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 인물사(69) 일본 정토진종의 창시자, 신란(3) -
가마쿠라 신불교의 출현 >
1. 막부 무사 권력의 출현
한편, 일본은 우리 나라 고려 중기에 해당하는
12세기로 접어들며 질적으로 새로운 변화가 나타납니다.
수도 교토를 중심으로 한 천황과 중앙 귀족들의 힘이 약화되고,
국가 권력을 무사들이 장악하는 막부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막부(幕府)'는 원래 전쟁 중에 장군이 치는 천막을 의미합니다.
즉, 장군(쇼군)을 중심으로 한 군사(무사) 정권이 태동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막부 시대에는 막부의 정점에 서 있는 쇼군(장군)을 중심으로
치안 유지와 장원 관리를 위해 파견된 하급 무사간의
주종(主從) 관계에 의한 봉건 제도를 확립됩니다.
일본에서 최초로 성립된 막부(군사) 정권은
1185년 도쿄 인근의 해안가에 있는 가마쿠라에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세운 '가마쿠라 막부'입니다.
일본은 가마쿠라 막부의 등장을 기점으로
이전의 시대를 고대(古代),
이후를 중세(中世)라고 합니다.
고대와 중세는 지배 계급의 변화에 따라
사회, 경제적인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난 시기입니다.
가마쿠라 막부 시대는 우리 나라 고려의 무신 정권 60년과 비슷합니다.
무신 정권이 태동하기 전의 고려 사회는 문벌 귀족 사회였습니다.
그러나, 문벌 귀족들의 부패와
권력 다툼(이자겸의 난, 묘청의 난)으로 인해
지배 체제에 동요가 나타나 무신 정변으로 무신 정권이 출현했습니다.
일본도 천황과 귀족간의 권력 다툼이 심해지며
이들의 지배 하에 있던 무사 계급이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의 막부 권력을 중심으로 한 봉건 제도는
쇼군과 하위 무사간의 봉건 질서를 확립하면서 700여년이나 유지되었습니다.
고려의 무신 정권은 무신간의 다툼 속에서
최충헌의 최씨 무신 정권의 독재로 이어지고
약 60여년의 짧은 시간 동안 통치한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고려의 무신 정권도 세계 제국인 몽고와의
처절한 항쟁이 아니었다면 더 오래 갔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일본은 중세 시대로 오면서 역사의 중심이 바뀌었습니다.
중세 시대는 천황과 귀족이 주도하는 사회가 아니라,
천황의 힘을 능가하는 무사 세력이 주도하는 사회였습니다.
일본은 가마쿠라 막부 이후 무로마치 막부로 이어졌고,
수많은 지방 유력 무사간의 전쟁의 시대인 전국 시대를 거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을 통일하여 에도(도쿄)에 에도 막부를 세웠습니다.
그렇게 700여년의 무사 정권이 이어지다가,
1868년 메이지 유신에 천황이 권력의 정점에 서면서 무사 계급이 사라집니다.
기나긴 700년간 무사들이 권력을 잡고 통치했던 시대가 바로 중세 시대입니다.
봉건 제도는 쇼군이 천황에게 무사 집단의
특권을 얻어내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가마쿠라 막부를 연 쇼군 미나모토노 요리모토는
자신의 부하 무사를 지방 영주로 임명하는 권한을 받아냅니다.
이들 지방 영주들은 자신에게 땅을 준 쇼군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교토, 가마쿠라 등 주요 지역을 교대로 지키거나 전쟁에 참여하게 됩니다.
2. 가마쿠라 막부 시대 불교의 변화
가마쿠라 막부 시대는 정치적 혼란기였지만,
사회적으로도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무사 계급인 막부가
귀족 가문을 누르고 권력을 잡게 되면서
민중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일본 불교도 질적으로 다른 양상을 나타납니다.
가마쿠라 막부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민중 불교의 출현입니다.
일본 고대 불교는 귀족적인 불교이거나,
천황을 중심으로 한 호국 불교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일반 민중들에게 불교의 가르침이 널리 전파되지 않았고,
민중들의 종교적 열망에 답하는 구원의 불교가 유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중세로 넘어오고 귀족 사회가 몰락하자
새로운 계층인 무사들과 민중들을 위한 새로운 불교가 요구되었습니다.
불교는 새로운 계층의 요구에 귀기울이기 시작하는데,
이러한 민중적 불교를 일본에서는 '가마쿠라 신(新)불교'라고 합니다.
가마쿠라 신불교는 민중이 불교 신앙의 주체로 등장한 새로운 불교입니다.
이 시기에 누구나 <나무아미타불>염불하면 극락갈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민중들에게 쉽고 간결한 불법의 진리를 전파하는 스님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중국 송나라와 무역하면서 선(禪) 불교가 유행했습니다.
선종은 무사들의 실질강건한 문화와 부합되는 측면이 많아
무사 지배 계급의 후원을 많이 받았습니다.
임제종, 조동종과 같은 선종의 종파가
가마쿠라 신불교 시대에 일본에 새로 등장하여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스님들의 의식에도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일본 고대에도 민간 포교와 구제 활동을 하는 스님들이 간간히 있었지만,
스님은 기본적으로 관승(관료승)이므로 민간 구제 활동에 제약이 있었습니다.
천황을 비롯한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을 주임무로 한 관승들은
국가가 인정해준 계단에서 수계하고 백의를 입고 관사(官寺)에서 머물렀습니다.
관승들은 '개인'의 구제보다는
천황과 귀족의 "국가"의 호국과 안녕을 비는 역할에 매몰되어 있었습니다.
3. 둔세승의 출현과 민중의 구제
그런데, 12세기 말이 되면 이러한 관승에서 벗어나
개인(민중) 구제를 가장 의미 있는 일로 삼는 스님들이 등장했습니다.
이들은 국가의 명령, 관승의 세계로부터 이탈했습니다.
이처럼 기존 체제로부터 이탈을 당시 사람들에게는
세상을 버리고 숨는 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것을 당시 표현으로 "둔세(遁世)"라고 불렀으며,
민중 구제를 위해 둔세를 감행한 승려를 '둔세승'이라고 불렀습니다.
둔세승은 관승과는 대조적으로
검은 가사를 입어 '검은 옷의 승려'라고 불렸습니다.
이들은 관승과는 대조적으로 재가 신자까지 포함한 둔세 교단을 성립하였습니다.
이러한 가마쿠라 신불교는 오늘날 일본 불교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종교적 변화 속에서
<나무아미타불>염불로 극락 왕생의 구제를 받을수 있다는
파격적인 불교 신앙이 신란 스님에 의해 대중들에게 전파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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