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역사(7) - 불교 교학을 정리한 아비달마 불교>
1. 아비달마 불교
지난 시간에 아쇼카 왕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아쇼카 왕의 포교와 전법 이후
불교 교단은 왕족, 귀족, 장자(자산가) 계급의 후원과 보시로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근본 분열 이후 상좌부와 대중부의
여러 부파(部派:분파)로 나뉘어진 불교 교단은
여러 계층의 보시와 후원에 의해 안정적인 환경 속에서
불법에 대한 명상과 사유를 진행했습니다.
그래서, 부파 불교 시대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경전과 계율을 정리한 율장 외에
경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주석을 한
논서(論書)가 새롭게 출현하게 되었습니다.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이 나오는
<서유기>의 현장 법사를 ‘삼장 법사(三藏 法師)’라고 합니다.
삼장 법사는 ‘경전, 율장, 논서의 3가지에
모두 통달한 법사’라는 뜻입니다.
불법에 대한 명상과 사유를 통해 교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해석하는
논서의 출현은 불법을 풍성하게 하는 작업이었습니다.
2. 경전에 대한 해석과 주석인 논서의 출현
논서의 출현은 세 단계로 진행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경전에 주석을 첨가하는 정도였습니다.
부처님은 평소에 마가다 어처럼 모든 사람들이
소통할수 있는 일상적인 쉬운 말로 가르침을 설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떤 설법에서는
독특한 용어(예를 들어 오온, 번뇌, 열반 등)를 사용하셨습니다.
각 부파에서는 이러한 독특한 용어에 대해
자신들의 견해를 첨가했던 것입니다.
두번째 단계에서는 독립된 논서가 형성되었습니다.
논서를 인도말로 ‘아비달마(Abi-Dharma)’라고 합니다.
‘아비(Abi)’는 ‘~에 대하여’라는 뜻이고,
‘달마’는 ‘불법’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아비달마’는
‘불법에 대해 논한 논서’라는 뜻입니다.
두 번째 단계에서 ‘아비달마(논서)’는
단순히 어려운 용어에 주석을 다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 각 부파의 견해와 색채에 맞게
독립적인 논서를 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특별한 불교 교리에 대한
독특한 해석과 정의가 이루어지고,
특정한 주제에 대한 전문적 고찰도 이루어졌습니다.
마치 경제 이론에 대해
‘시카고 학파’나 ‘오스트리아 학파’처럼
특정한 학파가 형성된 것과 유사합니다.
세번째 단계에서는 각 부파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방대한 논서가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여러 부파에서 자신들이 해석한
불법을 정리한 논서가 만들어졌으나,
대부분 유실되고 현재에는 ‘설일체유부(說一體有部)’라는
부파의 <대비바사론>이 남아 있습니다.
<대비바사론>은 기원후 2세기경 인도 쿠샨 왕조의
카니쉬카왕이 ‘협 존자’라는 승려에게 명하여 편찬하였습니다.
이 논서는 당시의 불교 사상과
외도의 철학까지 포함하며 다루면서
<설일체유부>의 정통성을 확립하려는
부파 불교를 대표하는 저작입니다.
<대비바사론>은 무려 200권에 달하고,
협 존자의 주관하에 <설일체유부>의 5백명의 뛰어난 학승들이
12년에 걸쳐 만들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설일체유부>의 입장에서 바라본
불교 백과 사전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설일체유부>에서도 <대비바사론>이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핵심만 줄인 요약본이 필요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리된 논서가 유식 불교의 대가인
세친 보살이 지은 <구사론>입니다.
<구사론>은 설일체유부를 넘어
부파 불교의 기본 교재라고 하는데,
<구사론>만 해도 30권에 달하는 대작이므로
제대로 공부하려면 약 8년의 세월이 걸린다고 합니다.
‘유식 불교의 아버지’로 추앙받던 세친 보살도
처음에는 상좌부 계통의 ‘설일체유부’의 승려였습니다.
‘설일체유부’의 유명한 학승이었던
세친 보살은 대승불교가 일어났을 때
처음에는 ‘설일체유부’의 학설로
대승 불교를 공격하는 일에 앞장섰다고 합니다.
그러나, 형인 무착보살의 권유로
대승의 가르침을 배운 후
대승을 공격했던 일을 깊이 참회하고
후일 대승 불교로 전향하였습니다.
세친 보살은 대승 불교에서 ‘설일체유부’의 교학을 기반으로
‘유식(唯識) 불교’라는 새로운 마음의 불교를 꽃피웠습니다.
이처럼 대승 불교 또한 부파 불교의 불교 교학에 대한
체계적 정리 작업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설일체유부의 가르침
아무튼 부파 불교의 사상은 각 부파마다 상이하지만,
‘설일체유부’의 가르침을
간략하게 살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존재의 실상에 대한 자각을
근본 불교에서는 '연기법(緣起法)'이라고 합니다.
즉, 모든 존재는 관계 속에서 서로 '더불어' 있으며,
그럴 만한 조건이 있어서 생겼다가 멸한다는 법칙입니다.
이것을 '인연생 인연멸(因緣生 因緣滅)'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연기법은 모든 존재는
고정 불변한 실체가 없다는 무상(無常:항상 하는 것은 없고 변한다는 진리)과
무아(無我:‘나’라는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다는 가르침)의 근거가 됩니다.
예를 들어, 우리 인간도 수많은 조건들이 모여서
김 아무개, 박 아무개가 됩니다.
그러나, 그 조건들은 순간순간 변하는
역동적인 과정에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소멸하게 됩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나 책 등도
모두 이런 관계 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설일체유부>에서는
연기, 무아의 진리를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 왜 연기이고 무아인가를
설명하려고 고민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여러 요인들이 모인 것이기 때문에
‘연기’이고 ‘무아’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인간도 연기이기 때문에 여러 조건들이 모여
잠시 인간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은 오온,
즉, 색(色형상).수(受감정).상(想생각).행(行의지).식(識인식작용)의
인연으로 모인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을 강조하다 보니
사람이면 사람, 나무면 나무를 구성하고 있는
최소한의 요소들은 '있다(有)'라고 보게 되었습니다.
오온으로 구성된 사람도
연기이기 때문에 고정불변한 실체는 없지만,
사람을 구성하는 물질적, 정신적 요소인 오온은 있다는 것입니다.
부파불교에서는 이러한 최소한의
정신적, 물질적 요소를 '법(法)'이라고 부르는데,
그 법에는 75개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최소한의 요소인 '법'이
각기 인연 따라 화합해서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최소한의 존재,
즉 법이 있다는 것을 '아공법유(我空法有)'라고 합니다.
여기서 '아(我)'는 어떤 개체,
즉 소나 나무, 인간 등을 나타내고,
'법(法)'은 사람을 구성하는 오온 등의 75법을 가리킵니다.
'아공법유(我空法有)'는 인간과 같은 어떠한 개체는
그 실체가 없이 인연으로 화합되어 공(空)하지만,
인간과 같은 개체를 구성하고 있는 ‘오온’이라는
최소한의 요소는 ‘있다(有)’는 실체론적 견해를 말합니다.
‘설일체유부(說一體有部)’라는 명칭도
이처럼 최소한의 요소들이 '있다(有)'라는 것을
설했다는 의미에서 나온 명칭입니다.
설일체유부의 ‘아공법유’의 교학은
대승불교의 출현과 함께 비판받았지만,
불법의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규명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은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불교 교리를 통해 공부하는 여러 개념들과 수행 체계가
부파 불교의 이와 같은 노력 속에서 축적되어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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