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불 존자의 귀의>
1. 사리불 존자의 출가
부처님께서 왕사성에서 전법하실 때
후일 불교 교단의 상수(上首) 제자가 된
사리불 존자와 목련 존자가 찾아왔습니다.
두 존자는 많은 불교 경전에서 부처님께
가르침을 청하고 듣는 제자로 나옵니다.
두 분의 고향은 왕사성에서
약 20km 정도 떨어진 "나란다"라는 도시입니다.
나란다는 불교 최대의 대학이었던
"나란다 대학"이 있던 불교 성지입니다.
<서유기>로 유명한 현장 법사가
인도로 먼 길을 떠난 이유도
이 나란다 대학에서 불교를 공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리불 존자와 목련 존자는
나란다의 이웃 마을에서
같은 해 같은 날 태어났다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학문이 뛰어나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했으며
친한 친구로서 같이 다녔습니다.
사리불 존자는 하루는 브라만교의
화려한 제사와 축제를 보고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습니다.
'도대체 이런 걸 구경한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 소란스러운 축제도 얼마 지나지 않으면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말텐데,
백년 후에는 과연 무엇이 남을까?
내가 찾고 있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닌데,
다만 해탈이 있을 뿐인데...
그렇다.
해탈의 길을 찾지 않으면 안된다.'
사리불 존자가 목련 존자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자
목련 존자도 축제 장면을 보고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해탈의 길을 찾기 위해
육사외도(六師外道) 중에
‘회의론자’로 이름 높던
산자야의 문하에서 공부하였습니다.
이들은 곧 스승의 가르침에 통달하여
스승을 대신할만큼 큰 지혜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목표로 하는 해탈과
완전한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하여
새로운 가르침을 갈망하였습니다.
2. 앗사지 존자와의 만남
하루는 사리불 존자가
왕사성을 걷고 있었는데,
녹야원의 5비구 중의 한 명인
앗사지 존자의 탁발 모습을 보았습니다.
앗사지 존자의 걸음걸이는 당당하였고,
얼굴은 빛나며 탁발 자세는 정중하였습니다.
앗사지 비구의 탁발 자세에 감명을 받은
사리불 존자가 물었습니다.
"당신의 스승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당신의 누구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습니까?"
"저의 스승은 석가족의 성자이신
석가모니 부처님입니다.
저는 깨달음을 얻으신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있습니다."
"당신의 스승께서는 어떤 말씀을 하시고
어떤 가르침을 설하십니까?"
"저는 출가한지 얼마되지 않아
자세히 법을 설할 수가 없습니다."
앗사지 비구의 겸손한 태도에
감명받은 사리불 존자가 다시 간청을 하자
앗사지 존자는 스승인 부처님으로부터 받은
연기법의 가르침을 짧은 시로 읊었다고 합니다.
사물은 원인이 있어 생기는 법
여래께서는 그 원인을 설하셨네.
그리고 또 그 소멸까지도
위대한 사문(부처님)은 이와 같이 가르치셨네.
사리불 존자는 이 게송을 듣고
큰 환희심을 느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진리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위대한 가르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리불 존자는 친구인 목련 존자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부처님을 찾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사리불 존자는 스승 산자야에게도 부처님께
함께 가르침을 받기를 권유하였으나 거절했습니다.
사리불 존자와 목련 존자가 부처님께 나아가자
이 두 분을 따르던 각 250명의 제자들도 함께
죽림정사를 방문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3. 부처님께 귀의
사리불 존자와 목련 존자가 오는 것을 보고
부처님은 "저 두 사람은 나의 가장 큰 제자가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초전법륜 5비구, 카샤파 3형제 등
여러 제자들이 있었지만,
부처님은 사리불 존자와 목련 존자를
상수(上首)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이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부처님은 이 두 존자는 먼 과거세부터
부처님께 발심하고 공양하며
수없는 생을 수행해 온 수행자였다는 것을
가르쳐주며 불평을 잠재웠습니다.
사리불 존자와 목련 존자는
불교 교단에 귀의하여
부처님의 옆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이 두 분의 존재로 초기 불교 교단이
더욱 커지고 안정화되었고,
데바닷다의 반역 행위로
불교 교단이 분열의 위기에 처했을 때
데바닷다를 따라 교단을 빠져나간 비구들을
다시 설득하여 데려온 것도 두 분의 존자였습니다.
4. 법의 장군, 사리불 존자
불교 교단에서 사리불 존자가
맡은 소임은 불법을 체계화하고
그 내용을 상세히 분석하는 역할이었습니다.
진리의 궁극까지 꿰뚫는 깊은 통찰력과
현상계에 대한 날카로운 식별력으로
법의 미묘한 의미를 드러내고 그 의미를
아주 세밀하게 설명하는 것이
사리불 존자의 책임이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부처님의 제자 중에
그 지혜의 깊이나 넓이,
해탈의 교리를 가르치는 능력 등에 있어서
부처님 다음이었던 사리불 존자는
부처님 제자 중에 "지혜제일"로
그 명성을 높였습니다.
사리불 존자는 부처님의 교화 사업에서
보조자 이상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고,
사려깊고 친근한 도반으로서,
손아래 비구들의 이로움을 지켜주는 보호자로서,
스승의 교의를 충실하게 담는 저장고이자
교사로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서
"법의 장군(法將)"으로까지 불리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생각과 말과 행동이 겸손하고 고결하며,
자신에게 조그만 친절도 평생 잊지 않고 감사하며
마음 속에 간직하는 사리불 존자였습니다.
사리불 존자는 자신을 법의 세계로 인도해 준
앗사지 존자에 대해 평생동안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고
만날 때마다 극진한 예절로서 앗사지 존자를
떠받들었던 숭고하고 섬세한 인간성의 소유자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사리불 존자의 지도를 받은 사람들은
사리불 존자의 온유하고 다감한 성품에 크게 고양되어
수행의 향상에 용기를 얻고 매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부처님의 아드님인 라훌라 존자도
사리불 존자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하며,
철모르는 교만한 소년이었던 라훌라 존자를
"밀행제일(密行第一)"의 훌륭한 수행자로 키운 것도
사리불 존자였습니다.
사리불 존자는 부처님보다 연장자였는데,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1년 전에
고향 마을에서 늙은 노모를 봉양하다가 열반에 드셨다고 합니다.
부처님은 사리불 존자의 열반 소식을 듣고
큰 나무에 나뭇가지가 떨어진 것처럼 허전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해탈에 대한 순수한 열정!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순종!
훌륭하고 고결한 인품의 사리불 존자!
이 분의 고향 마을에 불교 최대의 대학으로 수많은 학승을 배출한
나란다 대학이 세워진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혜 제일이자 법의 장군인 사리불 존자의 불법의 진리를 향한
열정과 원력의 힘이 그곳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유튜브 극락회상 - 부처님 생애(13) 사리불 존자의 귀의>
https://youtu.be/NLSegFMo-Qo?si=BJGQP5MZUFHH1N0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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