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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역사

불교의 역사(34) - 화엄경(2) / 화엄경의 부처님

by 아미타온 2024. 1. 9.

<불교의 역사(34) - 화엄경(2) / 화엄경의 부처님>

 

<수원 봉녕사 대적광전 삼존불/ 법신 비로자나불(중앙),보신 노사나불(좌), 화신 석가모니불(우)>

 

1. 부처님의 깨달음의 광명

 

화엄경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으시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화엄경 <여래정안품(如來淨眼品)>에는

다음과 같이 부처님의 깨달음의 장면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깨달음을 여셨을 때,

대지는 청정해져서 온갖 보배와 꽃으로 장식되었으며,

아름다운 향기는 그 위에 넘쳤다.

또, 많은 꽃다발이 부처님 주위를 에워쌌는데,

그 위에는 수많은 진귀한 보물로 가득차 있었으며,

수많은 수목은 가지와 잎에서 빛을 발산하며 서로 비추고 있었다.

이러한 모습은 부처님의 신통력에 의해 나타난 것이었다.

부처님은 과거, 현재, 미래의 진리가 모두 평등함을 깨달았으며,

그 지혜의 광명은 모든 사람들의 몸을 비추고,

그 맑은 깨달음의 음성은 세계의 구석구석까지도 울려 퍼졌다.”

                                                                  (화엄경 여래정안품)

 

<여래정안품>을 보면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여시는 것은

단순히 부처님 한 분의 해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의 해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온 국토가 청정해지고 아름답게 장엄되는 것입니다.

 

즉, 부처님의 깨달음은 온 세계를 청정하게 하고,

온 세계를 지혜의 광명으로 비추는데 참된 의미가 있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부처님의 본질은 2600여년전

인도에서 역사적으로 출현하신 석가모니 부처님을 초월하여,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중생계를 청정하게 하고

온 세계를 지혜 광명으로 비추는 부처님이라는 것입니다.

 

<봉녕사 대적광전 비로자나불>

 

2. 비로자나불

 

이와 같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중생계를 청정하게 하고,

온 세계를 지혜 광명으로 비추는 부처님을

<화엄경>에서는비로자나불’이라고 합니다.

 

‘비로자나’라는 말의 어원은 ‘태양’에서 출발했다고 하는데,

빛나는 태양과 같이 온 세상에 언제 어디서나

골고루 빛을 내려주는 광명의 부처님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나라 금강산의 최고봉이 비로봉인 것처럼

명산의 최고봉에 비로봉이 많은데,

바로 비로자나 부처님이 상주하시는 장소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이나

비로자나 부처님을 모신 대적광전 현판에는

<화엄경>의 부처님에 대한 관점에 입각하여

다음과 같이 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을 걸어 놓았습니다.

 

불신충만어법계(佛身充滿於法界) 

보현일체중생전(普現一切衆生前) 

수연부감미부주(隨緣赴感靡不周) 

이항처차보리좌(而恒處此菩提座) 

 

부처님 몸 법계에 가득하시니

중생들 앞에 항상 계시네.

인연 따라 어디에나 나타나시니

언제나 이 보리좌에 항상 계시네.

 

따라서, 이 게송은 <화엄경>에 등장하는

이러한 비로자나 부처님의 세계를 나타낸 게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화엄경>에서는 무량한 겁을 보살의 행을 닦아

깨달음에 이른 비로자나 부처님을 '광명'으로서 상징하며,

그 광명은 진리와 합일된 법신(法身)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비로자나 부처님은 모양도 색깔도 없지만,

신통 묘용하여 이르는 곳마다 몸을 현현합니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세계 속에서 일체의 존재는

인연 따라 부처님의 법(진리)을 드러내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비로자나 부처님의 세계를 "법계(法界)"라고 합니다.

 

<화엄경 법계변상도>

 

3. 법계와 법신

 

<화엄경>에서는 비로자나 부처님의 불국토인

연화장(蓮華藏) 세계의 정토라고도 합니다.

 

이러한 부처님의 모습과 법계를

<화엄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모든 부처님의 몸은 오직 하나의 법신(法身)이다.

부처님의 법신은 불가사의하다.

색깔도 없고 모양도 없어서 아무 것에도 비유할 수 없으나,

중생을 위해 갖가지 형태를 나타냄으로서 중생의 마음에 응해 그 모습을 보이신다.

 

비로자나 부처님의 세계인 연화장 세계에는

하나하나의 먼지(티끌) 속에 일체의 법계가 다 갖추어져 있다. 

티끌 같은 시방 세계에 광명 그물이 가득하고

광명 속마다 부처님이 계셔 모든 중생을 다 제도하고 교화하신다. 

중생들이 많고 넓어 끝이 없건만 여래께서 모두를 염려하시어

누구에게나 법륜을 굴리시어 구제하시니 이것이 비로자나불의 경계로다"

(화엄경 노사나품)

 

즉, 모든 부처님은 하나의 몸으로서 법신(비로자나불)의 화현이라는 것과,

이러한 비로자나불은 무한히 활동적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부처님은 근본적으로 하나의 몸(법신)이며,

색깔과 모양이 없어 형상을 초월했으나 중생들을 위해

갖가지 형태를 나타내며 활동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즉, 현실 속에서 출현하는 모든 불보살님도 법신불인

비로자나 부처님의 화현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역동적인 부처님의 세계인 연화장 세계는

모든 먼지(티끌) 속에 일체의 법계가 담겨져 있으며,

이 법계에는 모든 부처님의 몸이 충만하므로

의상 대사의 <법성게>의 말씀처럼

“하나 속에 전체가 있고 전체 속에 하나가 있다.”는

원융한 세계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우주는 시방에 두루한

비로자나 부처님의 현현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즉, 우리들의 눈에 보이는 현상 세계는

부처(법신)가 수많은 몸을 나타내어

활동하고 있는 역동적인 세계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화엄경>의 부처님과 법계에 대한 원융한 세계관은

우리들로 하여금 부처님과 세계에 대한

커다란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