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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도량

강화 전등사

by 아미타온 2023. 11. 26.

<강화 전등사>

 

<전등사 여름 전경>

 

1. 전등사와 삼랑성

 

강화도 전등사.

 

고려 시대 몽고 침입 당시

임시 수도였던 강화도는

수도 서울, 개성을 방위하는 주요 요새로서

많은 역사적 유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삼랑성(정족산성)>

 

 

전등사는 일반 사찰과는 달리 성문을 통해 들어갑니다.

 

전등사는 고조선의 단군 왕검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삼랑성이 안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삼랑성은 그 이후 증축을 계속하여

조선 시대에는 정족산성이라고 불렸습니다.

 

조선 고종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강화도를 침범해오자

양헌수 장군이 프랑스군을 격퇴했던 곳이 바로 정족산성입니다.

 

지금도 전등사로 들어가는 동문 입구에는

양헌수 장군 승전 기념비가 남아 있습니다.

 

<정족산성 동문>

2. 전등사의 창건

 

이와 같이 정족산성 내에 자리한 전등사는

다른 사찰과는 달리 성문을 통과해서 절 안으로 들어갑니다.

 

일주문과 천왕문을 통과하여 들어가는 일반 절과는 달리

전등사는 정족산성 동문과 남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전등사는 역사가 오래된 고찰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불교가 처음으로 전래된

고구려 소수림왕(381년) 때 창건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몽고 침입 때 부처님의 가피로

전쟁이 종식되기를 기원하며

조성한 팔만대장경(현재 해인사 봉안)이

강화도 전등사와 선원사 일대에서 판각되었습니다.

 

 

<전등사 현판의 대조루>

 

정족산성을 지나 사찰 권역에 접어들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물은

"전등사(傳燈寺)"란 현판을 단 대조루(對潮樓)입니다.

 

원래 전등사 이름은 진종사(眞宗寺)였는데,

1282년 고려 충렬왕비인 정화궁주가

송나라에서 펴낸 대장경을 봉안하고,

옥으로 만든 등(燈)을 시주한 이후 ‘전등사(傳燈寺)’로 개명하였습니다.

 

‘전등(傳燈)’이란 '불법의 등불을 전한다',

즉 '불법을 전한다'는 뜻입니다.

 

<대웅보전>

 

3. 대웅보전

 

전등사의 중심전각은 대웅보전으로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 약사여래불을 모시고 있습니다.

 

전등사 대웅보전은 화려한 내부 장식과

능숙한 조각솜씨가 돋보이는 조선 중기 건물이며,

보물로 지정된 전등사 목조 석가여래 삼불 좌상은

조선 인조 원년(1623)에 수연을 비롯한 6명의 승려 조각가가 제작한 불상입니다.

 

<아미타 삼존불>

 

전등사의 긴 역사만큼이나 기품 있는

세 분의 부처님께 기도 드리면 마음이 정갈하고 단정해집니다.

 

삼존불상 좌우로 거울이 있는데,

업경대(業鏡臺)입니다.

 

염라대왕이 망자의 죄를 비추어 보는 거울입니다.

 

전등사 업경대는 인조 5년(1627)에 제작되었는데,

황색 사자와 청색 사자 1쌍으로 되어 있어 멋집니다.

 

계율을 잘 지키고 선업을 잘 지어서

부처님께 부끄럽지 않은 불자가 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웅보전 나부상(裸婦像)>

 

4. 나부상

 

전등사의 대웅보전이 세상에

더욱 유명하게 된 것은

대웅보전의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나부상(裸婦像) 때문입니다.

 

나쁜 짓을 꾸짖어 하루 세 번

부처님 말씀을 들으며 죄를 씻고,

깨달음을 얻어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라는 의미로

추녀 밑에 새겨 추녀를 받치게 하였다고 합니다.

 

전설에 의하며 대웅보전 건립에 참여한

도편수가 불사를 하던 중 마을의 주모와 사랑에 빠졌고,

불사를 마치면 혼인할 생각으로 모은 돈을 모두 주모에게 맡겼는데,

공사 막바지에 주막으로 찾아가니 여인은 돈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고 합니다.

 

실의에 빠진 도편수는 몇 날을 힘겨워 하다가

마음을 다잡고 대웅전 공사를 마무리 했습니다.

 

공사가 끝나갈 무렵 대웅전의 처마 네 군데에는

지붕을 떠받치는 벌거벗은 여인상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욕심에 눈멀어 사랑을 배신한

여인을 징계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배신하고 도망간 여인이 대웅전에서

들리는 부처님의 말씀을 들으며

참회하고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라는

도편수의 불교적 사랑과 염원이 반영된 것이라고 합니요.

 

그런데, 나부의 모습이 여인의 모습이 아니라,

귀신의 모습이라 악귀를 쫒는 의미도 있다고 합니다.

 

대웅보전 좌측에는 관음전이 있습니다.

 

관음전의 관세음보살이 일반적인 가부좌가 아닌

반가(半跏) 형태를 보이고 있어 독특합니다.

 

<약사전>

5. 약사전

 

관음전 옆에는 약사전이 있는데,

약사전은 중생의 병을 고쳐 주는

약사여래 부처님을 모신 법당입니다.

 

약사전은 조선 중기에 조성된 작은 전각이지만,

보물로 지정될만큼 품격있는 전각입니다.

 

<약왕 보살님>

 

약사여래 부처님은

고려말 조선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배꼽 부근에서 두 손으로 약그릇을 들고 계십니다.

 

중생들의 질병을 고치고,

수명을 연장해 주며,

재난에서 벗어나게 하고,

음식과 옷을 제공해 준다는 증표입니다.

 

약사전 옆에는 명부전이 있습니다.

 

명부전의 지장보살은 저승 세계인 명부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모두 구원하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보살이며,

시왕은 저승 세계에서 죽은 자의 죄를 심판하는 10명의 왕입니다.

 

<무설전 보살님>

 

6. 무설전

 

대조루를 내려오면 카페가 있고

우측에 무설전(無說殿)이 나옵니다.

 

'무설'이란 진리의 설법은 언어를 빌지 않고

설법되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무설전에는 현대의 불교 조각가들이

조성한 석가모니 부처님과

문수, 보현, 관음, 지장 네 분의 보살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하얀 대리석에 품격 있는 상호로서

신심을 불러일으키는 불상입니다.

 

현대 조각가들이 조성한 불상의

아름다움을 잘 느낄 수 있는 훌륭한 불상입니다.

 

차분하게 앉아서 기도드리면 좋을 것입니다.

 

<전등사 현판>

 

 

전등사는 고려시대 대몽항쟁의 근본도량이었으며

격동하는 근대사의 중심에서 국운을 지켜낸 사찰이요,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을 물리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부처님의 보살핌으로

국난을 극복하려는 염원을 품은 채

대웅전과 약사전 내부에 남아 있는 무수한 병사들의 이름과

동문 앞에 있는 양헌수 장군의 승전비는 전등사가

민족의 영욕을 함께한 천년고찰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amitaon8586

 

극락회상 AmitaOn

아미타부처님의 극락회상을 꿈꾸며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를 전법하는 채널입니다. #극락회상#정토불교#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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