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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역사

불교의 역사(5) - 아쇼카 대왕의 발심

by 아미타온 2023. 11. 10.

<불교의 역사(5) - 아쇼카 대왕의 발심>

 

<아쇼카 대왕과 아쇼카 석주의 4마리 사자상>

 

 

1. 인도의 전륜성왕, 아쇼카왕

 

인도 마우리야 왕조의 제 3대 왕이었던 아쇼카 왕(Asoka, BC274-237)

인도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건설하고, 불법을 기반 이념으로 통치를 펼쳤던

불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호법왕이자 전법자 중의 한 분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 약 150년후 서북 인도(오늘날 파키스탄 지방)는

알렉산더 대왕의 침입을 받게 되어 그 지배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스의 서북인도 지배에 항거하여

이들을 물리치고 북부 인도를 통일한 분이

바로 아쇼카 대왕의 할아버지인 마가다국 왕자 출신의 찬드라 굽타입니다.

 

찬드라 굽타는 북부 인도를 통일한 후

마우리아 왕조라는 인도 최초의 통일 왕국을 세웠습니다.

 

아쇼카 왕은 이슬람 무굴 왕조의 악바르 대제

인도의 영국식민에 항거한 비폭력의 성자 간디와 함께

비폭력과, 사상과 종교에 대한 관용,

계급과 종교를 초월한 자비로운 정치를 펼친

인도의 3대 전륜성왕으로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

 

<잔악한 전쟁의 참상을 보고 발심한 아쇼카 왕>

 

2. 아쇼카왕의 발심

 

오늘은 아쇼카 왕이 불법에

귀의하게 된 계기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아쇼카 왕은 아버지 빈두사라왕과

후궁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비천한 신분이었다고 합니다.

 

멀리 지방의 총독으로 가 있던 아쇼카 왕은

정변을 일으켜 99명의 형제를 죽이며 왕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즉위 직후 자신을 모욕하는

대신 5백명과 궁녀 5백명을 죽일 정도로 잔혹하였으며,

궁궐 한켠에 사람을 죽이는 ‘지옥’을 만들어놓고

이곳을 찾는 사람은 모두 죽였을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잔혹한 아쇼카 왕이 불교에 귀의한 것은

즉위 8년 칼링가 왕국과의 전쟁 직후입니다.

 

아쇼카 왕은 자신의 명령에 순응하지 않은

칼링가 왕국의 정복 과정에서

분노를 참지 못하고 닥치는대로

칼링가 왕국에 대해 살육하였습니다.

 

그 처절한 상황에 대해 아쇼카 왕은 그의 비문에서

10만명의 병사와 백성들이 살해되고

15만명의 사람들이 체포되었다고 쓰고 있습니다.

 

전투를 승리로 이끈 아쇼카 왕은

죽은 시체들이 뒹구는 전장터를 걸어가다가

그의 가슴에는 알 수 없는 공포와 회한의 감정이 밀려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는 번민 속에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은 채 다음과 같이 고뇌하였습니다.

 

"보라! 이 비참한 주검들이

과연 무엇을 위해 그들의 소중한 목숨을 바쳤는가?


정의! 진리! 법! 과연 이런 것들이

그들의 목숨을 내던지게 만들었는가?

군인들은 그들의 의무 때문에

이렇게 목숨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고 하자!


그러나, 분노한 나의 병사들의

눈먼 창칼 아래 이유없이 목숨을 잃어버린
뭇 백성들은 과연 전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나 했겠는가?

그들의 눈에 비친 전쟁은 단지 위정자들의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한 한 방편이었을 뿐이리!

정의와 법을 내세우는 모든 전쟁의 실체는

권력자들의 끝없는 욕망의 굴레일뿐,
백성들은 오직 생존만이 목적이며 오직 그것을 위해 몸부림칠 뿐이로다!"

 

이와 같은 후회를 한 아쇼카 왕은 다음과 같이 발심하게 되었습니다.

 

“칼링가를 정복하면서

나는 결코 돌이킬수 없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그들의 영토가 수많은 시체로 덮인

처참한 광경을 보며 나의 가슴은 찢어지고 말았다.

이제부터는 칼링가에서 살해당하고

부상당한 사람들의 백분의 일,
아니 천분의 일만이 비슷한 고통을 겪는다고 할지라도

나의 가슴은 무거운 슬픔으로 짓눌릴 것이다.

앞으로 나는 오직 진리에 맞는 법만을 실천하고 가르칠 것이다.
신들에게 헌신하는 나는 오직 진리의 법에 의한 승리만이

최상의 승리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전쟁으로 인한 살육의 과정에서

벌어진 전쟁의 상처를 통해 아쇼카왕은 불법에 귀의하게 되었습니다.

 

<네마리 사자상과 인도 국장>

 

3. 아쇼카왕과 어느 스님의 전설

 

또한, 어떤 기록(야사)에 의하면

어느 불교 스님과의 인연으로 불법에 귀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 승려가 궁궐 내에서

사람을 고문하고 죽이는 '지옥'을

여염집으로 잘못 알고 탁발하러 갔다가 잡히고 말았습니다.

 

아쇼카 왕이 그 스님을 죽이려 하자

그 스님은 "일주일만 여유를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1주일간 열심히 용맹 정진하여

반드시 아라한과를 증득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용맹정진의 마지막 날 불륜에 빠진

아쇼카 왕의 왕자와 궁녀가 잡혀 왔는데,

지옥의 사형집행인이 그들을 절구통에 넣고

찧어 죽이는 광경을 보고 스님이 아라한과를 증득하였다고 합니다.

 

아쇼카왕은 다음날 그 스님을 죽이려고

가마솥에 집어 넣고 불을 지폈지만,

아무리 불을 지펴도 물이 끓질 않자 뚜껑을 열어보니

그 스님이 연꽃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이 사실을 아쇼카 왕에게 보고하자,

아쇼카 왕과 그 스님의 대면이 이루어졌는데 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당신은 일찍이 부처님으로부터

부처님의 유골을 나누어

팔만사천 사리탑을 세울 분으로 예언받은 분입니다.

 

그런데, 어찌 이런 지옥을 만들어

사람을 괴롭히고 그것을 즐기고 있습니까?

왕께서는 불법에 귀의하여 일체 중생의 공포를 없애 주셔야 합니다."

 

스님의 말을 듣고 아쇼카 왕은

정신이 들어 불법에 귀의했다고 합니다.

 

야사와 정사를 종합해보면

불도를 닦는 스님과의 인연으로 불법을 바탕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고뇌하던 아쇼카 왕이 칼링가 전쟁을 통해

살생의 죄업에 대한 참회와 전란에 희생된 많은 중생들에 대한

깊은 연민심으로 극적으로 회심하게 되어 불법에 귀의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