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역사(62) - 유식 불교(10) - 자량위>
1. 수면
이번 시간부터는 유식의 5위 수행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앞에서 설명한대로 유식학파는 수행 과정을
자량위, 가행위, 견도위, 수습위, 구경위 라는
5가지의 단계의 수행 계위를 설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인 '자량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자량위(資糧位)"란 문자 그대로
내적인 자질(자資)과 역량(량糧)을 키우는 단계입니다.
흔히 유식에서는 "번뇌"를 "잠을 자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수면(隨眠)’이란 용어로서 표현합니다.
수(隨)는 ‘따르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주관과 객관에 의한 심리적인 인식에 마음이 끌려서
‘따라가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집착’과 같은 말로서,
기쁘거나 슬픈 혹은 고통을 받는 상황에서,
자신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어떤 감정에
손쉽게 끌려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수(隨)입니다.
다음으로 면(眠)은 ‘잠들다’는 뜻입니다.
잠든다는 것은 어떤 정보가
제8식 아뢰야식에 저장되어서 잠복되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인식의 상황에서 어떤 감정적인 경험을 하게 되면,
그것을 잊지 못하고 마음의 창고에 저장합니다.
이 과정은 무의식 상태에서 자동적으로 발생됩니다.
그런데, 그 작용이 미세하고 알기 어려움이
잠자는 상태와 비슷하므로 "면(眠)"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즉, "수면"이라는 용어는
유식에서 번뇌의 종자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중생심을 쫓아다녀 마음을 혼미하게 하고
제8아뢰야식에 함장되어 있는 것을 말합니다.
유식 불교에서는 수면을 2종류로 분류합니다.
하나는 자기 자신과 관련된 번뇌이고,
다른 하나는 세계 현상과 관련된 번뇌입니다.
전통적인 용어로는 전자는 번뇌의 장애(번뇌장煩惱障)라 하고,
후자는 앎의 장애(소지장所知障)라고 합니다.
번뇌장은 감정적인 열정과 관련됩니다.
이것은 자아가 존재한다는 믿음에 기초한 번뇌입니다.
반면에 소지장은 외적인 현상의 존재가
실재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어리석음에 기초한 번뇌입니다.
이것은 지혜의 결여로서 결국은 깨달음의 장애가 됩니다.
번뇌장이 정서적인 혼란을 가리킨다면,
소지장은 지적인 편견과 우매함을 포괄합니다.
2. 지관(정혜) 수행과 유식성
불교에서는 이러한 근본적인 2종류의
잠복된 번뇌를 치료하기 위해서,
지관(止觀) 혹은 정혜(定慧)의 명상법을 권장합니다.
여기서 지(止)란 '사마타'로서
대상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으로
마음의 고요함, 부동심,평정, 선정을 의미합니다.
관(觀)이란 '위빠사나'로서
현상을 바라보고 관찰하는 것으로서
결국은 통찰과 지혜의 개발을 말합니다.
이러한 지관의 수행에 의해서
결국은 번뇌의 소멸과 함께
식이 지혜로 전환되는 완성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을 유식의 본성(唯識性)에 머무는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자량위 단계는 이러한 유식의 본성에 안주하기 위해서
기초 체력을 다지는 단계입니다.
3. 자량위의 4가지 수행
자량위 단계는 인(因), 선우(善友),작의(作意), 자량(資糧)의
4가지에 의해 수행을 합니다.
첫째, "인(因)"은 불법을 많이 들음으로 얻어진 지혜가
우리 내면에 훈습되어 종자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는 "다문훈습(多聞薰習)"이라고 하는데,
법에 대한 들음이 수행의 출발인 것입니다.
일체가 마음이라고 강조하는 유식의 수행이
"다문(많이 들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선우"는 착한 벗으로 법을 주고 받는 도반을 말한다.
좋은 도반을 많이 사귀고,
이들과 법을 함께 공부해나가는 것이 수행에 있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셋째, "작의"는 불법에 마음이 서는 것을 말합니다.
불법에 대해 많이 듣고,
좋은 벗과의 공부에 의해
"나도 진리의 길을 가야 겠다"는 발심이 서는 것을 말합니다.
즉, 수행과 향상에 대한 마음인 보리심을 내는 것이 바로 작의입니다.
넷째, "자량"은 지혜를 증진시키는 것과 복덕을 쌓는 것을 말합니다.
복덕을 쌓는다는 것은 중생들을 이롭게 하기 위한 선행을 말합니다.
지혜를 증진시킨다는 것은 세속적 지혜와 반야의 지혜를 함께 닦음입니다.
세속적인 지혜는 사물과 자연 현상에 대한 이해와 응용,
사회 속에서의 적절한 대인관계와
정치,경제 구조 등등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이에 따른 올바른 가치관을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반야의 지혜는 흔히 말하는 연기법, 사성제에 입각한 정견(바른 견해)를 말합니다.
이를 통해 탐욕과 분노와 이를 조장하는
여러가지 어리석음에 기반한 번뇌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노력이 지혜입니다.
이와 같이 제일 첫 단계인 자량위의 단계는
4가지 수행을 통해 유식의 본성(唯識性)을 탐구하여 노력하는 단계이지만,
아직은 유식에서 흔히 번뇌라고 표현하는 수면을 항복시켜서 소멸시킨 것은 아닙니다.
이 자량위 단계는 유식적 표현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유식의 본성(유식성)을 구하여 안주하려고 하나,
번뇌장과 소지장이라고 하는 2취종자가 복멸되지 않고
내면에 그대로 내장되어 있으므로 유식성에 안주할 수 없다"
따라서 자량위는 아직은 충분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인식의 상황에서 쉽게 잠복된 번뇌인 수면에 끌려갑니다.
하지만 자량위 단계는 도덕적인 측면에서 건강하고,
사회적인 배려심이 깊고,
자아와 세계가 본래 존재하지 않음(공성)을 매우 깊게 잘 이해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유식에서는 화엄의 보살계위 중에 10주, 10행, 10회향의 단계가
바로 이 자량위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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