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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법구경(120) 기생 시리마 이야기

by 아미타온 2025. 1. 8.

<법구경(120) 기생 시리마 이야기>

 

<용인 호암 미술관 희원의 벚꽃 모습>


부처님께서 죽림정사에 계시던 어느 때,

기생 시리마와 관련하여 게송 147번을 설법하시었다.


라자가하(왕사성)에 '시리마'라는
어여쁜 기생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집에 매일같이 탁발나오는 비구가 다른 동료 비구에게

자기는 매일같이 아름답고 음식 솜씨도 좋고

젊고 아리따운 기생으로 부터 공양을 받아온다고 자랑했다.

 

그러자 그 동료 비구는 단지 시리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만으로

그녀를 연모하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사랑에 빠진 젊은 비구는

동료 비구와 함께 시리마의 집으로 탁발을 나갔다.

 

그런데 그날 따라 공교롭게도 시리마는

몸이 아파서 직접 공양을 올리지 못했다.

 

그러나 비구들에게 대해서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던 그녀는

비구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는 없다면서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 밖에까지 나와 합장으로써 비구들을 맞이했다.

 
이때 시리마를 처음 본 비구는

저 여인이 병이 들었는데도 저렇게 아름답다면

건강하고 잘 치장했을 때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싶어 감탄해 마지 않았다.

 

그에게는 시리마를 차지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대며 일어났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병이 든 고급 기생 시리마는

그날 밤에 그만 죽어 버렸다.

 

그러자 빔비사라 왕은 부처님을 찾아 뵙고,

유명한 의사이며 부처님의 전문의이기도 한

지와까의 누이 시리마가 죽었음을 전해 올렸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빔비사라 왕에게

당분간 시리마의 시신을 땅에 묻지 말고

그대로 묘지에 잘 보존해 두되,

까마귀와 독수리 들짐승들이

시신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지켜 달라고 청하셨다.

 

부처님으로부터 특별한 청을 받은

빔비사라 왕은 부처님의 말씀을 따랐다.

 

<여인의 몸의 무상함을 그린 일본 그림(호암 미술관 '진흙 속의 연꽃 전)>

 

시리마가 죽은 지 사흘이 되었다.

 

그러자 살아 있었을 때

그토록 아름다웠던 그녀도

이제는 더 이상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었다.

 

그녀의 작고 고왔던 몸은 이제 변색되어 부풀어 올랐고,

밝고 아름다웠던 그녀의 눈에서는 구더기가 끓기 시작했다.

 

또한 그녀의 아홉 구멍에서는 더러운 물이 흘렀으며,

벌레가 끓었다.

 

그럴 즈음 부처님께서는 비구들과 함께 묘지에 가시어

비구들로 하여금 아름다웠던 시리마의 시신을 관찰하게 하셨다.

 

이때는 빔비사라 왕도 신하들을 거느리고 와서

시리마의 썩어가는 몸을 함께 관찰했다.

 

이때 시리마를 사랑했던 젊은 비구는

아직도 시리마가 죽은 줄을 모르고 있다가

부처님을 따라 그곳에 가서 비로소 죽어 썩어가는 시리마를 보았다.

 

그는 매우 실망하는 한편,

자신의 어리석음을 깊이 뉘우쳤다.

 

부처님께서는 빔비사라 왕에게 부탁하여

이제 누구든지 일천 냥을 내고

시리마와 하룻밤을 같이 보낼 사람은 나와 보라고 광고케 하시었다.

 

그래서 왕은 그같이 공지하였으나 아무도 나타나는 자가 없었다.

 

그러자 왕은 화대를 내려서

오백 냥, 이백 냥, 백 냥, 오십 냥이라는 식으로 다시 공지했다.

 

그랬지만 역시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죽어 썩어가는 저 시리마의 시신을 보아라.

시리마가 살아 있을 때에는

시중의 재산가들이나 재산가의 아들들,

그리고 고관들이 그녀와 함께 단 하룻밤만이라도 즐기려고

천 냥이라도 아끼지 않고 앞 다투어 나섰으며,

그러고도 차례가 돌아오지 않아 애를 태웠었느니라.

 

그러나 이제는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해도

아무도 그녀를 차지하려 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사람의 몸이란 실로 이와 같나니,

마침내 늙게 되어 있으며,

일단 호흡이 정지하고 나면 썩어서

저 시리마와 같이 되고 마느니라.

 

그렇거늘 이 무상한 육신을 탐하고

집착하여 무엇하겠느냐?"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옷에 가려진 이 몸을 관찰해 보라.
그것은 고름 투성이요.
많은 뼈들로 받쳐져 있는 질병의 주머니며
수없는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생각의 주머니로
실로 이 몸은 영원하지도 견고하지도 않도다.


부처님의 이 게송 끝에 시리마를 연모했던 비구는

수다원 과를 성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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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여인의 모습>

1. 염리(厭離)

 

부처님 당시에 많은 수행자들은 

출가의 길을 택했습니다.

 

출가는 세속적 가치와

욕망에 대한 완전한 포기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출가는 다른 의미에서

'염리(厭離,세속적 가치와 욕망을 싫어하여 떠남)'의 길입니다.

 

부처님도 출가하셨고 염리의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부처님은 왕자의 지위와 부유한 재산,

사랑하는 아내, 자식을 버리고 출가하셨습니다.

 

부처님은 출가하시기 전날밤

연회에 참석하여 춤추던 아름다운 무희들이

코를 골고 침을 질질 흘리며 아무렇게나 자는 모습을 보셨다고 합니다.

 

이러한 여인들의 모습을 보고 

추하다는 혐오를 느끼셨다는 장면은

출가 전부터 부처님께서 세속적 욕망에 대한 포기인 

염리가 이루어지셨슴을 뜻합니다.

 

부처님 당시에 출가 수행자들은

부처님처럼 세속적 욕망에 대한

포기의 길을 통해 깨달음을 추구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부처님 당시의 출가 수행자 중에

몸은 비록 출가는 했지만

마음은 세속적 욕망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번 법구경 이야기는

출가했슴에도 여인에 대한 욕망으로

잠못 이루는 출가 수행자들을 부처님께서는

어떠한 방법으로 염리의 길로 이끄셨나 하는 이야기입니다.

 

<부정관을 그린 일본 불화>

 

2. 부정관

 

부처님은 병에 따라 약을 쓰는 좋은 의사라고 합니다.

이번에 쓰신 좋은 약은 바로 '관법(觀法)'입니다.

 

관법은 몸과 마음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 바라봄으로써

우리들의 그릇되고 왜곡된 견해를 없애주고

욕망과 집착에 물들어진 마음을 정화시키는 약입니다.

 

성욕으로 인해 공부가 안 되는 출가 수행자에게

부처님은 이성의 몸에 치우친 애욕의 집착을 깨뜨리기 위해서

그와는 반대되는 방편을 이용하여 몸의 더러움과 추함을 관찰해보는

'부정관(不淨觀)'이라는 관법을 사용하셨습니다.

 

살아있을 때는 아름다운 여인이지만,

죽게 되어 시체로 변하여

부패하고 추해지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며 관찰하는 것입니다.

 

몸은 추하고 부정한 것이며,

애욕에 빠지는 삶이

얼마나 추하고 허망한지를 들여다 보라는 것입니다.

 

이성에 대해

'잘 생겼다', '아름답다'고 느껴

애욕을 품는 집착을 깨뜨리기 위해

반대로 몸의 더럽고 추한 진실을 눈으로 바라보게 함으로써

애욕에 대한 정나미가 떨어지게 하신 방편이 바로 부정관입니다.

 

밥맛 떨어진다고 하는 말이 있는데,

성적인 욕구가 일어날 때마다

시체가 썩어 문드러지는 모습을 떠올리면

애욕의 맛이 뚝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기생 시리마를 연모했던 비구도

눈으로 직접 보고 행하는 부정관을 통해

애욕이 뚝 떨어지며 애욕의 허망함을 깨닫고

수다원 과에 올랐다고 합니다.

 

우리는 부처님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현란한 욕망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TV만 틀면 쭉쭉 빵빵 젊은 연예인들이 눈을 현혹합니다.

 

수많은 광고는 욕망을 부추기며

욕망을 충족하며 사는 삶이

잘 사는 삶이요 행복한 삶이라고 선전합니다.

 

물론 "염리 = 해탈" 이라는 공식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니다.

 

그러나, 세속적 욕망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중독으로 취해 사는 삶이

현대인들을 수행으로 향하게 하지 못하는 

가장 큰 방해 요소임에는 분명합니다.

 

세속적 욕망에 대한 허망함을 자주 느껴야 합니다.

 

그래야 수행하려는 마음을 낼 수 있고 

깨달음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는 부처님 시대처럼

시체를 옆에 두고 수행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닙니다.

 

그러나, 가까운 지인이 병들거나 죽는 모습을 보고

욕망의 반대편에 있는 "무상함", "욕망의 무상함"이라는

삶의 또 다른 진실에 눈뜰 수 있어야 합니다.

 

"옷에 가려진 이 몸을 관찰해 보라.
그것은 고름 투성이요.
많은 뼈들로 받쳐져 있는 질병의 주머니며
수없는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생각의 주머니로
실로 이 몸은 영원하지도 견고하지도 않도다."

 

이번 부처님의 게송은

욕망에 취해 수행은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들에게

욕망의 황홀함 반대편에 있는 "욕망의 무상함"이라는

삶의 또 다른 진실을 바라보라는 다르마(진리)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