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청룡사>
1. 안성맞춤
안성 청룡사.
‘안성맞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 마음에 쏙 든다’는 뜻입니다.
안성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경기 남부권의 상업 요지였습니다.
조선 후기에 안성장은 대구장, 전주장과 더불어
전국 3대 시장의 하나로 꼽힐만큼 규모가 컸습니다.
특히, 안성의 특산물인 유기 그릇은
사람들 마음에 너무 쏙 들어서 ‘안성맞춤’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2. 남사당패와 청룡사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안성장에는
안성의 남사당패가 공연하며 흥을 돋우었습니다.
숭유억불의 조선 시대에 스님들은 천민 취급을 받았습니다.
거리에서 공연하는 남사당패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안성의 남사당패는 청룡사 아래
불당촌(佛堂村)에 모여 살면서
안성장이 열리거나 청룡사 행사 때 공연하며
절에 시주하고 서로 상부상조하였습니다.
3. 바우덕이
청룡사는 남사당패와 깊은 인연이 있습니다.
안성 청룡사 입구에는 안성 남사당패의
전설적 인물인 바우덕이 묘와 사당이 있습니다.
본명이 ‘김암덕(金岩德)’인 바우덕이는
우리나라 남사당 역사에서 유일무이한 여성 꼭두쇠입니다.
5살 때 머슴살던 아버지가 병으로 죽자
남사당패에 맡겨져 재주를 익혀 염불, 춤, 줄타기 등 모든 기예를 익혔다고 합니다.
15살 때 안성 남사당패를 이끌던 윤치덕이 사망하자
남사당패의 관례를 깨고 사람들은 바우덕이를 우두머리인 꼭두쇠로 선출했습니다.
바우덕이는 여성 꼭두쇠라는 특성과 탁월한 기예로
안성 남사당패를 최고의 인기패로 육성했습니다.
1865년(고종2)년 경복궁 중건 공사 때,
인부들을 위로하기 위해 전국의 남사당패를 불러공연했다고 합니다.
이때 안성 바우덕이 패가 최고의 인기를 얻어 흥선대원군으로부터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바우덕이는 청룡사가 위치한 불당촌에 살면서 봄부터 가을까지 전국을 누비고,
겨울에는 월동을 했다고 합니다.
바우덕이는 23세 때 폐병으로 사망했다고 하는데,
그 묘소가 청룡사 입구에 남아 있는 곳입니다.
4. 청룡사의 역사
아무튼 안성 청룡사는 조선 후기 남사당패를 보살피며 후원했던 사찰입니다.
청룡사는 고려 원종 6년인 1265년 명본 국사가
‘대장암’이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고려말인 1360년, 나옹 선사가 중창하였는데,
산 자락에서 자비의 구름이 찬란하게 빛나고
마치 청룡이 꿈틀거리는 모양으로 힘에 넘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산 이름을 ‘서운산(瑞雲山)’으로,
절 이름을 ‘청룡사’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조선 시대 들어서도 세조는 논 50결을 시주하여 청룡사의 중창을 도왔고,
인조의 아들인 인평 대군의 원찰이 되면서 왕실의 후원을 받는 도량이 되었습니다.
한편, <청룡사 사적비>에 따르면 조선 후기 대웅전을 중창할 때
시주자의 명단이 남아 있는데, 6명의 남사당 이름이 있다고 합니다.
사회적으로 천대받고 떠돌면서 공연하며
힘겨운 삶을 살았던 사당패들이
내생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불사(佛事)와 시주를 했던
가슴 뭉클한 사연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5. 대웅전
‘서운산 청룡사’라는 현판의 대문을 통과하여
청룡사에 들어가면 드넓은 마당과 함께 웅장한 대웅전이 눈에 들어옵니다.
드넓은 마당에서 절의 중창과 불사를 위해
공연했던 사당패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그리고, 그 사당패의 불사와 시주를 통해
중수된 대웅전이 한층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 안에는 진흙으로 조성한
소조 석가모니 삼존불을 모시고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중앙에 앉아 계시고,
문수 보살님과 보현 보살님이 서서 협시하고 있습니다.
세 분은 부자지간처럼 닮은 얼굴인데,
그 상호가 갸름하고 단아해서 정감 가득한 모습입니다.
정감 가득한 불보살님의 상호를 바라보며 염불 기도하면 참 좋습니다.
대웅전은 팔작 지붕에 다포 양식으로 되어 있는데,
특히 구부러진 통나무를 자연석 초석 위에 세워 독특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합니다.
6. 반야용선도
대웅전 북측 벽화를 보면 반야용선 그림이 있습니다.
반야용선 안에는 아미타 삼존불이 계시며,
많은 대중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떠들썩하게 극락 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악기를 연주하는 대중들은
청룡사 반야용선도에만 독특하게 나타나는데,
사당패들이 극락 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7. 감로도와 목련존자
한편, 청룡사에는 ‘감로도(甘露圖)’라는 불화가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감로도는 특이하게도 우리나라에만 있는 불교 그림입니다.
감로도의 배경이 된 불교 경전은 ‘우란분경’인데,
부처님의 십대 제자 중 신통제일인 목련존자와 그 어머니 이야기가 나옵니다.
목련존자가 부모님의 은혜를 갚고자 신통의 눈으로 살펴보니
돌아가신 어머니가 아귀도(餓鬼道)에 떨어져 피골이 상접해 있었습니다.
목련 존자는 바리때에 밥을 가득 담아 어머니에게 갔지만,
밥은 입에 들어가기도 전에 불덩이로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부처님은 목련 존자에게
“너의 어머니는 죄의 뿌리가 깊어 너 혼자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
청정히 수행한 스님들의 위신력으로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칠월 보름날(백중)에
과거 일곱 세상의 부모와 현재 부모로서
어려움에 빠져 있는 이들을 위해
세상에서 가장 맛난 백 가지 음식과
다섯 가지 과일을 ‘우란분’이라는 접시에 가득 담아
수행하고 교화하는 스님들께 공양하라고
어머니를 구제할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감로도는 ‘아귀에게 감로(甘露)를 베푼다’는 뜻입니다.
‘감로’는 원래 천신(天神)의 음료인데,
아귀의 목구멍을 개통시켜 배고픔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특별한 기능이 있습니다.
좁은 의미로 아귀는 배고픔의 고통을 당하는 육도(六道)의 한 생이기도 하고,
배고픔의 고통을 받고 있는 돌아가신 조상을 뜻하기도 합니다.
넓은 의미로 아귀는 해원(解寃)해야 할,
억울하게 죽은 가엾은 영혼의 총칭이며,
육도 중생의 고통을 집약한 존재입니다.
8. 감로도와 극락왕생
감로도를 상단-중단-하단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단에는 지옥의 장면과 인간사의 희로애락을 다양하게 묘사하고,
중단에는 스님들께 공양을 하는 장면,
상단에는 육도중생을 극락세계로 인도해 가는
인로왕보살과 아미타 부처님을 포함한 일곱 부처님이 그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하단은 전생, 중단은 현재, 상단의 미래가 인과(因果) 관계를 이루며
우리가 극락왕생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함을 보여줍니다.
백중날 우란분절 법회 때 감로도를 보면서
먼저 가신 부모의 극락왕생을 기원함과 동시에
살아서 부모님께 효도하는 가치를 일깨우고,
자신도 현생에서 어떻게 선업을 닦아 극락왕생할지를 일깨워주는 것입니다.
안성의 남사당들도 청룡사 감로도를 보면서
다음생의 극락왕생을 위해 현생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사당의 애틋한 사연과
감로도의 깊은 가르침의 향기가 남아 있는 안성 청룡사!
육도윤회 속에서 극락왕생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통찰해보는 도량 참배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https://www.youtube.com/@amitaon8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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