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121) 수다원에 오른 웃따라 비구니 스님 이야기>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시던 어느 때,
웃따라 비구니와 관련하여 게송 148번을 설법하셨다.
웃따라 장로 비구니 스님은 나이가 120세였다.
어느 날 아침 탁발에서 돌아오다가 길에서 한 비구 스님을 만나자
자기가 탁발해 온 음식의 일부를 비구에게 공양을 올리겠노라고 청했다.
이때 생각이 깊지 못했던 그 젊은 비구 스님은
나이 많은 비구니 스님이 탁발해 온 음식을
아무 생각 없이 몽땅 다 받아 버렸다.
그래서 늙은 비구니 스님 웃따라는
그날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 같은 일이 사흘간이나 반복되어
그 사흘 동안 웃따라 비구니 스님은
전혀 음식을 입에 대보지 못한채 지내게 되었다.
이렇게 여러 날을 두고 음식을 먹지 못하여
웃따라 비구니 스님은 몸이 많이 쇠약해진 것을 느꼈으며,
나흘째 되는 날 탁발을 하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섰다.
그 탁발 길에 웃따라 비구니 스님은 좁은 길에서
반대편으로부터 탁발을 해오시는 부처님을 만나게 되었다.
웃따라 비구니 스님은 부처님을 만나자
매우 공손히 예를 올리고 뒷걸음쳐 길을 비켜드렸다.
그러다가 가사 깃이 발꿈치에 밟혀 뒤로 넘어지면서
그만 머리를 다치고 말았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넘어진 비구니 스님에게 가셔서
따뜻하게 위로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당신의 몸은 이제 매우 늙어 있으며
따라서 매우 불확실하오.
당신은 몸이라는 것은 때가 되면 마침내 무너지며,
이내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만 하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이 몸은 세월 따라 낡아지는 것
이 몸은 질병으로 가득 차 있고 시들어 가는 것
이 몸이 부패하여 흩어질 때
생명은 끝나 죽는 것이다.
부처님의 이 설법 끝에 나이 많은 웃따라 비구니 스님은
수다원 과를 성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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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늙고 병듬의 자각
나이가 100살이 넘은 노 비구니 스님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탁발한 음식을
젊은 비구에게 다시 공양을 올리는 것을 보면
마음씨 좋은 시골 할머니처럼
베풀기 좋아하는 따스한 마음을 가졌던 분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 수다원 과를 얻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흘을 연속으로 굶고
몸이 쇠약해진 상태에서 탁발을 나섰고
탁발길에 부처님을 뵙고 예경을 드리려고다
뒤로 넘어져서 머리를 다쳤습니다.
그 노 비구니 스님에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불법의 진리는 무엇이었나요?
"이 몸은 늙으며 견고하지 않으며
병이 들고 언젠가는 죽는다."
나이가 들면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우리 몸이 늙고 병드는 평범한 상식에 대해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시는지를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사문유관을 마치고
당신의 고뇌를 다음과 같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궁중의 영화도 건강한 이 육신도
사람들이 부러워 하는 이 젊음도
결국 나에게 무엇을 가져올 것인가?
나는 병들고 언젠가는 늙어 죽음을 면할 수 없다.
젊음을 자랑하며 건강을 자랑하며
생존을 자랑하는 일은
적어도 생각이 깊은 사람에게는
무의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젊고 건강하고 부유하다고 해서
여기에 매몰되어 애착하며 즐기며 사는 삶은
불교적으로 큰 의미가 없습니다.
생각이 깊은 사람은
젊음을 자랑하고 부유함을 자랑하고
지금의 즐거움에 탐착하는 삶의 허망함과
무상함을 깊이 느껴야 한다는 것입니다.
허망하고 부질없슴을 느껴야
비로소 자신의 삶에서
참된 평온과 행복의 길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욕망의 차선에서
진리의 차선으로 차선바꾸기가 가능합니다.
2. 설산동자와 무상함
설산 동자 이야기도 비슷한 메세지를 전합니다.
설산동자가 어느날 길을 가다가
야차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듣고 귀가 번쩍했습니다.
"모든 것은 나고 죽고 무상하니
이것이 생멸의 괴로움이다."
설산동자가 자신의 인생이
왜 괴롭고 허망한 것인지를 잘 몰랐는데,
이 게송을 듣는 순간 완전히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괴롭고 허망한 것은
결국 우리가 나고 죽기 때문에,
즉, 생멸하기 때문에,
무상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구나를
확연하게 알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안 설산 동자는 어떻게 했나요?
그 허망함과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알기 위해
야차에게 자신의 목숨을 던지면서까지
도를 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때 야차가 전해준 진리는 무엇이었나요?
"나고 죽는 무상함을 벗어난 길
그 길이야말로 열반의 참된 행복이다."
인생을 즐겁게 즐기고 사는 사람들과
무상함을 느끼고 무상함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사람들.
이 두 부류의 사람들 중에
어느 쪽이 불문에 가깝고 해탈에 가까운 사람인가요?
당연히 후자입니다.
비록 오욕락을 즐기며 즐겁게 산다고 하더라도
무상함은 느낄 수가 없다면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은 없습니다.
갈망과 집착에 빠져서
괴로운 삶을 산다고 하더라도
무상함을 느낄 수가 없다면 마찬가지입니다.
수다원에 드는 첫번째 조건이
색,수,상,행,식의 오온이
영원한 나가 아니라는 것을 확연히 아는 것입니다.
색의 중심은 나의 몸뚱아리입니다.
이 몸뚱아리가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무상함을 가장 절실하게 느끼게 합니다.
노 비구니 스님은
늙고 다쳐서 병든 자신의 몸을 들여다 보며
늙고 병들고 죽는 무상함에 대한 진리가
철저하게 각인되며 100세가 넘은 나이에
비로소 수다원 과에 올랐다는 것입니다.
저 노 비구니 스님처럼
무상함에 대한 자각을 통해
무상함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불법의 진리의 길로 들어서는 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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