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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법구경(115) 부유한 바후반디까 비구 이야기

by 아미타온 2024. 12. 17.

<법구경(115) 부유한 바후반디까 비구 이야기>

 

<여주 신륵사 남한강 일출>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시던 어느 때,

바후반디까 비구와 관련하여 게송 141번을 설법하셨다.

사왓티에 큰 부자를 아버지로 둔 젊은이 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비구가 되는 사람을 대단히 부럽게 생각하고

자신도 비구가 되어 그들과 같이 수행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는 비구가 되면 집도 없이

얻어 먹고 사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비구가 되겠다고 결심하여 

미리 자신이 살 수도원 하나를 세웠다.

 

그는 그 수도원에 부엌과 창고를 잘 갖추어 놓았고,

다른 시설물들도 아주 훌륭하게 마련해 두었다.

 

그는 또 나중에 자기가 사용할 가구와 침구 등 일체를 미리 사두었고,

식량과 기름, 버터와 그 밖의 부식도 충분히 준비해 두었다.

 

그리하여 무슨 음식이든지

그가 원하기만 하면 금방 나오게끔 되어 있었다.

 

이같이 해둔 뒤에 출가했기 때문에

그는 비구라 해도 아주 편안하고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었다.

 

그 때문에 그는 '많은 물건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의

'바후반디까'라고 불리었다.

어느 날 다른 비구들이 그를 데리고 부처님께로 갔다.

 

그 비구들은 바후반디까가 수도원에 올 때

많은 재산을 가지고 왔으며

지금도 그것으로써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그 보고를 들으신 부처님께서는 바후반디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래의 아들이여,

여래는 너희 모두에게 검소할 것을 가르쳐 왔는데,

너는 어찌하여 그렇게 많은 재산과 물건을 가지고 출가했느냐?”

부처님께서 자신을 칭찬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그는 부처님의 말씀에 서운함과 실망스러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고통스러운 생활을 하면서

수행할 수 없다고 마음 먹게 되어

그 자리에서 자신의 윗가사를 벗어 내팽개치며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이제부터 부처님께서 가르치신대로 살겠습니다.” 

 

 

그의 이 같은 행동을 보신 부처님께서는 그에게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래의 아들이여!

너는 전생에 귀신이었더니라.

그때 너는 비록 귀신이기는 했을지라도 부끄러움을 알고 있었고,

악을 행하는 것에 대해 두려워 할 줄도 알았었느니라.

너는 이렇게 착한 일 하기를 즐거워 할 줄 알았던 덕분에

금생에 좋은 집안에 사람으로 태어나 이 자리에까지 오게 되었느니라.

그런데, 이제 너는 여래의 훌륭한 가르침 안에서 생활하는 비구로서

어찌하여 그런 덕목들을 다 버렸더란 말이냐?”  

부처님의 이같은 말씀에

그는 비로소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공손한 태도로 부처님께 인사를 올리면서 용서를 구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가사를 벗어 던진다고 해서

검소한 생활을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고

바른 사람이 되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가사를 다시 입는다고 해서

바른 비구가 되는 것도 아니다.

모름지기 비구는 일체의 의심을 버려야만 하느니라."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의 게송을 읊으셨다.

벌거벗음도 아니요, 

머리를 헝클어뜨림도 아니다.

진흙으로 몸을 바름도 아니요, 

굶는 것도 아니며,
흙바닥에 잠자는 것도 아니요,

먼지를 뒤집어쓰는 것도 아니다.
또한 앉아서 노력만 하는 것도 아니니
의심을 극복하지 못하는 자는 남을 청정하게 할 수 없다.


부처님의 이 설법 끝에 바후반디까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수다원 과를 성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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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욕지족

 

부처님 당시의 출가 수행자들은

소욕지족하며 소박하게 생활했습니다.

 

가섭 존자의 경우만 보더라도

무소유와 소욕지족행(두타행)에 철저하셨다고 합니다.

 

평생을 묘지나 동굴에서 살면서 의식주에 있어

검약한 삶을 사셨고 부처님께 칭찬을 받았습니다.

 

다른 출가 수행자들도 해탈을 이루는데 올인하기 위해

세속의 가족, 재산, 계급, 명예를 버리고 출가하였습니다.

 

그래서, 가섭 존자만큼은 아니라 하더라도

소박 검소한 소욕지족하는 삶이 권장되었습니다.

 

경전에는 시주받은 옷이나 발우를 모아

축적하려는 수행자들에 대해 부처님이 꾸짖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렇게 소유를 많이 하는 출가 수행자들을

부처님께서는 달갑게 보시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무성하게 자라나는 욕망과 집착의 성향을 통찰한다면

출가 수행자들은 평소에 검소 검약한 생활을 통해서

집요한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나

출가 수행자로서의 바른 삶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보신 것입니다.

 

 

2. 무참무괴

 

부자 집안에서 컸던 바후반디까는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고 싶었으나,

집도 없이 얻어 먹고 사는 무소유의 

이러한 출가 생활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출가하기 전부터 출가 생활에 대비한

의식주의 모든 용품을 준비해놓고 출가하였습니다.

 

자신이 지어 놓은 수도원에서 먹고 입고 사는 것을

충분히 누리며 편안한 출가 생활을 원했던 것입니다.

 

그는 세속 생활과 다를바 없는 출가 생활을 하면서

풍요로운 의식주가 주는 안일함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이러한 자신의 출가 생활에 대해  

아무 문제 의식이나 고뇌 없이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은 부자 집안에 태어났슴에도

세속 생활에 만족하지 않고 출가 수행자가 되었다는 것과

출가하기 전에 먹고 살 공간까지 충분히 준비해 놓은

철저한 준비성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칭찬받을만한 일이라고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부처님은 여기에 대해 야단을 치셨습니다.

 

그러나, 바후반디까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부처님의 이러한 지적을 서운해하며

부처님 앞에서 가사를 벗어 던지며 반항하는 불량 행동을 했습니다.

 

이깟 좋은 가사 입지 않고 수행하면 될 것 아니냐는 식이었던 것입니다.

 

자기 생각과 서운함에만 빠져서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자신을 꾸짖는 부처님에 대한 원망으로

부처님 앞에서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한 것입니다.

 

보통 비구 같으면 당장 불호령이 나야 할 상황입니다.

 

부처님은 기본이 안 되어 있는 바후반디까에게

귀신이었던 그의 전생담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전생을 가르쳐 주는 방편을 통해

악을 행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알고,

자신의 잘못에 대한 부끄러움을 알라는 것입니다.

 

수행자의 기본은

악을 행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아는 것과

자신의 잘못에 대한 부끄러움을 아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악을 행해도 두려워할 줄 모르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부끄러움 없는

무참무괴함이야말로

똑같은 악행과 잘못을 저지르며 

수행의 길에서 향상을 가로 막는 최대 주범입니다.

 

 

3. 무참무괴

 

부처님의 이러한 말씀과 경책을 통해

자신의 막행에 대한 잘못을 깨닫고 

부처님께 용서를 구하고 참회를 하게 되었을 때

부처님은 비로소 바후반디까에게 다르마(법)를 설하셨습니다.

 

즉, 들을 준비가 된 것을 확인하시고 법을 설하신 것입니다.

 

"가사를 벗어 던진다고 바른 수행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가사를 입고 있다고 해서 바른 수행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수행자는 모름지기 의심을 없애야 한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이 다르마(법)는 무슨 말씀일까요?

 

부처님은 초전법륜에서 쾌락(세속적 행복)과

고행의 양 극단을 떠나라는 중도법을 설하셨습니다.

    

우리는 먹고 입고 사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안락함과 편안함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풍족한 삶이 잘 사는 삶이고

행복한 삶이고 성공한 삶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 속에 숨어 있는

욕망과 집착의 유혹의 함정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습니다.

 

좋은 옷을 입고 있다고

바른 수행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좋은 옷으로 상징되는 안락함과 편안함 속에

숨어 있는 욕망과 집착의 유혹과 함정을 보라는 뜻입니다.

 

수행자는 편안함에 안주하지 말고 고뇌하라고 하는데,

왜 편안함에 안주해서는 안 되고 고뇌해야 하는지를 알라는 것입니다.

 

 

4. 바른 견해와 바른 사유

 

당시 인도의 수행자들의 전통은 고행이었습니다.

 

많은 인도 수행자들이 고행을 택했던 이유는

적당히 해서는 몸의 무성한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나서 

깨어난 의식으로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내적 통찰과 고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발가벗고 머리를 헝클이고

진흙으로 몸을 바르고 단식을 하면서 굶고

흙바닥에서 자고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혹독한 고행을 행했습니다.

 

부처님도 육신을 항복받고

완전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고행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고행을 통해서 완전한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는

자각이 있으셨기 때문에 고행을 포기하셨습니다.

 

좋은 옷을 벗어던진다고 바른 수행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이러한 고행이라는 행위를 통해 깨달음이 온다고

맹목적으로 고집하는 견해에 대한 비판인 셈입니다.

 

부처님은 고행에서 바른 사유와 명상으로 수행 방법을 전환하셨습니다.

그리고, 실천 수행으로 '8정도'라는 새롭고 바른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8정도의 출발은 '바른 견해(정견)'와 '바른 사유(정사유)'입니다.

 

의심을 버려야 한다는 말씀은

바른 견해와 바른 사유를 통해

다르마(법)에 대한 명확한 앎이

자신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해준다는 것입니다.

 

의심을 극복하지 못하는 자는

남을 청정하게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바른 견해와 바른 사유를 통해 이성적으로

왜 쾌락과 고행을 떠난 중도의 길을 가야 하는지에 대한

의심이 없어져야지 목적과 수단이 일치되는 깨달음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수행의 길에서 바른 견해와 바른 사유가 그만큼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