이루면 이것을 우리는 의타기성이라고 합니다.
이곳에는 자아와 세계라는 고정관념이 없습니다.
다만 끊임없이 흘러가는 도도한 인연의 흐름이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의타기성의 무상성을 보지 못하면
결코 원성실성을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유식에서는
"의타기성에서 잘못된 집착으로 말미암아
자아와 세계를 실재하는 대상으로 인식하는데,
이런 자아와 세계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서,
이것들이 본래의 존재하지 않음을 자각하는 것이 원성실성이다."고 했습니다.
이런 까닭에 ‘의타기성, 변계소집성, 원성실성’은
바로 이 한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 한 마음에 집착하면 변계소집이요,
집착에서 벗어나면 원성실성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유식에서는 이러한 3가지 성품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지관(선정) 수행의 경구를 말합니다.
"변계소집성을 그치고(止,지)
의타기성을 바르게 관할 때(觀,관)
원성실성의 본질이 드러난다."
위 게송의 의미처럼 유식3성이란
미망의 세계(변계소집),
연기의 세계(의타기성),
깨달음의 세계(원성실성)를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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