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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법구경(144) 부처님을 만난 에라까빳따 용왕 이야기

by 아미타온 2025. 4. 11.

<법구경(144)  부처님을 만난 에라까빳따 용왕 이야기>

 

 


부처님께서 바라나시 근교에 계시던 어느 때,

에라까빳따 용왕과 관련하여 게송 182번을 설법하셨다.


에라까빳따라는 이름을 가진 용왕이 있었다.

 

이 용왕은 과거 카사파 부처님 때 오랫동안 비구 생활을 했는데,

그때 그는 사소한 계율을 지키지 못한 것을 너무 걱정한 나머지

그것이 원인이 되어 해탈하지 못하고 용왕으로 태어난 것이었다.

 

그는 용왕이 되어서도 법을 듣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다음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용왕이라고 해도 세상에

부처님이 출현하신 것을 알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네 딸 가운데 하나를 시켜

세상에 부처님이 출현하셨는지를 알아보게 했다.

 

용왕은 딸로 하여금 게송을 읊게 하고

그 게송을 바르게 알아듣는 사람은

딸을 아내로 삼게 해주겠다고 공개적으로 제안했다.

 

그런 다음 딸을 시켜 매달 초하루와 보름날 어여쁘게 치장하고

시장 한가운데 나가서 춤을 추면서 노래로써 질문을 던지게 했다.

 

그러자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 어여쁜 용왕의 딸을 욕심내어

갖은 지혜로써 그녀가 던지는 질문에 대답하겠다고 나섰다.

 

그렇지만 아무도 그녀의 질문에 바르게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으며,

용왕의 딸은 계속해서 춤추고 노래하며 질문에 대답할 사람을 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 부처님께서는 신통력으로써

'웃따라'라는 젊은이를 보시고 이 젊은이가

용왕의 딸이 내세우는 질문과 관련하여

수다원 과를 성취할 시기가 무르익었음을 아시었다.

 

바로 이때쯤 웃따라는 에라까빳따 용왕의 딸을 만나러 가고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그 청년을 멈춰 세우시고 이렇게 물으셨다.

 

"너는 용왕의 딸이 던지는 질문에 대해 어떻게 대답할 작정이냐?"

 

청년이 공손하게 사뢰었다.

 

"그에 대해서 부처님께서 설법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설법을 해주시었고,

설법을 들은 웃따라는 법문을 잘 이해하여 즉시 수다원 과를 성취하였다.

 

그렇게 되자 웃따라는 이제 용왕의 딸과 결혼하는 문제 따위는

아무런 관심이 없게 되어 버렸다.

 

그는 이제 수다원 과를 성취한 성자로서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욕망을 일으키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용왕의 딸이 내세우는

여러 가지 질문에 바르게 대답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여

가던 길을 계속 가기로 했다.

 

그래서 마침내 용왕의 딸이 있는 곳에 도착해

그녀의 아름다운 노래를 들은 다음

그 노래에 담긴 의미를 음미하여 자기가 할 대답을 정리했다.

 

용왕의 딸이 용왕을 대신하여 제시한 문제는 다음과 같았다.


1. 어떤 사람을 통치자라 하는가?
2. 번뇌 망상에 가려져 있는 사람을 통치자라고 할 수 있는가?
3. 어떤 통치자가 번뇌 망상으로부터 벗어난 통치자인가?
4. 어떤 사람을 어리석은 자라고 하는가?


이에 대해 웃따라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1.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을 잘 다스리는 사람을 진실한 통치자라 한다.
2. 번뇌 망상에 가려져 있는 사람은 통치자가 아니다.

    모든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해탈자를 진실한 통치자라 한다.
3. 모든 삿된 견해와 욕망, 탐욕, 성냄, 어리석음으로부터 벗어나

    마음이 맑고 고요한 사람이 번뇌 망상으로부터 벗어난 통치자이다.
4. 감각적인 쾌락에 얽매여 있는 자를 어리석은 자라고 한다.

 

 

이 같은 대답을 들은 용왕의 딸은 매우 기뻐하며

더 깊이 있는 지혜를 끌어내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더 내놓았다.

 

용왕의 딸은 노래로써 감각적 쾌락이

홍수처럼 흘러넘치는 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끝없이 되풀이하여 다시 태어나는 윤회는 왜 일어나는지,

그리고 거짓된 가르침, 삿된 진리, 무지에 대해서 물어 보았다.

 

그러자 웃따라는 부처님으로부터 들은 대로 막힘없이 잘 대답해 주었다.

 

이때 용왕은 젊은이가 정확하게 모든 질문에 대답하는 것을 듣고

지금 이 세상에는 부처님이 출현해 계신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되어 기쁘기 짝이 없었다.

 

용왕은 젊은이에게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자기를 인도해 달라고 애원했다.

 

그리하여 웃따라는 에라까빳따 용왕을 데리고

부처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게 되었는데,

용왕은 기뻐하며 부처님께 인사를 드린 뒤 자기를 소개해 올렸다.

 

그러면서 자기가 왜 딸을 시장에 내보내게 되었는지를,

또 딸이 자기 뜻을 잘 따라 주었다는 것을 말씀드렸다.

그 다음 그는 부처님께 자기가 왜 용왕이 되었는지를 다음과 같이 사뢰었다.

 

~~

 

카사파 부처님 당시 그는 배를 타고 여행을 하던 중

우연히 배가 풀잎을 스칠 때 그 풀잎을 붙잡았는데,

배가 빠른 속도로 달리던 중이었기 때문에 그 풀이 뽑혀 버렸다.

 

그러자 그는 무척 당황하여 걱정하면서 수도원에 돌아가면

꼭 이 일에 대해 참회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그 일 때문에 마음 집중이 잘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죽음을 맞이할 때,

과거 풀을 뽑고 참회하지 못한 것이

허물이 되는 줄은 알아 참회하고 싶었지만

곁에 참회를 받아 줄 비구가 없었기 때문에

정식으로 참회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렇게 걱정이 남은 상태로 운명하게 된 그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갠지스 강에 에라까빳따 용왕으로 태어나

두 부처님이 지나가신 줄도 모르고 살아왔던 것이다.

 

~~~

 

그리하여 그는 자기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며 지내다가

이제는 부처님이 출현하시면 다시는 놓치지 않으리라 결심하여

딸을 시켜 게송을 읊게 하였고,

그 결과 석가모니 부처님을 만나게 된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긴다고 사뢰었다.

 

용왕의 이야기를 다 들으신 부처님께서는

그에게 인간으로 태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하는 것과,

인간으로 태어나더라도 부처님이 세상에 계실 때 태어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하는 점,

그리고 그렇게 태어난다 해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해 설법하셨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어려운 것은 사람으로 태어남이요
어려운 것은 생명이 끝나지 않음이며
어려운 것은 바른 법을 들음이요
어려운 것은 세상에 부처님이 나심이라.


부처님께서 설하신 이 법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이익을 얻었다.

다만 에라까빳따 용왕은 사람이 아니라

동물의 몸이었으므로 수행의 과를 성취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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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맹구우목

 

인도 성지 순례를 갔을 때

부처님 깨달음의 성지 붓다가야에 갔었습니다.

 

붓다가야에는 연못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연못에 뱀(코브라)처럼 생긴 용왕이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의 법열에 잠겨 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코브라처럼 생긴 큰 머리를

우산으로 하여 부처님을 보호해주는 것을 형상화한 조각이었습니다. 

 

우리 나라 전설에는 용왕은

길고 하얀 수염의 신선처럼 형상화되는데 반해

인도에서는 코브라처럼 생긴 큰 뱀과 같은 신령한 영물(동물)로서

인식된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이번 법구경의 이야기가 이해가 빠를 것 같습니다.

 

불교에는 '맹구우목(盲龜遇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눈먼 거북이가 큰 바닷가를 헤엄치다가

백년에 한번씩 물 위로 머리를 내놓는다고 합니다.

 

그 때 구멍 뚫린 판자를 만나면

잠시 구멍에 머리를 밀어넣고 쉴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면 그냥 물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눈 먼 거북이가 망망대해에서

구멍 뚫린 판자를 만나는 것처럼

어리석고 악에 물든 범부 중생들이

6도를 윤회하다가 사람 몸을 받기도 어렵지만

불법을 만나기는 더 하늘에 별따기 라는 것에 대한 비유입니다.

 

사람 몸을 받아

불법을 만나는 희유한 인연을 만났을 때

열심히 불법을 공부해서

보다 지혜롭고 자비로운 인격체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러한 소중한 인연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을 때

가슴이 서늘하고 후회 막급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비유가 바로 맹구우목의 비유입니다.

 

배를 타고 가다가 풀을 뽑아버린 일에 대해서

양심의 가책을 가지고 마음 아파했던

즉 식물까지도 허투로 죽이지 않는 섬세한 비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섬세함이 오히려 병이 되어 

사소한 계율에 대해 참회를 하지 않은 것이

강박이 되고 걱정이 되어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용왕으로 태어나 불법 만나기를 학수고대하는 모습과

불법을 만나도 동물의 몸이어서 수행의 과를 얻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불법을 만난 인간으로서의 삶을 허투로 보내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얼마나 불법을 만나야 할 존재들이 많은지,

불법을 만나기를 희구하는 존재들이 많은지,

불법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2. 수다원 과

 

용왕과는 대조적으로

사람 몸을 얻어 스승과 불법을 만나

불법의 다르마를 이해하고 통찰함에 의해

수다원 과라는 수행의 결과를 얻은 젊은이가 나옵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즉시

그 말뜻과 의도를 알아듣고 이해하고

법귀의가 이루어짐으로서 단박에 수다원 과에 오릅니다.

 

욕망과 망상에 사로잡히지 않고 집중해서

부처님 말씀을 불신과 회의 없이

순수하게 받아들인 결과입니다.

 

참된 통치자란 무엇인가 라는

용왕의 딸의 질문에 대한

수다원 과를 얻은 젊은이의 대답은

정말 간단 명료한 명답입니다.

 

진리는 명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6가지 감각 기관을 잘 다스려

탐진치 삼독으로부터 벗어나

마음의 선정과 평온을 얻은 해탈자를

참다운 통치자라고 한다는 대답입니다.

 

인간의 몸을 받아 불법을 수행하는 수행자라면

가슴 속에 깊이 간직하고 새겨야 할 명답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