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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법구경(141) 아나타삔디까의 아들 깔라 이야기

by 아미타온 2025. 4. 1.

<법구경(141) 아나타삔디까의 아들 깔라 이야기>

 

<안동 봉정사 영산암>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시던 어느 때,

아나타삔디까의 아들 깔라와 관련하여 게송을 설법하시었다.


아나타삔디까의 아들 깔라는
부처님이나 제자 비구들이 자기 집에 오실 때

멀리 가 있거나 집 안에 숨는 버릇이 있었다.

 

아나타삔디까는 자기 아들의

이런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는 아들이 만약 이런 습관을 고치지 않으면

다음 생에는 반드시 낮은 세계에 태어나는 과보를

면하기 어려우리라 여겨 매우 두렵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아들의 습관을 고칠 방책을 궁리했다.

그는 돈으로 아들의 마음을 움직여 보기로 했다.


아나타삔디까는 아들에게

만약 초하루나 보름날 저녁에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는 곳에 가서

하룻밤을 새고 오면 얼마의 돈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깔라는 기원정사에 가게 되었다.

그러나, 법문을 듣지 않은 채 그저 시간만 보내다 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반가운 나머지 아들에게 먼저 아침 죽을 먹으라고 권했다.

그렇지만 아들은 죽보다 돈부터 달라고 말했다.

 

다음날 아나타삔디까는 자기 아들에게 이제 부처님으로부터

게송 한 구절을 배워서 외면 그 보상으로 일천 냥의 돈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깔라는 기원정사에 가서 부처님께 인사를 올리고

부처님으로부터 무엇인가 배우고 싶다고 청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깔라에게 짧은 게송 한편을 가르쳐 주시고

이것을 외면 아주 좋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한편 부처님께서는 강한 의지를 깔라에게 보내셔서

그 게송을 외울 수 없도록 만드셨다.

 

깔라는 부처님으로부터 받은 게송을 외려고

여러 번 읽고 열심히 애를 썼다.

 

그러나 끝내 외지는 못했고,

그 대신 뜻을 깨우치게 되었다.

 

그는 그 게송의 의미를 터득하면서

일념 삼매를 이루어 수다원 과를 성취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이 깔라는

부처님과 비구들을 따라 자기 집에 도착했다.

 

이때 깔라는 고요한 마음으로

예전과는 매우 다른 발원을 올리고 있었다.

 

그는 부처님과 비구들이 계시는 앞에서

아버지가 자신에게 일천 냥의 상금을 내놓지 않기를 바랬다. 

 

왜냐하면 자기가 초하루와 보름날 수도원에 가서 밤을 샌 것이

돈을 받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부처님과 비구들에게 탄로나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아나타삔디까는 부처님과 비구들에게 공양을 올린 다음

수도원에서 지내고 돌아온 아들에게도 아침 죽을 주었다.

 

그런 뒤 그는 고마운 마음으로

아들에게 일천 냥의 돈을 상금으로 내놓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아들은

그 상금을 부끄러이 여기며 받지 않는 것이었다.

 

아나타삔디까는 아들에게 돈을 받으라고 거듭 권했다.

그렇지만 깔라는 아주 겸손한 태도로 돈 받기를 거절했다.

 

그것을 본 아나타삔디까는 부처님께 사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제 아들은 사람이 아주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제 아들이 하는 짓이 저의 마음에 들기 시작합니다.

저는 이제 아들을 신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나타삔디까는 자기가 어떻게 아들을

초하루와 보름의 재일에 수도원에 가서

지내도록 했는지 자세히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나타삔디까여!

그대의 아들 깔라는 이제 세계를 다스리는 전륜성왕보다,

그리고 천상의 브라흐마 천왕보다 더 큰 보배를 갖게 되었느니라."

 

그리고 부처님께서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이 땅 위에서 왕이 되는 것보다
또는 천상에 태어나기보다
더 나아가 우주 전체를 지배하는 자보다도
수다원 과를 성취하는 것이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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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방편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아버지 아나따삔디까는

기원정사를 부처님께 보시했던

급고독(수닷타) 장자로 추정됩니다.

 

부처님 교단에 대한 보시와 공양으로

불교 포교에 가장 큰 공헌을 하셨던 분이지만,

자식 교육에 있어서도 상벌과 보상을 적절히 활용할 줄 아는 

아주 지혜로운 분이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들 깔라는 

부처님이나 비구들이 자기 집에 올 때

멀리 나가거나 숨는 것으로 보아서는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아이였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부처님이나 비구들이 오셨을 때

즐겁게 부처님이나 비구들과 친해지고

설법도 듣고 바른 길로 인도되기를 바랬습니다.

 

그러나, 부끄러워서 숨거나

도망가는 아들을 보고는

'저 자식 커서 무엇이 될려고 저러나..'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아들이

부처님에 대한 귀의심이 없이

부처님을 배척함으로써

좋지 못한 악도에 태어날 것을 걱정하였던 것입니다.

 

지혜로운 아버지는

이러한 아들을 야단치거나

억지로 부처님이나 비구들 앞으로 내모는 것이 아니라,

'돈'이라는 보상을 내걸고 아들의 습관을 고쳤던 것입니다.

 

코살라 국 제일의 재벌답게

처음에 절에만 갔다오는 것으로 10만원을 주고

다음에 절에 가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외우면 100만원 주는 식으로

아들이 바라는 적절한 보상을 해 주면서

아들이 부처님과 점점 친해지고 불법과 가까와지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아들 깔라는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보상이 걸린 일에는 아주 적극적이고

말귀를 알아듣는 눈치가 빠른

영리하고 발전 가능성이 높은 아이였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듣고(문聞)

그 뜻을 이해하고 사유하는 것(사思) 만으로

불법승 삼보에 대한 귀의심과

인과와 연기에 대한 이해가 생기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수다원 과에 오른 이후에 아들 깔라는

아버지가 주는 돈이라는 보상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외우려했던 것을 부끄러워했습니다. 

 

난다 존자가 아라한이 된 이후에

천상의 여인을 안기 위해 

수행했던 것을 부끄럽게 여긴 것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달라진 아들을 바라본

아버지 급고독 장자의 마음은 얼마나 기뻤을까요?

 

백만원 보상을 내걸고 

부처님과 좀 친해지기를 바랬는데,

억만금을 주고도 얻지 못할

수다원의 경지를 얻은 아들을 얻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대승 불교 경전인 <법화경>에는

아버지와 헤어져 떠도는 거지 아들이 나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만난 순간

자신의 아들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구차한 삶을 살다보니

훌륭한 분이 아버지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허드렛일 시키고,

청소일 시키다가

나중에는 집의 모든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일 시켜서

근기를 성숙시켜 나갑니다.

 

마지막에 대중들 앞에 자신의 아들이라고

당히 밝히는 아버지 심정 같다고 생각합니다.

 

 

2. 수다원

 

수다원은 '예류과(豫流果)'라고 합니다.

 

'흐름에 든 과위'라는 이름처럼

더 이상 중생이 아니라

성자의 흐름(물결)에 든 수행자라는 의미입니다.

 

초기 불교 교리에 의하면

1) 자아가 영원하다는 유신견의 타파

2) 사성제와 인과에 대한 믿음

3) 그릇된 제사나 미신에 대한 악견에서 벗어난 존재로서

7번 정도만 윤회하면 해탈이 보장되어 있는 수행의 경지입니다.

 

수다원이 되는 것이

이 땅에서 왕이 되는 것이나

천상에 태어나는 것이나

우주를 지배하는 천왕이 되는 것과 같은

세속의 영광을 얻는 것에 비해서 훨씬 더 낫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세속의 영광과

수행자의 영광이 어떻게 다른지,

수행자는 무엇을 추구하는 존재인지

깊이 있게 생각하면서 외워야 할 게송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