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131) 남자 재가 신자 쭐라깔라 이야기>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시던 어느 때
재가 신자 쭐라깔라와 관련하여 게송 165번을 설법하셨다.
남자 재가 신자 쭐라깔라는 초하루와 보름날의 재일(齋日)에
제따와나 수도원에 가서 8계를 받고 조용히 좌선 정진하는 한편,
부처님과 비구들의 설법을 들으며 밤을 새곤 하였다.
그가 어느 때 재일의 밤을 지내고
새벽녘에 수도원의 못가에서 세수를 하고 있는데,
한 떼의 도적들이 추격해 오는 사람들의 관심을 딴 데로 돌리기 위해
훔친 물건 얼마를 그 앞에 던져 놓고 달아나 버렸다.
도적들을 뒤쫓아 오던 사람들은
자기네가 잃어버린 물건 중 일부가
쭐라깔라 앞에 놓여 있는 것을 보고는
그를 도적으로 단정하여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에 다행히도
쭐라깔라를 알고 있는 여자 종 한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새벽에 물을 길러 나왔다가
이 광경을 보고 이 사람은 도적이 아니라
어젯밤에 이곳 수도원에서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밤을 샌 사람이라고 증언해 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그렇다면 이 사람은 도적일 수 없다면서
그를 놓아 주고 돌아갔다.
아침이 되었을 때 부처님께서는
이 일에 대해 보고를 받으신 뒤
쭐라깔라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쭐라깔라여!
위험으로부터 너를 도운 것은
실로 그 여자 종의 증언만은 아니니라.
네가 실제로 남의 것을 훔치지 않았다는 사실이
너를 도운 것이니라.
그와 같이 착한 행동은 스스로를 돕나니,
누구나 악한 행동을 하면 지옥으로 가게 되며,
착한 행동을 하면 천상에 태어나거나 열반을 깨닫느니라."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실로 자기에 의해 악이 행해지고
자기에 의해 스스로 타락되며
자기에 의해 악이 행해지지 않고
자기에 의해 스스로 청정해진다.
청정과 청정치 않음은 자기에게 달린 것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청정케 할 수는 없다.
부처님의 이 설법 끝에 남자 신자 쭐라깔라는
수다원 과를 성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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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
불교에서 삶과 세상의 중심은
무엇이라고 말할까요?
바로 업입니다.
업을 다른 말로 바꾸면
'나'이고 '자기'입니다.
불교에서는 '무아'를 말하지만,
'무아'는 영원불변한 나는 없고 변한다는 의미인 것이지
업을 짓는 나, 업을 짓는 나 자신을 부정하는 말이 아닙니다.
내(자기)가 업을 짓는데,
엄밀하게 말하면 나의 마음입니다.
나의 손가락, 머리, 발이 문제가 아니라,
무엇인가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위하게 하는
나의 마음이 업의 중심입니다.
그래서, 법구경 제1장에서는
"나의 마음이 중심이 되고,
나의 마음이 선과 악을 만들어
결국 행복과 괴로움의 윤회를 결정한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어떤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자신이 관리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이고,
자신의 마음을 잘 관리하여
자신의 업을 선한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설합니다.
우리는 살다 보면 좋은 상황,
좋지 않은 상황과 부딪힙니다.
주인공처럼 도적으로 오인받는
불행한 상황도 닥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이 상황에서
자신을 구원해준 핵심은
여종의 증언보다 오히려
자신이 도적질을 하지 않았다는 자신의 업이라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2. 업
착한 행동, 착한 업은
자신을 천상에 태어나거나 열반을 얻게 하지만,
악한 행동, 악한 업은
자신을 지옥으로 향하게 만듭니다.
선과 악, 청정함과 청정하지 않은 것은
자신에게 달린 것이지
신의 뜻이나 운명과 같은 다른 그 무엇이
자신을 다른 길로 인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수행하고 공부한다는 것은
어떤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마음과 자신의 업을 관리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힘들고 어려운 상황과 환경에 닥치면
자신의 살아온 고정관념대로 행동하고
분노, 절망, 탐욕,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 감정에 빠져 탐진치로 흐릅니다.
그래서, 타락하거나 악을 행함으로
결국 나쁜 윤회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수행과 공부가 가치를 가지는 것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마음과 업을
관리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마음이 탐진치로 향하지 않도록 관리하고
자신의 업을 선한 방향으로 관리해 들어가는 노력은
항시도 놓아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다른 말로 깨어남,
마음 챙김, 마음 집중이라고 합니다.
"실로 자기에 의해 악이 행해지고
자기에 의해 스스로 타락되며
자기에 의해 악이 행해지지 않고
자기에 의해 스스로 청정해진다.
청정과 청정치 않음은 자기에게 달린 것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청정케 할 수는 없다."
불교가 왜 마음.. 마음.. 하고,
자신.. 자신.. 하고,
업.. 업을 강조하는가?
내가 변해서
내 마음을 잘 다스리고
내 업을 잘 관리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불교의 가치관, 인생관, 우주관의 중심에는
'나'와 '업'이 있습니다.
이 진실을 법구경의 게송으로 설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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