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98) 세이야사까 비구의 음행 이야기>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시던 어느 때,
세이야사까 비구와 관련하여 게송 117번을 설법하셨다.
세이야사까라는 이름을 가진 비구가
습관적으로 수음(手淫)을 하고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전해 들으시고,
그를 불러 그런 행동은 도와 과를 성취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서 어리석은 짓이라고 꾸짖으시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계율을 정하시어
모든 비구들로 하여금 그 같은 성적 쾌락에 탐닉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그리하여 그 같은 파계 행위를 할 경우
승단으로부터 일시적으로 승려의 자격을 정지당하게 되었다.
그런 비구들은 스무 명의 비구들에 의해 감시당하고,
그 비구가 참회하여 다시는 그런 행위를 저지르지 않는다고 인정되었을 때
비구 전원의 동의로써 비구 자격을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이 계율을 정하시고 나서 덧붙여 이렇게 충고하셨다.
“이런 종류의 파계 행위는 금생에는 물론
다음 생에서도 업보를 받게 되느니라.”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만일 나쁜 일을 저질렀거든
그것을 계속하거나 되풀이하지 말라.
또한 그런 행동을 즐겨서도 아니 되나니
나쁜 행위가 쌓이면 괴로움으로 인도될 뿐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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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욕
이번 법구경 이야기는
출가한 비구의 성욕 이야기입니다.
이 출가 비구는 매일밤 여인에 대한 갈애와 집착으로
습관적으로 수음을 하는 수행자였습니다.
그래서, 수행을 해야 하는데 수음을 행하여
공부에는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쉽게 피로하고 기력이 없어 교단에서 문제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가족도 버리고 독신 생활을 선언하여
갈애와 집착을 끊고 오직 수행에만 전념하여
해탈을 이루려는 목적에서 출가한 수행자가 출가 비구입니다.
이러한 출가 비구가 이성에 대한
지나친 갈애와 집착으로 습관적인 수음을 행하고
제대로 가야할 수행의 길을 걷고 있지 있으므로
부처님께서 그냥 넘어 가실리 만무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출가 비구의 계율로서 정하여
일시적으로 비구의 자격을 정지하고 참회하게 하고
그러한 행위를 다시 저지르지 않는다는 것이 인정될 때
이 비구를 감시하는 20명 비구 전원의 동의로
비구 자격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었습니다.
당시 출가 수행자에게 있어 성욕이 많이 문제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아라한은 "욕망의 지멸"에 이른 존재이고,
출가 비구는 아라한을 목표로 삼고 수행하는 수행자인데,
욕망 중에서도 성욕을 끊지 못해 괴로워하는 수행자들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부처님은 이성에 대한 욕망으로 괴로워하는 출가 비구들에게
부처님은 방편으로 부정관을 많이 권하셨다고 합니다.
무덤에 가서 죽은 시체가 퉁퉁 불어 살과 가죽이 문드러지고
시체에서 벌레가 생기고 썩어 가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아름다운 여인의 몸 또한 죽으면 저렇게 변해갈 것이라는 것을 통찰하며
여성의 몸에 대한 과도한 갈애와 집착에서 벗어나라고 지도하셨습니다.
출가하여 독신을 서원한 스님이
성욕에 대한 지나친 갈애와 집착이
자신을 괴로움으로 이끌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계율을 정하고 부정관과 같은 방편을 사용했슴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이
성에 대한 억압과 혐오와 금기로 변질된다면
이것 또한 부처님이 의도하신 바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2. 재가자와 오욕락
오늘날은 성이 많이 개방된 세상입니다.
우리는 예전보다 성에 대한 억압이나
금기로부터는 많이 자유로와진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특히, 가정 생활을 하는 재가자들에게 있어
성욕에 대해 어떠한 중도적 견해를
가져야 할지는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오래전에 대학생인 후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신이 가끔씩 포르노 비디오나
야한 비디오를 보는 때가 있는데,
불자가 된 이후부터는 볼 때마다
파계를 하고 죄를 짓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불교에서는 5가지 욕망의 충족인 '5욕락(五慾樂)'을 말합니다.
먹는 욕구, 자는 욕구, 성에 대한 욕구,
재물에 대한 욕구, 명예에 대한 욕구가 그것입니다.
그 중 먹는 욕구, 자는 욕구, 성에 대한 욕구 3가지는
몸을 가지고 있는 생물학적 존재인 인간에게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입니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먹어야 하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는 자야 하고,
후대를 남기고 사랑을 위해서는 성욕을 가지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불교에서 문제 삼는 것은 이러한 욕구에 대한 지나친 집착입니다.
먹지 말고, 자지 말고, 무조건 성욕을 가지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먹는 것에 지나치게 탐욕을 부려서
과식하여 뚱보가 되어 삶의 질이 떨어지거나,
지나치게 잠이 많아 게으르고 나태하여 해야 할 일을 못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성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성에 대한 집착이 지나쳐서
아무 여자나 집적대고 문란한 성관계를 맺고
매일 포르노 비디오에 빠져 공부도 하지 않고
기력이 빠져 허우적된다면 문제가 될 것입니다.
20대 초반 혈기왕성한 남자가
비디오를 보면서 성욕을 만족하는 수준인데,
과도한 죄의식을 느끼거나, 파계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종교, 윤리라는 이름으로 성에 대한 문제를
너무 금기시하고 지나치게 억압하는 사회 문화는
오히려 인간의 욕망과 자유를 억압하므로 더 큰 문제를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재가자는 재가자의 상황에 맞게
오욕락의 적당한 중도의 선을 지키면서
자신의 삶의 질을 누리면서 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의 위 법구경 이야기는 독신 수행을 서원한 출가 수행자의 이야기입니다.
재가자인 불자들의 '성욕'에 대해서는 훨씬 더 중도적 이해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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