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96) 많은 자식을 두었던 바후뿟띠까 비구니 이야기>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시던 어느 때,
자녀를 많이 둔 어머니 바후뿟띠까와 관련하여 게송 115번을 설법하셨다.
한때 사와티에 "소냐"라는 이름의 한 여인이 남편과 함께
결혼을 한 아들딸 열 넷과 그들에게 딸린 많은 가족을 거느리고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남편이 죽자 소냐는 재산을 자녀들에게 주지 않고 계속해서 자기가 관리했다.
자녀들은 얼마라도 재산을 상속 받기를 원했으므로 어머니인 소냐에게 이렇게 여쭈었다.
“저희 집에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저희들에게는 아무 재미도 없습니다.
저희가 어머님 한 분을 잘 모시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셔서 재산을 물려주시지 않으십니까?”
아들딸들이 이같이 하도 졸라대었으므로
결국 소냐는 그들이 자기를 잘 보살펴 주리라 믿고
전 재산을 모든 자녀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고 자기 몫으로는 조금도 남겨 두지 않았다.
자녀들에게 재산을 모두 나누어 주고
소냐는 먼저 큰아들에게 가서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큰 며느리가 불평을 늘어놓는 것이었다.
“시어머니께서는 마치 우리에게 두 몫이라도 주신 것처럼 우리 집에 와 계시는군요.”
그러면서 다른 불평까지 한정없이 늘어놓았기 때문에
소냐는 할 수 없이 큰 아들의 집에서 나와 둘째 아들에게 갔다.
그렇지만 둘째 며느리도 첫째 며느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번에도 그 집을 나왔다.
이같이 하여 그녀는 아들집을 다 돌아다니고 나서
딸네 집들을 돌아다녔지만 그 누구도 어머니를 오래도록 편히 모시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월이 지나면서 그들은 어머니가 문 앞에 나타나기라도 하면
귀찮다는 듯 인사도 하지 않고 존경도 표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어 소냐는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마침내 그녀는 자식들에게 의지하기를 그만두고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다.
비구니가 되어서 그녀는 '자녀(뿟띠까)가 많았다(바후)'는 뜻으로
'바후뿟띠까'라고 불리었고, 그렇게 알려지게 되었다.
바후뿟띠까 비구니는 자기는 나이가 많아서 비구니가 되었으므로
소중한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여생을 수행 정진에 몰두해야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었다.
그녀는 밤을 꼬박 새워가면서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 수행법을 실천했다.
그러던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그녀가 밤을 새며 정진하는 것을 신통력으로 보시고
광명을 놓으시어 마치 그녀 앞에 앉아 계신 듯이 모습을 보이시며 이렇게 설법하셨다.
“설사 백 년을 산다 해도 여래의 가르침을 의지하여
수행하지 않는 사람의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느니라.”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을 읊으시었다.
성스러운 부처님의 가르침을 모르고
백 년을 사는 것보다는
단 하루라도 부처님의 위없는 성스러운 가르침을
알고 사는 것이 훨씬 낫다.
이 가르침을 듣고 바후뿟띠까 비구니는 아라한 과를 증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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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식에게 버림받는 고통
늙어서 자식에게 냉대와 멸시받는 고통만큼
부모로서 느끼는 큰 고통은 없을 것입니다.
모든 재산을 자식들에게 유산으로 나누어 주었지만,
그 유산을 분배받은 자식들은 마치 단물만 빼먹는 개미처럼
홀로 된 어머니를 모시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늙은 어머니가 자기집 문 앞에 나타나면
냉대와 멸시를 했다면 이 늙은 어머니가
얼마나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지가 상상이 갑니다.
오늘날에도 자식의 배은망덕한 패륜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지만,
부처님 당대의 고대 인도 사회에도
이런 패륜이 횡횡하고 있었슴을 알 수 있습니다.
공자는 늙은 부모를 잘 봉양하는 것은
단순히 물질적으로 봉양하는 것을 넘어
부모의 마음에 근심을 주지 않도록
얼굴빛까지 조심하고 밝게 가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봉양은 고사하고
늙은 부모를 버리는 패륜아들이
고대나 현대나 참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일을 당했을 때 보통 부모라면
자녀들의 배은망덕에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분노와 원망 속에 세월을 보내거나,
자신의 처량한 신세 한탄을 하며 비탄과 슬픔 속에서 여생을 마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식에게 버림받는 고통 속에서
자식들에게 의지하는 것을 그만두고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어
마지막 여생을 수행자로 살아가고자 하는 선택을 하였습니다.
그녀는 자식을 14명이나 둔 것으로 보아
육칠십이 넘은 할머니 나이에 출가하였으므로 출가 생활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경전에는 그녀의 출가 생활에 대한 내용이 일부 나와 있는데,
너무 나이가 많아서 탁발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그 외의 다른 소임도 거의 감당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도반들을 위해 물을 끓이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할머니가 되어 출가하였지만,
자녀들의 배은망덕을 보고 세속적 삶에 대한 염리가 확고했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함부로 낭비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2. 정진제일 비구니
그레서 수행 정진에 몰두해야 되겠다고 용맹정진의 마음을 단단히 먹었습니다.
그녀는 잠을 줄이면서까지 부처님이 가르쳐주신 수행법을 실천했습니다.
경전에 의하면 그녀는 너무 늙고 나약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수행은
절의 둘러쳐진 담을 짚어 가며 경행(經行, 걸으면서 하는 명상)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숲 속에서 경행할 때는 촘촘하게 우거진 나무들을 잡고 걸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늙은 할머니가 되어 출가하여 이렇게까지 수행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부처님은 친히 그녀에게 다가가서 불법의 진리의 가르침을 주시며 격려하셨습니다.
“설사 백 년을 산다 해도 여래의 가르침을 의지하여
수행하지 않는 사람의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느니라.”
이 가르침을 받고 그녀는 더욱 수행에 정진하여
법안이 열리며 마침내 아라한 과를 증득하였다고 합니다.
후일 부처님은 "지치지 않고 정진하는 비구니 중의 제일"이라고
바후쁘띠카 비구니를 칭찬하셨다고 합니다.
비구 중에 정진 제일은 천안 제일의 아나율 존자라고 한다면
비구니 중의 정진 제일은 늙어서도 지칠줄 모르고 정진하여
깨달음을 성취한 바후뿟띠까 비구니라고 칭송하셨습니다.
부처님의 경책을 듣고 잠이 많은 장애를 극복하여
두 눈을 부릅뜨고 수행에 정진하여
천안 제일의 성자가 되었다는 아나율 존자의 이야기도 훌륭합니다.
그러나, 몸과 마음이 노쇠한 늙은 나이에 출가하였어도
늙음이란 장애를 오히려 살 날이 얼마남지 않았으므로
더욱 수행 정진해야겠다는 의지로 다잡아
뜨거운 열정과 신념으로 수행에 정진하여
결실을 이룬 바후뿟띠까 비구니는 더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깨달음은 결코 남녀노소의 성별과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보리심'이라는 불씨를 정진이라는 연료를 통해
활활 타오르게 피어나는 것에 있습니다.
바후뿟띠까 비구니는 활활 타오른 보리심을 가진
영원한 청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처님께서는 열반에 드시기 전에
"세상은 무상하니 부디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고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늙은 나이에도 무상한 삶 속에서
불법을 향해 정진한 아름다운 비구니 스님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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