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역사(76) - 밀교(2) - 삼밀가지(三密加持)>
1. 비밀
밀교는 진언승(眞言乘), 금강승(金剛乘)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립니다.
경전마다 밀교의 정의와 의미는 조금씩 다릅니다.
아무튼 밀교는 "비밀불교"의 줄임말로
서양에서는 "신비주의 불교"를 의미하는
"에소테리스즘(Esotericism)"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불교적 전승 가운데 진언, 다라니, 만다라, 그림적인 상징 등에
담겨서 전해진 비밀한 가르침을 보통 이야기합니다.
"비밀"이란 의미는
밀교 교단 내부에서 자격을 갖춘 전법 스승이
특정 제자에게 전해지는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밀교는 사제전승의 '비밀한 가르침'이라서
모든 이에게 공개된 가르침인 현교(顯敎)와는 구별됩니다.
2. 삼업과 삼밀
또한, 비밀은 3가지로 구분합니다.
신밀(身密), 구밀(口密), 의밀(意密)이 그것입니다.
이것을 '삼밀(三密)'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활동과 삶을 인도인들은 세 가지로 보았습니다.
첫째 손발 등의 신체(身)로써 행하는 활동과
둘째 언어(口)를 사용하는 활동과
셋째 마음(意)의 활동으로 나누었습니다.
전통 불교에서는 이것을 신구의 '3업(業)'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3가지 활동은
자기 중심적인 욕망과 번뇌가 일어나 오염되어 업(業)을 생성합니다.
그래서 수행을 통해 무명과 번뇌를 타파하고
3업을 청정하게 하여 해탈에 이르는 것이
전통 불교(현교)의 기본적인 가르침입니다.
즉, 신구의 삼업 청정이 전통 불교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밀교는 삼업이 아니라, 삼밀로 바라봅니다.
밀교에서는 중생의 모든 활동은
부처의 활동과 다름이 없다고 봅니다.
따라서, 우주의 커다란 생명이자 광명이자 법신(法身)인
'대일(大日) 여래'와 '중생'이 일체화된 경지에 들어가면
현실 세계는 곧 절대적 진리의 세계가 된다고 보았습니다.
이와 같은 눈으로 현실 세계를 바라보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대일 여래의 신체적 활동의 다른 모습이고 현현입니다.
모든 행위는 대일 여래의 신체적 활동이며,
모든 말은 대일 여래의 말씀이며,
모든 마음(의식)의 움직임은 대일 여래의 마음의 활동임을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
3. 소동파의 무정 설법
중국 송나라 때의 시인으로 유명한 소동파가 있습니다.
소동파가 어느 고을의 관직을 맡고 있을 때
'상총 선사'라는 유명한 선승을 찾아서 법문을 청했습니다.
이때 상총 선사가 다음과 같이 법문을 했습니다.
"유정(有情) 설법을 들어 무엇하겠는가?
무정(無情) 설법을 들을 줄 알아야지."
소동파에게 화두같은 설법을 하며
소동파를 절에서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소동파는 살아 있는 인간이 설하는 유정 설법은 알아들어도
무정설법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신이 아득해져서 말을 타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폭포수가 있는 곳에 이르러
폭포물 떨어지는 소리가 "쏴"하고 들렸습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소동파는 정신이 깨어
환희에 넘쳐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고 합니다.
"계곡의 물 소리가 부처님의 장광설(長廣說)이요
산빛이 어찌 그대로 청정한 법신(法身)이 아니겠는가!"
즉, 폭포 소리가 부처님의 진리의 말씀이고,
녹음 우거진 산빛이 그대로 청정한 부처님의 법신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밀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절대 긍정하며
대일여래(비로자나 법신)의 세계로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밀교에서는 인간의 몸과 언어와 뜻의
3가지 활동을 단순히 3업으로 보지 않고
부처의 활동 그 자체로 보고 신구의 '삼밀(三密)'이라고 합니다.
4. 삼밀가지
그렇다면 중생의 모든 활동이 그대로 부처님의 활동인데,
수행은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 밀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중생은 본래 부처님과 다르지 않으나,
단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범부 중생이라고 생각하여
점점 더 무명번뇌 속을 헤매는 것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인간이 본래 갖추어져 있는
불성(佛性)을 현현하기 위해서는
불퇴전의 보살행과 보리심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불성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삼밀'이라는 개념을 통해
'심밀 수행'을 통해 불성을 드러냅니다.
구체적으로는
첫째 손으로 수인(手印)을 맺는 신밀,
둘째 입으로 진언이나 다라니를 외우는 구밀,
셋째 정신을 집중하여 신앙의 대상을 관상하는 의밀 수행을
체계적으로 구분하여 설해왔던 것입니다.
이러한 3밀 수행을 통해
부처님의 가피력이 수행자에게 합치되어
수행자와 부처가 일체가 되는 활동을 "삼밀가지(三密加持)"라고 합니다.
일본 진언종의 개조이자 유명한 밀교승려인 쿠카이는
<즉신성불의>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삼밀가지로써 속히 드러난다는 것은
삼밀은 첫째 신밀, 둘째 어밀, 셋째 심밀이다.
법신불(대일여래)의 삼밀은 깊고 미세하여
십지의 보살들도 보거나 들을 수 없기 때문에 '밀(密)'이라고 한다.
개개의 존재들이 티끌과 같이 무수한 삼밀을 갖추었으며,
서로 가입(加入)할 수 있으며, 피차가 서로 섭지(攝持)할 수 있다.
중생의 삼밀도 또한 이와 같기 때문에 '삼밀가지'라고 한다.
만약 진언을 외우는 진언 행자가 이 의미를 관찰한다면
손으로 인계를 맺고, 입으로 진언을 외우며, 마음은 삼매에 머문다.
삼밀이 상응하여 가지(加持)하기 때문에 일찍 대실지(大悉地)를 얻는다."
이와 같이 삼밀의 의미가 밀교에서 말하는
실천 수행인 '삼밀가지'의 진실한 비밀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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