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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역사

불교의 역사(18) - 선정 바라밀

by 아미타온 2023. 12. 8.

<불교의 역사(18) - 선정 바라밀>

 

<'사유수(선정)'의 모습을 나타낸 반가사유상(국립중앙박물관)>

 

1. 사유수(思惟修)

 

보살의 육바라밀 중 5번째 바라밀은 선정 바라밀입니다.

 

‘선정(禪定)’은 인도말인 '디야나(dhyana)'를 번역한 말로서

그 뜻을 한문으로 옮기면 ‘정려(精慮)’ 또는 ‘사유수(思惟修)’라고 합니다.

 

‘정려(精慮)’는 ‘고요히 생각한다’는 뜻인데,

번뇌망상의 번잡한 감정과 생각을 비우고

조용히 사유할 것에 일념으로 집중한다는 뜻입니다.

 

‘사유수’ 또한 '정려'와 비슷한데,

지혜를 증득하기 위한 앞 단계로

번뇌망상을 비우고 바르게 사유할 수 있는

힘을 기른다는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선정은 본래 인도에서 오래전부터 해오던 명상을

불교가 수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진리에 밝지못한 무명(無明)의 바람에서

일어나는 번뇌와 망상을 가라앉히고,

올바른 사유와 명상을 통해 지혜를

증득하기 위한 전단계로 선정 수행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초기 불교의 팔정도에서 나오는 ‘정념(正念, 바른 기억/집중)’

‘정정(正定, 바른 선정)’이 이와 같은 선정의 실천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금동 미륵 반가 사유상(국립중앙박물관)>

 

2. 3학의 하나인 선정

 

선정은 불교 교리가 체계화됨에 따라

3학(三學:계율+선정+지혜)의 하나로 매우 중시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선정은 지혜(반야)를 증득하는 기반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혜(반야)는 존재의 실상을 여실하고 명확하게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산란하고 번뇌 망상에 가득차 있으면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보기 힘듭니다.

 

따라서, 산란한 마음을 비우고 가라앉혀

한 곳에 집중하여 사유하고 명상하는 선정 공부가

불교 공부에서 중요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지계바라밀을 설명할 때

“계의 그릇이 깨끗해야 선정의 물이 고이고,

선정의 물이 고여야 지혜의 달이 비친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계율’과 ‘선정’과 ‘지혜(반야)’의 3학의 공부는

불교 수행을 지탱하는 세 개의 발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사 사유>

 

3. <유마경>과 대승의 선정

 

그런데, 대승 불교의 선정 바라밀은

기존의 선정과 어떻게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요?

 

대승의 선정 바라밀에 대한 말씀이 <유마경>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유마경>은 대승 불교의 보살 사상을 담고 있는 대표적 경전입니다.

 

<유마경>의 주인공은 출가한 스님이 아니라,

가정을 가지고 있는 재가 불자인 유마 거사입니다.

 

<유마경>에는 유마 거사가 병이 나자

부처님께서 10대 제자를 시켜 병문안을 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유마 거사의 법력이 뛰어나서

감당하기 어려우므로 문병을 갈 수 없다고 사양했습니다.

 

그런데, 유마거사의 병은 특이한 병이었습니다.

유마거사는 ‘중생이 아프기 때문에 내가 아프다’고 했습니다.

 

즉, 이 세상의 갖가지 고난에 병들어 있는 중생들의 아픔이

바로 유마거사의 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병은 중생과 내가 둘이 아니라는

동체대비의 마음을 나타내는 큰 자비심의 병이었습니다.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지혜제일인 사리불 존자가 문병을 가라고 했을 때,

사리불 존자는 자신은 유마거사를 감당할 수 없다고 하며

과거에 유마거사를 만났던 일을 말씀드렸습니다.

 

사리불 존자가 숲 속에서 조용히 앉아서 좌선을 하고 있을 때 유마거사가 와서

“그렇게 앉아 있는 것만은 진정한 좌선은 아닙니다”고 지적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유마거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진정한 좌선은 삼계(三界) 가운데

몸과 마음을 나타내지 않는 것이어야 하고,

번뇌를 끊지 않고 열반에 들어가는 것이 진정한 좌선(坐禪)입니다."

 

그 때 사리불 존자는 유마거사의 말씀에

어떻게 대답할지를 몰랐다고 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사리불 존자의 좌선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의미의 좌선입니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에서 마음을 안정시키고

번뇌를 끊기 위해 앉아 있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유마거사는 대승의 선정은

이러한 형식을 떠나서 마음과 인식의 문제라고 했습니다.

 

<번뇌즉보리와 공성)

 

4. 공성과 번뇌즉보리

 

대승의 선정은 세상의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항상 그 마음을 청정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속의 번뇌 속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번뇌가 본래 공(空)하다는 실상을 잘 체득하여

‘번뇌가 곧 보리(깨달음)’이라는 것을 아는 것,

번뇌 속에서 열반을 구하는 적극적 실천이

대승의 궁극적인 선정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속의 삶 속에서도 번뇌에 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연기적으로 문제의 본질을 잘 파악해서 지혜롭게 대처하며

이고득락(離苦得樂)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적극적 실천이 선정 바라밀이라는 것입니다.

 

즉, 대승의 선정 바라밀은 형식적인 모습을 떠나,

번뇌와 세속의 삶 속에서도 활달하고 단단하게

보살도를 펼쳐나가는 힘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쉽지는 않겠지만,

이와 같은 대승 불교의 선정 바라밀의

깊은 세계를 인식하고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