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 일본 교토 여행 후기(3) - 교토 국립 박물관 >

맑지만 쌀쌀한 날씨입니다.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
호텔 근방 아반티에 있는
'툴리스 카페'에서 따뜻하게 커피 한잔 했습니다.
차분하게 휴식을 취하고
교토 국립 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혼자 여행하는 장점은
여행의 페이스를 내 스스로
조절하며 갈수 있다고 합니다.
혼자 온 여행은
여유롭게 다니려고 합니다.
여행에서 여유는
쉼표의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커피한잔 하며
쉼표의 시간을 갖고
교토 국립 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교토 박물관은 오랫만입니다.
2019년 6월에 왔을 때
일본 3대 정토 조사인
잇펜 스님의 일대기를 그린
'잇펜 스님 두루마기 그림전 및 시종 성보전'을 본 뒤로 처음입니다.

교토 국립 박물관의 외관입니다.
고대 서양 철학자와 동양의 신선이
사이 좋게 앉아 있는 포즈라고 할까요?
재미있습니다.

파란 하늘에 흰 구름~~
안도 다다오 풍의 연못 정원에
저 멀리 낮은 건물 사이로 교토 타워가 보입니다.
교토의 감성입니다.
내가 교토에 와 있다는 실감이 듭니다.

교토 박물관은 3층 도자기관,
2층 회화관,
1층 불상관 을 중심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많은 문화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 용산 중앙 박물관이 좁은 공간 속에
다양한 유물들을 많이 전시하는 집약적 전시풍이라면
교토 박물관은 소장품이 많아서 그런지
때에 따라 소장품을 번갈아가며 여유있게 전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울 용산 리움 미술관 처럼
널찍널찍 여유롭게 관람할 수 있어 좋습니다.
예전에 성수기 때는
교토 박물관 들어가려고
매표소 도로변에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선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비수기라서 그런지 줄도 없었고
박물관도 여유로웠습니다.
여유롭게 감상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불상입니다.
중국 양나라 때의 고승인
보지(寶誌) 화상 조각입니다.
참 독특한 불상 조각입니다.
12세기 일본의 한 조각가가
중국 남북조 양나라의 신비로운 스님
보지 화상(418~514)을 묘사한 명작입니다.
얼굴이 둘로 갈라지는 가운데,
그 안에 숨어진 십일면 관세음보살의
얼굴이 드러나는 파격을 표현했습니다.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 얼굴의 이마에
이제 막 십일면 관음의 얼굴 일부가
드러 나려고 하는 모습인데,
자기 안의 관세음보살이 현현되는 특별한 순간을 포착한 것입니다.
보지 화상은 당시 승찬 대사의
<신심명>과 쌍벽을 이루는
<대승찬>이라는 유명한 선시를
지은 스님으로 기행으로 유명했습니다.
<대승찬>의 초반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大道常在目前(대도상재목전) 대도는 항상 눈 앞에 있어,
雖在目前難覩(수재목전난도) 눈앞에 있지만 보긴 어렵다.
若欲悟道眞體(약욕오도진체) 도의 참된 본체를 깨닫고자 하면
莫除聲色言語(막제성색언어) 소리, 색, 언어를 제거하지 말라.
言語卽是大道(언어즉시대도) 언어가 바로 대도이니,
不假斷除煩惱(불가단제번뇌) 번뇌를 끊어 제거할 필요가 없다.
煩惱本來空寂(번뇌본래공적) 번뇌는 본래 텅 비고 고요하지만,
妄情遞相纏繞(망정체상전요) 망령된 생각이 번갈아 서로 얽힌다.
一切如影如響(일체여영여향) 모든 것은 그림자 같고 메아리 같으니,
不知何惡何好(부지하오하호)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할지 알 수가 없다.
有心取相爲實(유심취상위실) 마음을 가지고 모양을 취하여 진실로 여기면,
定知見性不了(정지견성불료) 끝내 견성(見性)하지 못함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若欲作業求佛(약욕작업구불) 업(業)을 지어 부처를 구하려 한다면,
業是生死大兆(업시생사대조) 업이 바로 생사(生死)의 큰 조짐이다.
生死業常隨身(생사업당수신) 생사의 업이 늘 몸을 따르니,
黑闇獄中未曉(흑암옥중미효) 깜깜하게 어두운 감옥 속에서 아직 깨닫지 못한다.
悟理本來無異(오리본래무이) 이치를 깨달으면 본래가 다름 없으니,
覺後誰晩誰早(각후수만수조) 깨달은 뒤에 누가 늦고 누가 빠르겠는가?
法界量同太虛(법계량동태허) 법계의 크기는 허공과 같거늘,
衆生智心自小(중생지심자소) 중생의 지혜로운 마음이 스스로 작다.
但能不起吾我(단능불기오아) 단지 ‘나다’ ‘나다’ 하는 마음 안 일으킬 수 있으면,
涅槃法食常飽(열반법식상포) 열반의 진리 음식에 항상 배가 부르리.
妄身臨鏡照影(망신임경조영) 허망한 몸 거울에 영상으로 비추어지나,
影與妄身不殊(영여망신불수) 영상과 허망한 몸 다르지 않네.
무아의 공성을 체즉하기 위해
'유신견(아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대승찬>에서 내 몸과 감정, 생각을
'나'라고 집착하는 유신견(아상)을 일으키지 않으면
열반의 진리 음식에 항상 배부르다는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나'의 자아가 전변되어
부처님(관세음보살)의 자아가 된다는 것이
밀교의 즉신 성불론이자 입아아입의 합일론입니다.
저 불상은 내 속에 관세음 보살님이 있는
밀교틱한 불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밀교의 '즉신성불', '입아아입'은
나를 내려놓으면서도
나를 바르게 세우는 것입니다.
'나'는 과연 누구인가?
그 질문을 하게 만드는 독특한 불상이었습니다.
일본은 천년 불교 국가라서
많은 불상을 비롯한 불화, 조각들이 있습니다.
불교 공부를 하기에 교토 박물관 투어는 재미있습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추운데 고뇌하느라 수고많은 로뎅입니다.
교토 박물관을 나오니 점심 시간입니다.
박물관 근처에 '코코 카레점'에서
일본 카레로 점심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산주산겐도 근방에
말차 파르페를 파는
일본 전통 찻집이 있습니다.
일본 전통 찻집에 들어가
과일과 함께 있는 말차 파르페를
맛있게 먹으며 식후 말차 타임을 가졌습니다.

말차 파르페를 마시면서
박물관에서 본 불상 조각을 생각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염불하는
정토 교학은 극락 왕생 이후로 성불을 미룹니다.
그런데, 밀교는 이 생에서 이 몸 그대로 성붏는
즉신 성불을 이야기합니다.
밀교의 즉신성불의 자신감에서 어디서 나오는가?
라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절박감에서 나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음 이후 나는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죽고 난 후에 수행할지 어떨지 나는 모릅니다.
불법을 만난 소중한 이 생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죽기 살기로 끝장을 보려는 절박감에서 즉신성불의
교리와 수행 체계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절박감.
가슴을 울리는 단어입니다.
정토 교학은
죽음 이후의 극락 왕생으로 안심을 얻으려 합니다.
그러나, 죽음이 있기 때문에
이 생에서 절박하고 치열하게 수행하려고는 잘 하지 않습니다.
밀교 행자들이 이 생에서 즉신성불을 이루려고 하는 것은
다음생을 기약할 수 없다는 절박함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나무아미타불" 염불하면
다음생에 극락왕생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은
자칫 안일함으로 빠질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통 찻집 입구에 오래된 마중물이 있었습니다.
진짜 오랫만에 봅니다.
작은 양의 물을 넣고
수맥의 물를 끌어 올리는 마중물입니다.
"나무아미타불"의 마중물을 붓고
절박하게 힘차게 펌프질을 해서
아미타 부처님의 자비의 길을 가는
치열한 정토 행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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