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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19) - 일본의 원효 대사, 잇펜 스님

by 아미타온 2024. 11. 27.

<나무아미타불(19) - 일본의 원효 대사, 잇펜 스님>

 

<일본 잇펜 스님상>

 

 

1. 잇펜 스님의 십일불이송(十一不二頌)

 

일본은 <나무아미타불> 염불하여

극락 왕생하려는 정토 신앙이 강한 나라입니다.

 

일본의 정토 조사 중에 잇펜(一遍) 스님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 원효 스님처럼 일본 천촌만락을 다니며

대중들에게 <나무아미타불> 염불 신앙을 가르친 분입니다.

 

잇펜 스님이 남긴 정토 게송이 있습니다.

 

십겁정각중생계(十劫正覺衆生界)

일념왕생미타국(一念往生彌陀國)

십일불이증무생(十一不二證無生)

국계평등좌대회(國界平等坐大會)

 

(법장 보살이) 십겁 전에 정각을 이루신 것은 중생계를 위해서였으니 

(중생들은) 일념에 아미타 부처님의 나라로 왕생하노라.

십겁과 일념이 둘이 아니라는 무생(無生)의 이치를 깨달으면

중생의 세계와 미타의 나라가 평등한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으리.

 

잇펜 스님의 이 게송을 '십일불이송(十一不二頌)'이라고 합니다.

 

<일본 무연고자 무덤>

 

2. 잇펜 스님의 출가와 재출가

 

잇펜 스님은 일본의 시코쿠 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집안은 무사 가문이자 유력한 호족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잇펜 스님이 태어나기 전에 천황의 권력을 넘보는 막부와

이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천황 세력이 정면으로 충돌했습니다.

 

그러나, 황권 회복을 목표로 거병했던 세력들이 크게 패하고

막부의 권한은 더욱 커졌습니다.

 

이때 황실의 편에 섰던 잇펜의 가문도

영지의 상당 부분을 몰수당하고 권력을 상실했습니다.

일족들은 살해되거나 유배에 처해져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잇펜 스님이 10살 되던 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무사였던 아버지는 출가해 산사에 은거했습니다.

 

잇펜 스님은 절에 맡겨졌고, 13살 때 정식으로 출가했습니다.

 

잇펜 스님이 출가한 도량인

<나무아미타불> 염불하는 정토종 계통이었습니다.

 

절에서 공부하고 수행하던 잇펜 스님인

25살 되던 해 아버지의 입적 소식을 들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간 잇펜 스님은 주변 친척들의 강권으로

환속하여 결혼해서 딸까지 낳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더우기 영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친인척 간의 다툼은

세속에 대한 일말의 정까지 끊도록 했습니다.

 

잇펜 스님은 자신이 세간 사람으로 적합하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속세의 삶을 접고 재출가를 결심했습니다.

 

1271년, 33살의 잇펜 스님은 가족들의 절망적인 시선을 뒤로 한 채

옛 스승을 찾아가 다시 스님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잇펜은 성지 순례 여행을 떠났습니다.

 

고야산을 오르고,

마노 순례길을 따라 길을 갔고,

동계 올림픽이 열렸던 일본 내륙의 나가노까지 이르렀습니다.

 

<나가노에 있는 선광사>

 

 

3. 선광사 순례 여행

 

나가노에는 유명한 정토 도량 선광사(善光寺)가 있었습니다.

 

선광사는 백제계 도래인이 세운 도량으로

백제 성왕이 일본에 보내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아미타 삼존불을 모시고 있는 도량입니다.

 

하나의 광배 속에 아미타 부처님과

관세음, 대세지 양 보살이 모셔진 불상으로

일본에서는 일본 최초의 아미타 불상인

선광사의 '빛의 아미타 삼존불'을 친견하면 극락 왕생한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일본의 정토행자들에게 있어서는

'일생에 한번은 선광사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꼭 한번은 참배해야 하는 성지라고 합니다.

 

잇펜 스님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아미타 삼존불을

친견하기 위해 나가노의 선광사에 이르렀습니다.

 

<이하백도 그림>

 

4. 이하백도 그림과 3년 기도

 

아미타 부처님을 친견한 잇펜은 선광사의 스님을 통해

선광사에 모셔져 있던 이하백도도를 보았습니다.

 

선광사의 이하백도도는 잇펜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탐욕과 분노의 강 위에 난 하얀 백도를 건너

사바 세계를 벗어나 극락 왕생하겠다는 강렬한 열의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선광사에서 이하백도도를 자신이 모사할 수 있도록 청하고,

이하백도를 모사하여 고향으로 갖고 돌아왔습니다.

 

잇펜 스님은 자신이 모사한 이하백도 그림을 보고 명상하며

아미타 부처님께 칭명염불 기도를 하리라 결심했습니다.

 

고향인 시코쿠로 돌아온 잇펜 스님은

일본 진언종의 개조인 쿠카이 스님이 수행한 적 있던 암봉에

'쿠보테라(窪寺)'라는 암실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선광사에서 모사한 이하백도 그림을 본존으로 하여 

극락 왕생에 대한 결정심을 갖기 위한 칭명염불 기도에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명상하며 칭명기도한지 3년이 지났습니다.

그 때 잇펜 스님의 확신을 통해 나온 안심의 게송이 바로 '십일불이송'입니다.

 

 

 

5. 정토 전법의 발원과 전법 여행

 

이 게송을 지은 후 잇펜 스님은 다음과 같이 결심했습니다.

 

“영원히 세속의 생활을 염리(厭離)하고,

바로 일체의 것을 버리고 떠나

내 몸, 내 생명을 불법을 위해 바치고 중생을 구제하겠다”

 

그는 첫 제도 대상으로 가족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아내와 딸을 찾아가 '나무아미타불'의 신묘한 이치를 들려주었습니다.

 

또, 이제부터는 길 위의 삶을 살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아내와 딸은 자신들도 함께 다닐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잇펜 스님은

아내에게는 '쵸이치(超一)',

어린 딸에게는 '쵸니(超二)'라는 법명을 지어주고 동참을 허락했습니다.

잇펜은 제자 1명과 두 명의 여인을 데리고 염불 전법의 길에 올랐습니다.

 

그 이후 잇펜은 15년간을 일본 방방곡곡을 다니며

민중들과 고락을 함께 하며

<나무아미타불>을 전법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일본 고베에 있는 잇펜 스님 유골탑>

 

6. 잇펜 스님의 안심과 입명의 삶

 

그렇다면, 이하백도도를 본존으로 삼아 칭명 염불 기도를 통한

잇펜의 확신을 드러낸 '십이불이송'의 안심(安心)'은 무엇일까요?

 

잇펜은 어떤 인식을 통해 아미타 부처님의 구원을 확신했고,

더 이상 자신의 수행에만 머물지 않고 자신을 버리고 유행하며

일체 중생을 '나무아미타불'로 인도하는 

보살의 실천의 길에 대한 '입명(立命)'의 서원을 세웠을까요?

 

잇펜은 이하백도의 그림을 본존으로 모시고 기도하고 명상했습니다.

 

이하백도는 탐욕과 분노의 강에 놓여진 

하얀 백도를 건너는 인간의 실존과 더불어

예토와 극락에서 우리를 격려하고 인도하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아미타 부처님을 나타낸 그림입니다.

 

그런데, 이하백도의 그림을 자세히 보면

극락과 예토, 나와 아미타 부처님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하얀 백도를 통해 하나로 연결되어 한 그림 속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법장 보살은 일체 중생을 구제하려는 깊은 비원을 발하여 

5겁 사유를 통해 48대원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조재영겁의 무한한 시간의 보살의 바라밀행 통해 

드디어 성불하여 아미타 부처님이 되셨습니다.

 

아미타 부처님께서 중생 구제의 비원인 48대원을 완성하셨을 때,

즉, 10겁 전에 정각을 얻어 아미타 부처님으로의 완성을 이루셨을 때

우리 중생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요?

 

잇펜은 아미타 부처님의 48대원에 의해

극락 왕생의 약속인 수기를 받았슴을 보았습니다.

 

즉, 아미타 부처님의 성불과 동시에

중생들의 극락 왕생의 업이 결정되었슴을 본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6자 명호>

 

7. 나무아미타불 6자 명호

 

아미타 부처님의 깨달음의 일체 공덕을 나타낸 것이 

바로 <나무아미타불>의 6자 명호입니다.

 

6자 명호를 칭명할 때 중생계의 범부도

아미타 부처님과 동일한 공덕을 얻을 수 있습니다.

 

즉, 하얀 백도는 바로 나와 아미타 부처님을 연결하는

6자 명호입니다.

 

기나긴 광겁을 윤회하던 중생에게 있어

아미타 부처님이 10겁 전에 정각하실 때

중생들의 왕생은 결정되었습니다.

 

중생들이 <나무아미타불> 이라고

일념 염불하는  때에 '정각왕생 불이일체'가 되어

극락 세계의 회상에 앉을 수 있는 것입니다.

 

10겁이라는 오랜 옛날에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성불하신 법장보살의 정각도,

극락 왕생을 염원하는 중생의 일념도 차별이 없어서,

절대의 명호인 <나무아미타불>에 귀명하는 일념에 따라

중생도 현 모습으로 미타의 대회상에 함께 앉을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3년간의 기도와 명상을 통해 잇펜 스님은

아미타 부처님의 성불과 동시에

일체 중생들의 왕생은 결정되어 있다는 복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미타 부처님의 구원>

 

8. 구원

 

이 복음을 자신뿐만 아니라

많은 존재들에게 널리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극락의 전도사로서

자신의 삶을 살겠다고 결심했던 것입니다.

 

잇펜 스님에게 있어

법장 보살의 정각(성불)은

곧 일체 중생의 구원의 확정입니다.

 

왜냐하면 법장 보살께서는

당신의 48대 서원이 모두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성불하지 않으시겠다고 서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법장 보살이 아미타 부처님으로 성불하셨다는 것은

일체 중생의 구원의 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중생들은 그 문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즉, 중생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18원에서 아미타 부처님이 약속하신 육자명호 자체에

구제의 힘이 있기에 오로지 명호만 염하면 왕생할 수 있음을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이 법칙을 잇펜 스님은 확신하여 안심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법칙을 널리 알리는 전법의 길을

자신의 입명의 삶으로서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