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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법구경(145) 과거 7불에 대한 아난 존자의 질문 이야기

by 아미타온 2025. 4. 15.

<법구경(145)  과거 7불에 대한 아난 존자의 질문 이야기>

 

<고창 도솔산 선운사>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시던 어느 때,
아난 존작 부처님께 과거 모든 부처님들께서
비구들에게 어떤 기본적인 가르침을 베푸시었는지를
여쭌 것과 관련하여 게송 183번에서 185번을 설법하셨다.

어느 때 아난 존자는 부처님께

현재의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가르치시는 기본적인 법과 계율이
과거의 부처님들이 비구들에게 가르치신 것과 꼭 같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것인지에 대해 여쭈어 보았다.

왜냐하면 전에 부처님께서는
과거의 일곱 부처님들의 부모,
부처님들의 수명, 법이 존속되었던 기간,
어떤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으셨는지,
비구 제자들의 수와 으뜸가는 제자들의 이름,
그리고 부처님들을 받들어 포교에 큰 공로를 세운
신자들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말씀하시었으나,
그 부처님들이 가르친 내용에 대해서는 말씀하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과거 부처님들이
재일을 지키시는 시기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었지만,
기본적인 가르침만은 지금의 당신과 아무 차이가 없다고 대답하셨다.

 

<선운사 대웅전>


부처님께서는 과거의 부처님들이
재일을 지키셨던 날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비바시 부처님은 칠 년에 한 번씩 계율을 독송하는

포살 재일을 두셨다.


이때는 포살 계율을 낭송하는 일을 한 번만 하여도
그 효과가 칠 년간이나 지속되어 모든 수행자들이 청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 다음 시기 부처님 때는 육 년에 한 번,
구류손 부처님과 구나함모니 부처님 때는 매년 한 번,
카사파 부처님 때는 여섯 달마다 한 번, 포살 재일을 두시었다.

이처럼 비록 그 기간은 달랐지만,
제자들을 지도하시고 경책하시는 기본적인 내용과 게송은 같은 것이었다.

이같이 아난 존자에게 일러주신 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다음의 게송 세 편을 읊으셨다.

 

<선운사 대웅전 비로자나불>



일체 악행을 저지르지 않고
착한 일을 힘껏 행하며
자기의 마음을 청정히 하는 것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고통을 참고 견디는데는 인욕심이 으뜸이요,
니르바나(열반)는 위없는 여래의 가르침.
수행자는 남을 해치지 말라.
남을 해치거나 괴롭히는 자는 수행자가 아니다.

 
욕설을 하지 말고 남을 때리지도 말라.
계율을 잘 지켜 스스로 억제하라.
먹는데 절제하고 고요한 곳에 머물며
높은 선정에 마음을 바치라.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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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동백꽃>

1. 과거 7불 신앙

 

인도에는 과거 7불 부처님 신앙이 있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이전에 

6분의 부처님들이 이미 존재했다는 과거불에 대한 믿음과 신앙입니다. 


법구경에도 등장하는 것처럼
이러한 과거불 신앙은 부처님 당시부터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초기 불교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포함해서 
일곱 부처님들이 세상에 출현하셨다고 믿었습니다. 

즉, 비바시불을 비롯해서
시기불, 비사부불, 구류손불, 구나 함모니불, 가섭불의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에 존재하셨던
6분의 부처님에 대한 구체적인 과거불 신앙이 존재했습니다.


아난 존자가 말씀하신대로
이들 각각의 과거의 부처님의 출현 시기, 출신, 성도 과정,
제도한 중생들의 숫자 등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다음과 같이 남아 있습니다.

 

<선운사 동백꽃>

 

2. 과거 7불의 교화
 

가장 먼저 오셨다는 비바시불은 91겁 전에 왕족으로서 태어나
파탈리수 아래서 성불하고  3회의 설법만으로 34만의 중생을 교화하였다고 합니다.


두번째 시기불도 역시 왕족으로 태어나 분다리수 아래서 성도를 하고는
3회의 설법을 하여  1회에 10만, 2회에 8만, 3회에 7만명을 제도하였다고 합니다.


세번째 비사부불은 31겁전에 마찬가지로

왕족으로 태어나 사라수 아래서 도를 이루고 
1회에 7만명, 2회에 6만명에게  설법하여 교화하였다고 합니다.


네번째 구류손불부터  일곱번째 석가모니불은 현겁에 출현한 부처님들로
네번째 구류손불은 바라문의 종족으로 출생하여 사리사수 아래서 도를 깨닫고
1회의 설법으로 4만의 대중을 교화 했습니다.


다섯번째 구나함모니불도  바라문의 가정에서 출생하여 

오잠바라수 아래서 성불한 다음
1회의 설법으로 3만의 중생을 교화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섯번째 가섭불 역시 바라문의 가정에서 태어나

니그로와 나무 아래서 정각을 이루고
한차례의 설법으로 2만명의 제자를 제도하였다고 합니다.


우리 석가모니 부처님은 카필라성의 왕족으로 태어나

보리수 아래서 성불했고
45년간 설법 끝에 수많은 중생을 제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7부처님의 출현 시기마다
중생들의 수명이나 근기가 달라서
처음 비바시 부처님 때의 수행자들은 7년마다 한 번씩
계율을 점검하고 참회하는 포살 의식을 하면 수행자들의 청정이 유지되었지만
7번째 석가모니 부처님 때는 1달에 2번씩 포살 의식을 하는 재일을 두었다고 하니
중생들의 욕망과 번뇌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탁해진다는 관점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거불 신앙은 대승불교 시대로 오면서
과거겁, 현재겁, 미래겁의 시간과 공간에 
수많은 부처님들과 보살님의 출현과 신앙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선운사>

 

3. 아난 존자의 의문

 

그런데, 과거 7불에 대한 믿음이 있던 아난 존자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품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포함한 일곱 부처님들이
이 세상에 출현하셔서 중생들에게 설법하신 

공통된 주된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과거부터 현재까지 부처님들께서 가르치는

공통된 불법의 대의란  무엇일까?'

 

이 의문을 부처님께 질문 올리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부처님의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무릇 온갖 악을 짓지 말고
 착한 일만 행하여서
 자기의 마음을 맑히는 것이 
 모두 부처의 가르침이다'

한문으로 쓰면
'제악막작(諸惡莫作)하고
 중선봉행(衆善奉行)하여
 자정기의(自淨其意)함이
 시제불교(是諸佛敎)니라' 하는 4구의 짧은 게송입니다.

그래서, 이 짧은 가르침을
흔히 '7불통계(7부처님의 공통된 가르침)'라고 합니다.

 


4. 칠불통계의 의미

 

모든 부처님이 가르치시려고 했던
불법의 대의는 다름 아니라
악행은 조금도 하지 말고 선행을 널리 행하고 
그것으로 끝나지 말고 자기의 마음을 청정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간단 명료해서 누구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자비로운 부처님은 이 간단한 말씀도
중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시 한번 풀어주십니다.


악행을 행하지 않는 근본은
남을 해치려는 짓을 그만두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그만두고
말로 남을 해치려는 말을 그만두고
행동으로 남을 해치려는 행동을 그만두라는 것입니다.

인욕심이 필요한 것은 것은
마음과 말과 행동으로

남을 해치려는 짓을 그만두기 위해
자신을 절제하고 제어하고 참는 마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악업을 막는데서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착한 일을 널리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남에게 베푸는 보시.
다른 사람에게 이롭고 유익하고 친절한 선행.
부처님과 수행자들을 봉양하는 공양.
유쾌함과 행복을 주는 애어.

이러한 착한 일을 널리 행하고
그의 마음은 맑고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지나친 욕망을 제어하고
마음 집중을 위한 선정을 닦는 것.

 

이를 통해 해탈과 열반을 추구하는 것.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

즉 불교(佛敎)라는 것입니다.

참 단순, 명료, 명쾌한 가르침입니다.

 

 

5. 조과 선사와 백낙천 이야기

 

칠불통계에 대한 재미난 한토막 일화가 있습니다.

중국 당나라 때 항주의 도림 선사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거처하는 곳이 집이나 절이 아니라,

큰 소나무 가지위에서 새처럼 지냈습니다.


그래서, 그를 '조과(鳥果) 선사'라는 별칭으로 불렀습니다.

하루는 도림 선사에게 어느 거사가 찾아왔습니다.
'백낙천'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유·불·선 에도 능통할 뿐더러

당대의 유명한 시인으로 추앙받고 있었습니다.

백낙천은 소나무 꼭대기에 앉아 있는 선사를 보고

위험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도림선사는 오히려 장작과 불이 만나 서로 성한 것처럼
당신의 불타는 마음이 더 위험하다고 찔렀습니다.
 
백낙천은 이번에는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선사는 대답으로 칠불통계를 읊었습니다.


"악한 짓을 하지 말고

착한 짓을 하면서 마음을 맑히면

그게 불교지"

 

백낙천은 실소를 지었습니다.

"아니 그것은 세살 짜리 아이도 아는 얘기 아닙니까?"

 

이 물음에 도림 선사는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세 살짜리도 말은 할 수 있으나,

팔십 먹은 늙은이도 행사하기가 어렵다네."

 

백낙천은 그 자리에서 선사에게 절을 하고 불법에 귀의했다고 합니다.


 이 일화는 지금도 불문에서는 널리 알려져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불법의 대의는 말은 쉽지만 구현함은 쉽지 않다는 것.
불법은 앎을 통해 구현하는 삶 속에서 의미를 가진다는 것.

깊이 통찰해야 할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