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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불교 사찰 기행

일본 불교 사찰 기행(27) - 백제 도래인의 도량, 아스카 데라(飛鳥寺)

by 아미타온 2025. 1. 22.

<일본 불교 사찰 기행(27) - 백제 도래인의 도량, 아스카 데라(飛鳥寺)>

 

<아스카의 아스카 데라>

 

1. 아스카(飛鳥)

 

오늘은 아스카 데라(飛鳥寺) 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아스카는 일본이 "야마토(大和)"라는

고대 국가가 형성된 터전인 나라 현에 있습니다.

 

일본 고대 국가가 성립된 터전으로

일본인등에게 '마음의 고향'으로 불리는 아스카(飛鳥)입니다.

 

유홍준 교수가 쓴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일본편)> 3권이 있습니다.

그 중 제2권이 '아스카와 나라' 편입니다.

 

그 답사기를 보면 아스카는 우리 한반도에서 넘어간

백제계 도래인(渡來人)들이 일본에 정착한 땅입니다.

 

백제계인 쇼토쿠 태자와 소가 씨 일족이

불교를 수용하여 일본 불교의 뿌리가 되는 곳입니다.

 

백제계로 당시 일본 최고의 권력자인

소가 가문의 씨사(氏寺)인 아스카 데라는

일본에서 제일 오래된 역사의 사찰입니다.

 

<아스카역 표지판>

 

2. 백제 도래인의 고향, 아스카

 

아스카의 정확한 지명은

나라현 다카이치군(高市郡) 아스카촌(明日香村)입니다.

 

일본에서는 '날아가는 새'라는 뜻의 '아스카(飛鳥)'라고 주로 불립니다.

 

아스카의 현재 지명인 '명일향촌'은

'내일의 희망의 향기를 맡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정치적 이유이든, 경제적 이유이든

한반도를 떠나 새로운 꿈을 찾아

일본으로 도래해야 했던 한반도 이주민들이

내일의 희망을 꿈꾸며 정착한 곳이자,

날아가는 새처럼 자유로운 삶을 갈구했던 곳이 아스카인 것입니다.

 

<긴데츠 아스카 역>

 

지금의 아스카는 작은 시골 마을입니다.

나라에서 긴데츠 요시노 선을 타고 30분 가면 아스카 역이 나옵니다.

 

쇼토쿠 태자가 태어나고 일본 고대 수도였던

아스카의 당시 인구의 80%가 한반도 도래인이었다고 합니다.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한 때가 660년~668년경이니

백제나 고구려에서 정치적 이유로

일본으로 건너온 도래인들이 엄청 많았을 것입니다.

 

고구려, 백제와 깊은 유대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멸망한 고구려, 백제 유민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했을 것이고

그들로부터 전래된 불교, 철기, 직조, 야금 기술과 문화들이

일본이 새로운 사회로 전환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아스카 데라>

 

3. 백제계 소가 가문의 원찰, 아스카 데라

 

아스카 역에서 5km 떨어진 곳에

아스카 데라(飛鳥寺)가 있습니다.

 

아스카 데라는 지금은 퇴락한 작은 절이지만,

일본 불교 역사에서 갖는 의미는 매우 큽니다.

 

백제계인 소가 가문의 소가노 우마코는

백제로부터 불교를 수용하여 신앙했습니다.

 

<일본 최고 권력자 소가노 우마코의 무덤, 석무대>

 

그러나, 당시 일본에는 일본 고대 신을 믿고

불교를 배척하는 배불파(排佛派)가 있었습니다.

 

소가노 우마코는 배불파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이듬해인

588년에 불사를 일으켜 아스카 데라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596년 완성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절로

일본 불교 역사의 출발이 되는 절이 바로 아스카 데라입니다.

 

<1탑 3금당 양식의 독특한 가람배치>

 

아스카데라는 창건 당시 고구려 가람 배치를 바탕으로 세워졌습니다.

1탑 3금당의 독특한 양식입니다.

 

남대문, 중문, 탑, 금당의 1렬 배치 외에

동서로 금당이 각각 하나씩 더 배치된 1탑 3금당의 독특한 양식입니다.

 

당시 고구려의 혜자 스님이 일본 쇼토쿠 태자의 스승이었기 때문에

고구려 양식의 가람 배치를 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당시 큰 절을 짓는 기술이 일본에는 없었기 때문에

백제 장인들이 이 곳에서 기와를 굽고 터를 닦아 절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백제에서 보내준 부처님의 사리를 탑에 봉안하였다고 합니다.

 

<아스카 데라 법당>

 

아스카 데라의 원래 절 이름은

'불법을 흥하게 한다'는 뜻의 '법흥사(法興寺)'였습니다.

 

아스카 데라는 원래 사방 200m에 달하는 큰 절이었습니다.

 

소가 가문이 주도해서 세운 씨사(氏寺)지만,

당시 국가의 실권을 가지고 있던 소가 가문이었으니

큰 규모의 절을 세운 것입니다.

 

<아스카 대불 - 석가모니불>

 

4. 아스카 대불

 

먼저 금당에 들어갔습니다.

금당에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석가모니 부처님 불상이 있습니다.

 

높이 3m의 거대한 청동 부처님으로

'아스카 대불'로 알려진 석가여래 좌상입니다.

 

아스카 데라가 완성된 10년 후인 605년에

스이코 천황과 쇼토쿠 태자와 소가노 우마코가 발원하여

백제의 불상 만드는 전문 기술자인 '도리 불사'를 모셔와서

4년만인 609년에 완성된 불상입니다.

 

이 불상을 만들 때 고구려 영양왕이 황금 300냥을 보내주었다고 합니다.

이 불상을 만드는데 들어간 청동이 2만 3천근, 황금이 759냥이라고 합니다.

 

즉, 고구려, 백제, 일본 3국의 협력으로

4년의 각고의 노력과 공이 들어간 끝에 완성된 불상입니다.

 

<아스카 대불>

 

당시 주조한 무거운 아스카 대불을

법당 안에 안치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어서

모든 사람들이 법당을 다시 헐고 안으로 모실 수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불상을 만들었던 도리 불사가 나서서

불상을 요리조리 돌리면서 교묘히 들여놓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1196년 아스카 데라는 벼락을 맞아 불타고 말았습니다.

아스카 대불도 파괴된 모습으로 오랜 세월 비를 맞았다고 합니다.

 

그 이후 1825년에 와서야 현재의 금당을 짓고,

대불의 얼굴의 윗부분과 오른손은 제작 당시의 모습이고,

나머지 부분은 후대의 고증을 거쳐 새롭게 제작한 모습입니다.

 

1500년의 풍상을 겪었으면서도

그 상호가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부처님입니다.

 

얼굴이 길고 눈이 치켜 올라가고

코가 묵직한 독특한 상호의 위엄있는 부처님인데,

약간의 미소 속에 큰 아우라가 느껴지는 멋진 부처님입니다.

 

아스카 데라의 어느 스님이 와서

부처님에 대한 소개를 하는데,

좌 측에서 볼 때와 우 측에서 볼 때

부처님의 상호의 느낌이 다르다고 합니다.

 

<점토로 만든 아스카 대불>

 

법당을 나오면 유물 전시실이 있는데,

그 곳에는 점토로 아스카 대불의 상호를 떠 놓았습니다.

그 모습도 좋았습니다.

 

<우리나라 수덕사와 자매결연>

 

5. 수덕사와 자매 결연

 

한편, 아스카 데라는 우리 나라

예산 수덕사와 자매 결연을 맺고 있다고 합니다.

 

절에 가면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엄청 좋아하며,

한글로 된 안내서를 줍니다.

 

그 안내서에 이와 같이 적혀 있습니다.

 

<아스카 데라의 그림>

 

"여러분! 오늘 먼 한국에서

이 곳 아스카 테라를 참배해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스카 테라는 지금으로부터 1400년 전인 서기 588년 대신

소가노 우마코의 발원으로 건립된 일본 최고의 사찰입니다.

 

이보다 앞선 서기 538년에 백제 제 26대 성왕 때

위대한 가르침과 불상 등이 일본에 전래되어 수용되었습니다.

 

.......(중략)

 

아스카 테라 절은 이렇게 해서 백제와 고구려 문화의 은택과

당시의 일본 문화의 향상 발전에 크게

공헌해 주신 귀국의 선현들의 수고에

깊은 존경심과 감사의 마음을 향상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그때 당시에 양국을

왕래하셨던 분들의 불교 정신을 되살려서

상호 교류를 돈독히 하는 것이

부처님을 향한 보은 감사의 마음으로 믿고,

먼저 백제 시대 수도인 부여 교외에 창건되어

아직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계승하여

불법 흥륭을 위해 정진하고 계신 수덕사와 자매 결연을 맺었습니다.

 

현재의 아스카테라 절은 폐허에 가까운 작은 절이지만.

불가의 가르침인 자비와 진리로 뭉쳐진 종교적인 심정이

양국의 우호와 불법 흥륭과 만물의 평화를 위한

역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아스카 데라 출입문>

 

불법을 전해주고 절을 세울 기술을 전해준

우리 나라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듬뿍 담고,

한일 양국의 불법 흥륭과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비록 쇠락한 절이지만 이 아스카 테라는

의식 있는 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 보수 우익들도 아스카 데라에 와서

이런 점을 배워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진언종 포스터>

 

6. 일본 진언종 밀교 도량

 

오늘날 아스카 데라는 일본 밀교 진언종 사찰입니다.

 

단아한 별당에는 일본 진언종을 개창한

홍법대사 쿠카이의 상을 모시고 있습니다.

 

소가 가문은 AD 600년대 약 100여년간 

일본 최고의 권력 가문이었습니다.

<소가노 이루카 공양탑>

 

7. 소가노 아루카 공양탑

 

아스카 데라를 창건한

소가 가문의 100년 영화는

645년 소가노 우마코의 손자인

소가노 이루카의 대에서 끝납니다.

 

아스카 데라에는 소가 가문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소가노 이루카의 묘지탑이 있습니다.

 

소가노 이루카는 왕위 계승 문제를 둘러싸고

왕위를 계승할 황자를 죽이고 독재를 행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소가노 이루카의 전횡은 반발을 일으켜

천황가의 역습으로 살해당하고 말았습니다.

 

이차돈의 순교의 전설처럼

소가노 이루카가 살해될 때

그의 목이 아스카데라에 날아왔다는 전설이 남아 있습니다.

 

일본에 불교를 흥륭시킨

소가 가문의 마지막을 나타내는 묘지탑인 셈입니다.

 

그렇게 몰락했지만,

소가 가문에 의해 창건된 아스카 사에서

소가 가문의 마지막 자손인 소가노 이루카를 위해

저렇게 작은 묘지탑을 세워놓은 것입니다.

 

<아스카 데라>

 

고대 일본의 터전인 아스카에 세워진

일본 최초의 사찰 아스카 데라에서

백제 도래인의 불심을 느껴보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