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보덕사>
1. 영월과 단종
'편안함이 넘치는 고을'이라는 뜻의
강원도 영월(寧越).
신선이 사는 것처럼
동강, 서강의 맑은 물이 흐르고
적당히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멋진 풍광과 따스함이 넘치는 곳입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영월 땅에는
‘단종애사(端宗哀史)’의
슬픈 소년 왕의 역사와 관련된 유적지가 있습니다.
단종이 귀양살이하던 청령포,
단종이 사약을 받았던 관풍헌,
단종의 슬픈 넋이 잠들어 있는 장릉(莊陵)이 그 곳입니다.
2. 단종의 원찰, 보덕사
'은혜를 갚는 절'이라는 뜻의
보덕사(報德寺).
보덕사는 단종의 왕릉인
장릉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보덕사는 세조의 찬탈에 의해
불행하게 죽은 어린 단종의 넋을 위무하고
극락 왕생을 발원하기 위해 지은 왕실의 원찰입니다.
지금은 비구니 스님들께서
수행하고 계신 비구니 스님 도량입니다.
보덕사는 태백의 낮은 산자락이
어머니 품처럼 절 주위를 둘러싸고,
넓은 공간에 극락보전을 중심으로
여러 법당들이 여유롭게 서 있어 평안하고 정갈한 느낌을 주는 도량입니다.
3. 단종어각
보덕사는 신라 시대 때 처음 창건되었는데,
조선 영조 때 단종의 능침 사찰이자
왕실의 원찰로서 왕실의 시주를 받아 중창되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인근의 절을 통솔하던 수사찰로
많은 승려들이 머물던 큰 절이었습니다.
보덕사에는 단종의 넋을 모신 ‘단종어각’이 있습니다.
삼촌인 세조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나
영월로 유배 온 단종은 단종을 다시 복위하려는
역모 사건이 일어나자
17살의 어린 나이에 사약을 받고 죽었습니다.
조선 숙종 때 단종은 복권되었고,
장릉을 중수하고 어린 단종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사당인
‘단종어각’을 세우고 보덕사를 중창했습니다.
<단종어각>에는 말을 타고
쓸쓸히 길을 떠나는 단종에게 한 늙은 신하가
음식을 주면서 공손히 고개를 숙이는 그림이 있습니다.
단종을 깊이 사모하여 자주 찾아뵙고
서로 시를 읊으며 위로했던
'추익한'이라는 충신이 직접 딴 산머루와 달래를
단종에게 바치는 그림입니다.
지금의 고1 나이인
17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서 쫓겨나
이 곳 영월에서 홀로 얼마나 큰 두려움과 외로움에 눈물 흘렸을까요?
편안함이 넘치는 아름다운
고을 영월이라도 인간의 탐진치가 펼쳐지는
사바세계의 어두운 그림자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종 복위 사건으로 단종을 살려두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세조에 의해 사약을 마시고 죽은 단종.
단종의 죽음 이후 세조에게 화를 입을까 두려워
아무도 왕의 시신을 거두는 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 때 영월의 말단 공무원이었던 엄홍도가
“옳은 일을 하다가 화를 입는 것은 달게 받겠다.”고 하면서
몰래 시신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이익과 배신이 난무한 시대에 의(義)를 위해
행동한 엄홍도의 충정와 용기가 가상하게 느껴집니다.
4. 아미타 삼존불
극락보전에는 아미타 부처님과 대세지 보살님,
관세음보살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조선 영조 때 봉안된 아미타 삼존불인데,
덕성스러운 상호입니다.
500년 전에 이 세상을 떠난 단종이지만,
가엾은 영혼이 두려움과 외로움이 없는
안락한 세상으로 윤회할 수 있었기를 빌어 봅니다.
억울하고 원통한 죽음을 당한 사람들의
상처받은 영혼을 불보살님의 가피력으로 잘 위무해서
극락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함께 빌어봅니다.
보덕사는 6.25 때 절 대부분이 소실되어
새롭게 중창되었습니다.
독성각, 산신각 등의 여러 전각들이 있고,
비구니 스님들이 절에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5. 해우소
보덕사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유적은
근심을 씻는 '해우소'입니다.
조선 시대 해우소 양식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데, 한번 근심을 씻어보면 좋습니다.
보덕사를 참배하고 바로 옆 단종릉인 장릉과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도 함께 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땅 영월에 깃든 단종의 아픈 삶을 생각하며
자비와 사랑으로 우리 삶의 길을 잘 걸어가야 함을
명상해 본다면 뜻깊은 정토 도량 참배가 될 것입니다.
<유튜브 극락회상 - 영월 보덕사>
https://youtu.be/IYiZX764n7A?si=N1QHae2J9SPnaBE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