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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역사

불교의 역사(64) - 유식 불교(11) - 견도위, 수습위, 구경위

by 아미타온 2024. 10. 24.

<불교의 역사(64) - 유식 불교(11) - 견도위, 수습위, 구경위 >

 

 

1. 견도위

 

제3 견도위(見道位) 단계는

가행위에서의 유식의 지관 수행을 통해 

드디어 진리를 체험적으로 증득했다는 단계입니다.

 

선종에서 "견성(見性)" 했다는 것과 비슷한 의미입니다.

 

유식의 참다운 성품인 유식성(실재와 현상의 진실한 모습)에

통달했다고 하여 "통달위"라고 합니다.

 

이 단계는 인식하는 자아는

인식되는 대상을 떠나서 별도로 존재하지 못하고

인식 대상도 역시 그것을 인식하는 주관의 인식을 벗어나서는

존재하지 못한다는 연기적 속성을 확고히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는 외부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하는 사람의 의식에 현현되는 영상일 뿐임을 여실히 알고

여기에 대한 갈망이나 분별, 집착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것을 불교적 용어로 ‘분별이 없는 지혜(무분별지,無分別智)’라고 합니다.

 

무분별지를 통해 인식하는 대상에

탐착하여 갈망하거나 물들거나 괴롭게 살아가지 않고

전도몽상에서 깨어나 인연과 도리에 맞게 살아가되

얻을 바가 없는 없는 무소득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2. 수습위

 

그런데, 유식에서는 이러한 견도의 단계가 끝이 아닙니다.

 

유식에서는 과거부터 이제까지 쌓인

습기가 일시에 제거되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무시 이래로 쌓인 좋지 않은 습기가 제거되지 않으면

수행의 완성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견도위가 새로운 출발이 됩니다.

 

서원을 굳히고 지속적인 정진으로 바라밀을 수행하고

십지 보살의 단계가 되어서도 정진을 끊임없이 해서

마음이 텅 빌 때 비로소 식이 지혜로 전환이 됩니다.

 

이렇게 보살은 제 8식의 습기까지

벗어나게 되기까지 계속 수행하는데,

 이것을 제4 수습위(修習位)라고 합니다. 

 

즉, 보살행으로서의 자리 이타행을 통해 

'나다'라는 습기와 미세한 생각까지도 텅 비어야

제8식이 텅빈 거울처럼 바뀌게 되는 대원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수습위에서는 보살로서의 자리 이타행의 보살행이 강조됩니다.

 

유식에서는 <십지품>에 나오는 초지부터 10지까지의 보살의 단계가

이 수습위의 단계에 해당됩니다.

 

 

3. 구경위

 

그러면 진리와 삶이 원만하게 완성되는

제5 구경위(究境位)에 도달하게 됩니다.

 

구경위는 부처를 증득하는 결과를 맞이하는 최종 계위라는 뜻입니다.

 

유식30송에서는 구경위를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물듦이 없는 법계이다.

생각할 수 없는 착함과 영원이다.
안락한 해탈의 몸으로서

이것이 위대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이다." 

 

위의 게송에서 '물듦이 없음'은 "무루(無漏)"를 말합니다.

 

"루(漏)"는 '집에 비가 샌다'는 의미입니다.

 

감각기관을 통해서 외적인 자극이 오면

 

그것에 물들어 분별과 내적인 습기로

말미암아 번뇌에 노출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무루는 구경위 단계의 마음으로

일체의 세간에 대해서 궁극적으로 물들지 않고, 

깨끗하고 원만하고 밝음의 상태를 말합니다.


이와 같이 번뇌가 소멸된 무루의 세계에서

진리와 합일되어 살아가는 법계를

"생각할 수 없는 착함과 영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몸은 안락한 해탈의 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몸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의미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자성신(自性身)입니다.

 

삶의 전체작용으로서 

사물과 사물을 서로 연결되어 존재하고

그 자체로 완결된 채로 온전하게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면의 큰 평화이고 우주의 전체성을 말합니다.

근본적으로 장애 없는 진실이며

모든 것을 감사하고 사랑하며 자연과 하나임을 기억합니다.

 

이것은 삶에 대한 충만과 행복감으로 표현되고

거울처럼 깨끗하고 스스로 빛나는 것입니다.

 

둘째는 수용신(受用身)입니다.

 

그 자체로 텅 비어 있어서

모든 존재를 그 자체로 그대로 수용하는 경험을 말합니다.

 

또한 모든 형상은 그 자체로 존재하기보다는

서로 의존되어 존재하는 관계로 수용하면서 서로를 배척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타자에 대한 존중과 인정에서 비롯된 나눔의 경험입니다.  

 

셋째는 변화신(變化身)입니다.

 

스스로 관념적이고 결정된 개념에

갇혀있지 않기에 인연에 따라서 변화가 됩니다.

 

인연을 따라서 화신을 나투어 인연있는 중생들에게

한량없는 법을 설하여 안락과 기쁨을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4. 3아승지겁의 긴 시간 

 

한편, 유식에서는 5단계의 수행인 5위를 닦는데

3아승지겁의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즉, 제1 자량위에서 제2 가행위를 거쳐

깨달음의 단계인 제3 견도위까지 1아승지겁이 걸립니다.

 

그리고, 제3 견도위에서 제5 구경위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또한 2아승지겁의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유식불교는

깨달으면 더 이상 닦을 것이 없다는 돈오돈수적 입장보다는

깨침 이후에도 닦음이 강조되는 돈오 점수적인 입장에 서 있습니다.

 

유식에서는 3아승지겁이라는

왜 이렇게 긴 시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요?

 

성불까지는 3아승지겁의 무한한 긴 시간이므로

어느 한 순간이라도 소흘히 보내거나

게으르지 말라는 의미가 담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수행의 단계에서 진리의 맛을 보는

제3견도위가 하나의 전환점이 됩니다.

 

진리를 증득하지 않았다면 아무 것도 시작되지 않는다는 의미와 함께,

견도를 이룬 후에도 중생을 구제하고 완성을 위한 노력은 끝이 없으며,

보살행이야말로 불도의 중요한 목적이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