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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법구경(97) 단 한벌의 옷을 보시한 레까사따까 이야기

by 아미타온 2024. 10. 7.

<법구경(97) 단 한벌의 옷을 보시한 레까사따까 이야기>

 

<서산 간월암>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시던 어느 때,

쭐레까사따까 부부와 관련하여 게송 116번을 설법하셨다.

사왓티에 아주 가난한 부부가 살았는데, 

그들에게는 단지 한 벌의 옷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쫄레까사따까(옷이 한 벌밖에 없는 사람)'라고 불리었다.

그들은 옷이 한 벌뿐이었으므로 함께 외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낮에는 아내가 수도원에 가서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밤에는 남편이 가기로 정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남편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있다가

즐거운 만족감이 충만하여 자기가 입고 있는

유일한 외출복을 부처님께 공양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그러나, 만약 자기가 입고 있는 옷을 공양하고 나면

자기와 아내에게는 아무것도 없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공양을 올리는 것을 뒤로 미루었다.

 

이같이 하여 그는 초경과 이경의 밤 시간을 지나보냈다.

그러다가 삼경에 접어들었을 때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만약 그것을 걱정하여 공양 올리기를 주저한다면

나는 네 군데 낮은 세계에 떨어지는 것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 나는 단 한 벌뿐인 이 옷을 과감하게 부처님께 공양하겠다.’

그는 이렇게 결심하고 옷을 부처님 앞에 갖다 놓고는,

마음에 기쁨이 솟아올라서 이렇게 외쳤다.  

“나는 이겼다!”

이때 꼬살라 국왕인 빠세나디가 이 법회에 참석하고 있었는데,

그는 누가 큰소리를 지르는 것을 듣고

수행관을 불러 무슨 사건인지 조사해 보라고 지시했다.

 

그 결과 국왕은 한 가난한 남자가

단 한 벌뿐이 옷을 부처님께 보시하고 나서

자기를 이긴 것이 너무도 기뻐서 소리를 질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왕은 그 남편이 한 장한 행동을 알고 이렇게 말했다.

“그 남편은 참으로 하기 어려운 일을 해냈다.

나는 그에게 보상을 해주고 싶다.”

파세나딧 왕은 곧 수행관에게 그에게 옷 한 발을 내리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그 남편은 왕으로부터 옷을 받자마자 다시 부처님께 바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왕은 다시 그 남편에게 두 벌의 옷을 하사했고,

남편은 또 옷들을 부처님께 공양했다.

 

이에 왕은 그 브라흐민에게 네 벌의 옷을 내렸다.

그러자 그는 그것을 또다시 부처님께 올렸는데,

이에 왕도 다시금 여덟 벌의 옷을 하사했다.

 

이같이 국왕으로부터 옷을 받아 즉시 그는

주저함 없이 부처님께 옷을 바쳤는데,

왕도 그에 따라 배로 보상을 해주어 그 옷은 마침내 서른 두 벌에 이르렀다.

 

이에 이르러 남편은 자기와 아내를 위한 옷 한 벌을 남겨 놓고는

나머지를 모두 부처님께 아주 기쁜 마음으로 공양하는 것이었다.

이 같은 광경을 다 보고 나서 왕은

이 남편은 아주 어려운 일을 한만큼

당연히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선언했다.

 

왕은 곧 사람을 왕궁으로 보내어

한 벌에 십만 냥이나 나가는 비단옷 두 벌을

가져오도록 하여 그것을 그 남편에게 내렸다.

 

남편은 그 값비싼 비단옷을 받더니

두 개의 우산 모양으로 만들어

하나는 부처님께서 머무시는

기원정사의 간다꾸띠(응향각)의 침상 위에 놓아 드리고,

나머지 하나는 자기 집 앞에 놓아 두어

비구들이 탁발을 할 때 그 아래에 서 있을 수 있도록 했다.

어느 날 파세나딧 왕은 기원정사에 들렀다가

자기 눈에 익은 비단옷이 우산으로 만들어져

부처님의 침상 위에 놓여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왕은 그것이 자기가 그 남편에게 내린 것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고 매우 기뻐했다.

 

그래서 왕은 다시 그 남편에게

곱 가지 물건을 네 개씩 추가로 하사했다.

 

그것은 코끼리 네 마리, 말 네 마리,

남자 여자 하인 네 사람, 심부름하는 아이 넷,

그리고 네 마을에서 걷는 세금과 현금 사천 냥이었다.  

 

 

비구들은 이 소식을 듣고 부처님께 사뢰었다.

“부처님이시여!

그 남편은 착한 행동을 하자마자 금생에 그 보상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만약 그 남편이 단 한 벌뿐인 외출복을 초경에 공양했다면

그는 국왕으로부터 일곱 가지 물건들을 열여섯 개씩 보상 받았을 것이니라.

그리고 그가 이경에 그렇게 했다면

그는 국왕으로부터 일곱 가지 물건들을 여덟 개씩 보상받았을 것이니라.

그런데 그는 마지막 시간에 공양했기 때문에

일곱 가지 물건을 네 개씩 받게 된 것이니라.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공양을 하려면

첫 번째 일어난 환희한 그 마음으로 미련없이 해야만 하느니라.

만약 그가 망설인다면 이에 대한 보상도 적고

또 시간적으로도 느리게 그 과보가 나타나느니라.

 

그 밖의 다른 착한 일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니,

너무 느리게 선행을 하다보면 병이 들거나 혹 죽게 되어

그 선행을 다 끝내지 못할 경우도 없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은 착한 일에서는 기쁨을 잘 느끼지 못하지만

나쁜 일에서는 훨씬 더 쉽게 쾌락을 느끼기 때문이니라.”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착한 행위는 급히 서두르고
나쁜 행위는 억제하라.
착한 행위에 느린 마음을 가지면
나쁜 행위에 즐거움을 느끼기 쉽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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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착한 사람이 되는 길

 

오산의 세마대에 가면 "보적사"라는 작은 암자가 있습니다.

그 암자의 대웅전 현판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諸惡莫作 (제악막작)  衆善奉行 (중선봉행)

 自淨其意 (자정기의)  是諸佛敎 (시제불교)"

 

"악한 일을 행하지 말고,

착한 일을 받들어 실천하라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청정하게 하면

그것이 곧 부처님의 가르침이다."라는 뜻입니다.

 

예전에 그 현판을 볼 때마다

불교를 가장 단순명료하게 표현한 글귀가 있다면

바로 이 짧은 게송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습니다.

 

이 게송을 더 축약하면

"착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착한 사람이 되는 길이란 어떠한 길일까요?

 

불교에서는 부처님과 수행자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행위를 가장 착한 행위라고 권장합니다.

 

그리고, 어렵고 가난한 이웃의 행복을 위해

보시하는 행위를 그 다음으로 착한 행위라고 봅니다.

 

이러한 공양과 보시와 같은 착한 행위를 하고

착한 사람이 되는 길은 불보살님께서도 기뻐하시는 길이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힘든 선택을 요구하는 때가 많습니다.

 

경전에서는 이러한 이야기들이 여러번 나옵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한 재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너무 기뻐서 

부처님을 위해 공양을 올리고 싶은 착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부처님을 위해 올릴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과 아내가 번갈아가며 입는 단벌 옷밖에는 없습니다.

 

공양을 올려야 할 것인가?

부부가 함께 입어야 할 단벌 옷만은 지킬 것인가?

 

<빈자일등>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자신이 구걸하여 모은 은전 한 닢으로

한끼 밥을 사 먹고 굶주림을 면할 것인가?

 

부처님께 공양 올릴 등 하나를 살 것인가?

 

 

2. 즉각적으로 착한일을 하라

 

그런데, 이에 대한 경전의 답은 분명하고 단호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라도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보시하는 착한 행위를 하라는 것이고,

그 착한 행위에는 반드시 인과적으로 착한 과보가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법구경 이야기는 더 나아가

착한 행위는 한시라도 머뭇거리지 말고

쇠뿔도 단김에 빼듯이 서둘러 행하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착한 일에는 기쁨을 잘 느끼지 못하지만

나쁜 일과 욕망에는 더 쾌감을 느끼기 쉬운 것이

중생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중생의 마음은 이러한 속성이 있으므로 

착한 행위는 머뭇대지 말고 즉시 행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입니다.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서 깊은 고민 끝에

"나는 이겼다." 라는 주인공의 환호처럼

착한 사람이 되는 길은 만만한 길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현실적으로는 착한 마음을 내기는 어렵고

나쁜 일과 욕망에 더 쾌감과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중생의 마음의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착한 행위는 급히 서두르고
나쁜 행위는 억제하라.
착한 행위에 느린 마음을 가지면
나쁜 행위에 즐거움을 느끼기 쉽나니."

 

이 게송은 이러한 인간의 마음에 대한

탁월한 통찰이 숨어있는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착한 사람이 되는 길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불보살님에 대한 공경심과 자비심을 바탕으로 하여 

자신의 이기심과 욕망을 이겨내는 

강한 사람의 길이라는 것을 잘 기억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