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아미타불(17) 조재영겁의 보살행>
1. 바라밀행
지난 시간에 아미타 부처님의 전생인
법장 보살의 '5겁 사유'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법장 보살은 5겁의 사유를 통해
48가지 큰 서원인 48대원을 세우셨습니다.
서원은 서원의 성취를 위해 정진이 필요합니다.
법장 보살도 서원을 세우는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서원의 성취를 위해 정진하셨습니다.
그 모습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전생의 보살 시절 보여주신 발심과 구도행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연등 부처님을 만나
서원을 발하고 성불의 수기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수없는 긴 세월을 다양한 몸을 현현하며
중생들을 구제하는 보살행을 통해 마침내 성불하셨습니다.
<본생담>의 수많은 스토리들은 성불에 이르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수많은 보살행을 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불은 보살의 바라밀행을 통해 구현됩니다.
2. 조재영겁
법장보살은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성불을 위한 바라밀행의 공덕을 쌓으셨을까요?
<무량수경>에서 말씀하시기를,
“불가사의한 조재영겁의 세월 동안
보살의 무량한 덕행을 쌓고 심으셨다"
(於不可思議兆載永劫, 積植菩薩無量德行)고 하셨습니다.
'불가사의한 조재영겁'이라는 기나긴 시간을 거치면서
끊임없이 보살행의 공덕을 쌓으셨던 것입니다.
‘조(兆)’와 ‘재(載)’라는 두 숫자는 매우 큰 숫자입니다.
‘조’는 우리들이 상상할 수 있는 숫자지만,
'재'는 처음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중국의 숫자 중 ‘재’보다 더 큰 숫자는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재’ 이외에 또한 ‘영(永)’이 있는데,
‘영(永)’은 영원하다는 뜻으로 시간을 초월합니다.
그 상상할수도 헤아릴 수도 없는 '불가사의한 조재영겁'의
보살행을 통해 끊임없이 공덕을 쌓으셨다는 것입니다.
법장 보살은 이처럼 오랜 시간 동안
보살의 무량한 덕행을 쌓으시고 나서
지금으로부터 10겁 전에 성불하여
아미타 부처님이 되셨고 극락 정토를 성취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당신이 세우신 48대원을 완성하셨으며,
모든 원 하나 하나가 진실로 원만하게 구족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법장 보살이 48대원을 완성하기 위해
반드시 왜 그렇게 긴 시간의 보살행이 필요하셨을까요?
그것은 시방의 모든 중생들을 다 구제해야 하는 서원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 시방 세계의 중생들이
10번만 염불하면 다 극락 왕생하게 하리라는
그 대비의 서원을 성취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3. 십법계
시방세계 중생의 범위는 한없이 넓어
이른바 ‘십법계(十法界)’의 중생들이 있습니다.
‘십법계’는 '사성법계(四聖法界: 불‧보살‧연각‧성문)'와
'여섯 가지 범부법계(凡夫法界: 천도‧아수라도‧인도‧지옥‧아귀‧축생)'를 포함합니다.
이 십법계 가운데서 불법계를 제외한
나머지 9법계의 존재들이 모두가 다 아미타 부처님의 구제의 대상입니다.
이것이 바로 법장보살의 48대원이 구제하는 시방 세계의 중생입니다.
시방 세계의 모든 중생들이
단 10번만 그 명호를 불러도 다 왕생하고,
시방 세계의 모든 중생들이 극락 세계의 환경에 접하기만 하면
다 불퇴전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 불가사의한 서원의 성취를 위해
얼마나 각고의 노력과 보살행이 이루어졌어야 했을까요?
정토 조사들이 아미타 부처님의 제 18원을 그렇게 찬탄하는 이유는
이 서원을 성취하기 위한 아미타 부처님의 자비심과 보살행의 깊이는
도저히 우리의 마음으로는 상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불가사의하기 때문입니다.
4. 나와 아미타불
일본 정토 조사 중에 신란 스님은
아미타 부처님의 서원과 서원의 성취가
오롯히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미타불이 오겁(五劫)이라는 긴 사유 끝에
세우신 서원을 깊이 생각해 보니,
그것은 오로지 나 신란을 위한 것이었다.”
무슨 뜻일까요?
우리는 경전을 해석할 때 3인칭의 관점에 선다.
석가모니 부처님과 아난 존자의 대화로 <무량수경>이 펼쳐진다면
부처님과 아난 존자의 대화를 지켜보는 3인칭의 관점에 서게 됩니다.
그런데, 신란 스님은 자신을 3인칭이 아니라 1인칭에 서게 합니다.
아미타 부처님과 자신의 1:1의 관계 속에서
아미타 부처님을 직접 만나
그 가르침을 받고 느끼며 자신의 신앙을 사유합니다.
지리산이 나를 향해 펼쳐져 있다 하더라도
자신이 지리산을 느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지리산이 나에게 어떤 의미와 가치를 주는 것인가요?
우주와 세상이 나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나는 나만의 우주와 세상을 느낍니다.
이것이 진실입니다.
아미타 부처님의 5겁 사유와 조재영겁의 보살행은
일체중생을 향해 있습니다.
그리고, 일체 중생을 건지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신란 스님은 오롯이 자신만을 향하고
자신만을 위해서였다고 느꼈습니다.
일체중생을 위해 5겁 사유를 하시고,
조재영겁의 보살행을 하신 아미타 부처님의
자비가 나를 향해 있다고 바라본다면
우리는 어떻게 바뀔수 있을까요?
오롯히 나만을 향해 있는
나의 아미타 부처님을 생각하고 느끼며 감동할 것입니다.
그리고, 아미타 부처님의 마음 세계와 진리의 세계에
내가 닿을 수 있는 길에 대해 깊이 고뇌할 것이고,
그 은혜에 감사하며 나의 삶을 행복하게 걸어갈 것입니다.
되새겨볼수록 깊은 의미를 가지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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