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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유경

백유경(39) 공주를 사모한 농부

by 아미타온 2023. 12. 27.

<백유경(39) 공주를 사모한 농부>

 

<춘천 소양강 처녀상>

 

옛날 어떤 농부가 도시를 거닐다가

우연히 그 나라 공주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아름다운 공주를 보고 한눈에 반한 농부는

공주를 사랑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밤낮으로 사모하여 쌓이는

그리운 정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 할 길이 없어

결국은 상사병이 들어 앓아눕게 되었습니다.


여러 친척들이 그것을 보고 안타까워 하면서 물었습니다.

 

“너는 왜 이렇게 됐느냐?”

 

그는 대답했습니다.

 

“저는 지난번에 우연히 도시를 지나다가

공주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았습니다.

공주가 너무 아름다와 그만 사모하게 되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아 그만 병이 되었습니다.

만일 내가 공주와 결혼하지 못하게 되면 틀림없이 죽을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도무지 해결책이 없는 듯 해서 가슴이 아픕니다.”

친척들은 말했습니다.

 

“우리가 너의 병을 고치기 위해

공주에게 혼사에 대해 이야기를 할 터이니 걱정하지 말아라."

 

친척들은 젊은 농부의 뜻을 전하기 위해 공주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공주는 단호히 농부와의 결혼을 거절하였습니다.

 

친척들은 돌아와 농부에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우리가 너를 위해 공주에게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공주는 단호히 결혼을 거절하였다.

너는 이 순간부터 꿈을 깨어라."

 

젊은 농부는 이 말을 듣고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뚱딴지같은 말을 했습니다.

 

“틀림없이 저와 공주는 결혼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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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무왕이 된 서동의 전설이 있는 익산 미륵사지>

 

1. 서동과 선화 공주 이야기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무엇을까요?

 

우리 속담에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농부와 같이 미천한 신분이

공주와 같은 여자를 쳐다본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으니

올라가지도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 이 이야기가 나왔을까요?

 

몇 년 전에 "서동요"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서동"이란 "땅에서 자라는 마를 파는 아이"라는 뜻입니다.

 

"서동요"는 백제 출신의 이 천한 서동이 

신라의 고귀한 선화 공주를 꾀어내려고 부르는 노래입니다.

 

당시 백제와 신라는 서로 어르렁거리며

싸우느라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백제 사회는 왕보다도 귀족들의 힘이 강하였습니다.

 

귀족들은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똑똑한 왕을 죽이고

그 왕의 핏줄을 없애고 자기들의 구미에 맞는 멍청한 왕을 옹립하고

정치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려고 하였습니다. 

 

서동은 실제로는 숨겨진 왕자인데,

이러한 귀족의 세력에 눌려 마나 캐며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이러한 서동은 자신이 다시 왕자로 등극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적국의 공주인 선화 공주를 백제로 데려온다면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지 않겠어요?

 

그래서 서동은 선화공주를 꾀어내기 위해

"서동요"라는 노래를 지어 신라 수도인 서라벌에 퍼뜨립니다.

 

"선화 공주랑 서동이랑~

얼레리~ 꼴레리~.

 선화공주는 밤이면 밤마다 서동을 만난다네요!

얼레리~ 꼴레리~ ”

 

고귀한 공주가 바람이 나서

밤에 몰래 나가 미천한 서동과 만난다는 소문에 신라왕은 대노합니다.

 

그래서 이 소문의 당사자인 선화 공주를 혼내고 공주를 내쫓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는 서동이 공주를 차지하기 위한 계략이었던 것이지요.

 

혼인도 안 한 공주가 밤마다 남자를 만나러 간다고 하면

틀림없이 공주를 궁궐 밖으로 내쫓을 테고,

서동은 그때를 틈타 선화공주를 꾀어서

다시 백제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

 

2. 서동요

 

서동은 궁궐에서 쫒겨난

선화 공주를 만나 자신의 정체를 드러냅니다.

 

"내가 서동이고, 실제로는 백제의 왕자였다고..."

 

이러한 서동을 만나보니 서동은 멋진 남자였는지

선화공주도 서동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렇게 선화공주를 얻은 서동은 백제로 돌아가고

이러한 서동을 백성들이 인정하게 됩니다.

 

이러한 백성들의 지지를 얻은 서동은

노력 끝에 귀족들을 물리치고 마침내 왕이 됩니다.

 

이 왕이 백제 30대 무왕인데,

지금의 익산에 있는 유명한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세운 분이지요.

 

"서동요" 이야기는 지혜롭고 용기있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면

올라가지 못할 나무도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백유경 이야기"의 

어리석은 농부와 서동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어리석은 농부는 상사병에 걸린채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자신의 친척이 대신 가서

농부가 상사병에 걸렸으니 공주와 결혼하고 싶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얼굴도 모르고 단지 자신을 사랑한다는 농부에게

고귀한 공주가 쉽게 마음을 허락할까요?

 

게다가 이 농부는 이러한 공주의 거절을 듣고

틀림없이 자신과 공주가 결혼할 것이라고 좋아합니다.

 

서동 같은 지혜와 용기와 적극적인 노력도 없이

이러한 얼간이 농부가 공주와 결혼할 수 있을까요? 

 

(서동 이야기가 그렇다고 무조건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소문을 내어 퍼트리는 것이 지혜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새롭게 복구된 익산 미륵사지 석탑>

 

3. 보리심

 

이 이야기에서 "공주"는 "부처님"을

"농부"는 "아직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는 수행자"를 상징합니다.

 

또는, "공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농부"는 "어리석음"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공주를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사랑을 이룰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마찬가지로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좋아하는 것만으로

깨달음을 얻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럴수는 없는 것입니다.

 

서동이 지혜와 용기와 적극적인 노력으로

선화공주와 결혼하여 왕이 될 수 있었듯이

수행자가 부처님과 같은 깨달음을 얻으려면

지혜와 용기와 적극적인 노력으로 목적을 위해 힘있게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지혜와 용기와 적극적인 노력으로

목적을 위해 힘있게 나아가는 것을 불교에서는 "보리심"이라고 합니다.


단지 사랑하고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착각하는

어리석은 농부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힘들고 어려운 것을 이루려면

그것을 이루고 싶은 마음도 필요하지만,

바른 지혜와 용기와 적극적인 노력인 보리심으로 

목적을 성취할 때 의미가 있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