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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법구경(10) 사리뿟따 존자와 마하 목갈라나 존자 이야기(2)

by 아미타온 2024. 1. 22.

<법구경(10) 사리뿟따 존자와 마하 목갈라나 존자 이야기(2)>

 

<리움 미술관 / 아미타 삼존불>

 

그때 꼴리따는 자기의 가장 절친한 친구 우빠띳사가

기쁜 표정으로 급히 오는 것을 보고 스스로 생각했다.

 

‘우빠띳사의 얼굴에 광명이 서려 있구나.

저 친구는 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아, 우빠띳사는 죽음을 초월하는 진리를 발견한 것이 틀림없다.’

 

이렇게 생각한 그는 우빠띳사와 인사를 나눌 겨를도 없이 질문을 퍼부어댔다.

그러자 숨돌릴 여유도 없는 친구의 질문을 받은 우빠띳사가 대답했다.

 

 “바로 그렇다.

친구여, 나는 죽음을 초월하는 진리를 발견했다.”

 

“그렇다면 벗이여,

우리의 스승께서는 어디에 계신가?”

 

 “벗이여, 그분께서는 지금 웰루와나 수도원에 계신다고 한다.

나는 이 소식을 앗사지 비구로부터 들었다.”

 

 이에 꼴리따가 선언했다.

 

 “행복하구나! 벗이여,

우리는 이제 어서 스승을 찾아뵈어야 한다.

어서 그곳으로 가자!”

 

물론 그런 꼴리따의 마음을 우빠띳사가 모를 리는 없었다.

그렇지만 우빠띳사는 특별한 마음씨를 지닌 사람이었다.

 

그는 언제 어디서든지 자기가 모셨던

스승에 대해서 매우 깊은 존경심을 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런 행복한 여정을 앞두고

자기들의 과거의 스승인 산자야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빠띳사는 꼴리따에게 말했다.

 

“물론 우리는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렇지만 벗이여, 우리의 과거의 스승인

산자야 님에게도 이 소식은 전해 주어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그분도 아직은 죽음을 초월하는 진리를 만나지 못했으니까.

이 소식을 듣게 되면 그 분도 기꺼이 우리와 함께 부처님께 귀의할 것이다.

아니,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그 결과는 상관할 바 없다.

만일 그분이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의 잘못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만 우리가 알게 된 진실만을 전하면 그만이다.”

 

이런 우빠띳사의 제안에 대해 꼴리따도 동의했다.

그래서 그들 두 사람은 함께 산자야를 찾아갔다.

두 사람은 산자야에게 말했다.

 

“스승이시여, 우리는 죽음을 초월한 진리를

가르치시는 부처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실로 이 세간에 부처님(佛)과 불법(法)와 승가(僧)가 출현한 것입니다.

스승이시여, 스승께서는 지금 아무런 이익도 없고 의미도 없는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희들과 함께 부처님께 귀의하여 진실한 길을 걷도록 하십시다.”

 

이런 두 사람의 제안은 산자야에게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비참한 것이었다.

그는 분노하여 외쳤다.

 

“나는 갈 수 없다!

가고 싶다면 너희들이나 가도록 하라!”

 

 “왜 그렇습니까?”

 

“나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제자로 거느리는 스승이었다.

그런 내가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남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마치 항아리가 찻잔에 들어가려는 것과도 같은 것,

나는 남의 제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지혜로운 자는 적고 어리석은 자는 많다.

지혜로운 자는 밝은 스승을 찾아갈 것이지만 어리석은 자는 나를 찾아오리라.

나는 그들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너희들이나 너희의 새 스승을 찾아가거라.”

 

거기에서 두 사람과 산자야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끝내 산자야를 설득할 수 없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산자야를 떠나 웰루와나 수도원으로 향했다.

 

이때 산자야와 두 사람 사이의 논쟁을 지켜본

산자야의 많은 제자들은 우빠띳사와 꼴리따를 따라 산자야를 떠나고 말았다.

 

그들은 두 사람의 태도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합당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내심 두 사람의 진리를 구하는 안목과 성실성을 존경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하여 오백 명이나 되던

산자야의 제자 가운데 이백오십 명은 우빠띳사를,

나머지 이백오십 명은 꼴리따를 따라가 버리고

자기 수행 장소가 텅 비게 되자 산자야는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렇지만 그들 오백 명 중에서 이백오십 명은 다시 산자야에게 돌아가고,

나머지 이백 오십 명만 이 두 사람과 함께 웰루와나 수도원에 도착했다.

 

<리움미술관 불상>

 

그때 부처님께서는 사부 대중을 모아 놓고 설법을 하고 계셨다.

 

부처님께서는 설법을 하시다가 멀리서 우빠띳사와 꼴리따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오고 있는 것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저기에 우빠띳사와 꼴리따가 오고 있구나.

그들은 머지않아 여래의 양팔과도 같은 으뜸가는 제자가 될 것이니라.”

 

두 사람은 많은 수행자와 함께 부처님 앞에 도착하여

엎드려 존경의 예를 올리고는 옆에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곧 부처님께 자신들을 제자로 받아주실 것을 청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오라 비구여!

진리(법)는 잘 설해졌느니라.

이제 그대들은 성스러운 생활을 하면서 모든 괴로움을 없애고,

일체 윤회의 업(業, 카르마)을 멈추도록 하여라.”

 

그리하여 그들은 곧 비구가 되었는데,

마치 백 년 동안 비구로서 생활하기라도 한 것처럼 능숙해 보이는 것이었다.

 

이렇게 비구가 된 뒤 우빠띳사는 사리뿟따(사리불)로,

꼴리따는 마하목갈라나(마하 목건련)으로 불리었다.

 

마하 목갈라나는 비구가 된 다음에 마

가다 국의 깔라왈라라는 도시에서 좌선 수행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이레째가 되던 날 그는 졸음에 직면하여 고통을 겪었다.

 

그가 그리고 있을 때 부처님께서 그를 졸음에서 벗어나게끔 도와주시었는데,

그런 다음부터 목갈라나는 머리를 흔들고 *혼침과 망상에서 벗어나

수행에 일념으로 집중할 수가 있었다.

 

(*혼침(昏沈)과 망상(妄想) :

수행자가 수행중에 겪기 쉬운 장애들.

혼침은 정신이 탁하게 가라앉아 졸리거나 명료하지 못한 상태.

상은 수행에 도움이 되지 않는 여러 가지 잡다한 생각에 휘둘리는 상태.

한편, 혼침이 잘 다스려져 정신이 고요한 적적(寂寂), 인식이 명료한 상태를 성성(惺惺)이라고 표현한다.)  

 

목갈라나는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몸의 네 가지 구성 요소(사대)와

몸과 마음의 다섯 가지 모임(오온)의 현상을 깊이 관찰했다.

 

그리하여 그는 일념이 집중된 삼매를 체험할 수 있었고,

마침내 아라한 과를 성취하여

일체의 고뇌로부터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신통력까지 갖추었다.

 

그것은 실로 그가 비구가 된지 7일만의 일이었다.

 

한편 사리뿟다 비구는 부처님을 모시고 수행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라자가하 근처에 있는 석굴인 수까라카따에 계셨다.

 

그러던 중 사리뿟따의 조카인 디가나카 비구가 경전을 독송하는 소리를 듣고는,

그 경전의 의미를 자기의 마음에 응용하여 삼매를 얻어 마침내 깨달음을 성취했다.

 

그것은 그가 비구가 된 지 14일만의 일이었다.

 

확실히 사리뿟따 존자는 위대한 지혜를 지닌 성자 중의 대성자였다.

 

그런데 그는 왜 목갈라나 존자보다 7일가 많은

14일이 걸려서 깨달음을 성취할 수밖에 없었던가?

그것은 먼 길을 갈 사람에게는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왕이 행차를 할 때에는 평민이 여행을 준비하는 것보다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한 것과도 같은 이치이다.

 

사리뿟따 존자는 그 후 부처님께서 거룩한 입멸을 보이시기 두 해 전까지

승단의 가장 훌륭한 제자로서 많은 일을 해내었으니

더 많은 준비 기간이 필요한 것도 실로 당연한 일이라 할만 했다.

 

사리뿟다따와 마하 목갈라나가 승단에 들어오던 날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을 모두 웰루와나 사원로 부르시어

그들을 으뜸가는 제자로 선언하시었다.

 

<리움 미술관 지장 보살, 관세음보살>

 

그런데 많은 비구들이 이를 유쾌하지 않게 생각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이것은 치우친 결정이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중요한 문제에 편견을 가지신 것 같다.

이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으뜸가는 제자를 세우시려면 마땅히 교단에 입교한 순서에 따라 해야 할 것이다.

 

최초의 다섯 제자 중에서 고르시든지,

그들이 양보한다면 그 다음에 입교한 야사 비구나

그 밖의 쉰네 명의 비구 중에서 고르셔야 했다.

그리고 그들 또한 아무런 이의가 없다면 우루벨라 마을의

까사빠 삼형제 중에서 골라도 무방했을 것이다.

그 다음 순서는 그 밖의 다른 비구들이다.

사리뿟따나 마하목갈라나는 이제 막 출가했으니 가장 마지막 차례인 것이다.’

 

그들이 이런 생각으로 서로 의견을 나누고 있을 때 부처님께서 다가와 물으시었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결코 사사로운 마음에서 그들을 으뜸 제자로 삼은 것이 아니니라.

여래는 실로 공정하니라.

여래는 비구들이 전생에 어떤 서원을 세웠는지에 따라

으뜸 제자로 삼거나 삼지 않을 뿐이니라.

 

예를 들어 안나 꼰단냐(교진여)는 여래의 첫 번째 제자이지만,

그는 지난 아홉 생에 걸쳐서 첫 수확한 곡식을 수행자들에게 공양하면서

내가 이 다음에 부처님의 으뜸 제자가 되겠노라고 서원하지 않았느니라.

그는 다만 모든 수행 가운데에서 으뜸가는 경지와

부처님의 첫 번째 제자가 되겠다고 서원했을 뿐이며,

그 결과 그의 서원대로 맨 처음 제자로서 여래를 만나 아라한과를 성취했느니라.

 

그렇다면 이들 두 비구는 어떠한가?

이들은 과거 아홉 생에 걸쳐 그들이 수확한 첫 번째 곡식을 수행자들에게 바치면서

이 다음에 부처님이 출현하시면 부처님의 으뜸가는 제자가 되겠다고 서원했느니라.

그러므로 이는 그들 스스로의 서원의 결과일 뿐 여래의 사사로운 판단은 아니니라.”

 

사리뿟다와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얼마 뒤에 부처님과 많은 비구들이 있는 자리에서

그들이 진리를 찾아 헤매던 이야기를 고백해 올렸다.

 

그리고, 그들은 과거의 스승이었던 산자야가

자신들의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고 고집을 부리던 이야기도 사뢰었다.

 

부처님께서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다 들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산자야는 실로 삿된 견해를 지님으로써

거짓을 진실로 잘못 알고 진실을 거짓으로 알았나니,

이는 그 자신에게 아무런 이익이 없는 행위이니라.

그러나 이들 두 비구는 지혜로써 올바로 판단하여

진실을 진실로 알고 받아들였으며, 

거짓을 거짓으로 알아 버렸으니,

이는 매우 현명한 일로써

마침내 번뇌를 해탈하고 깨달음을 얻어 위없는 경지를 성취한 것이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너희는 마땅히 거짓은 거부하고,

진실을 받아들여야 하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신 뒤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 두 편을 읊으시었다.

 

 그들은 진실 아닌 것을 진실이라 받들고

 진실을 거짓이라 여긴다.

 이런 사람들은 그릇된 견해에 머물러 있는 것,

 결코 참다운 진리에 이르지 못한다.

 

 그들은 진실을 진실이라 받들고

 진실 아닌 것을 진실 아닌 것이라 여긴다.

 이런 사람들은 바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

 마침내 참다운 진리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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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 미술관 관세음보살상>

 

1. 교단의 어머니, 지혜제일 사리불 존자

 

사리불 존자와 목련 존자는

부처님 당대 교단에서 양 기둥과 같은 역할을 하셨습니다.

 

두 분은 절친한 도반이었습니다.

 

두 분은 깨달음을 향한 열정과 부처님에 대한 큰 존경심을 가지신 분이셨지만,

서로의 개성이나 성품 그리고 깨달음을 얻은 과정은

약간의 차이가 있었슴을 알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교단에 있어 사리불 존자는 어머니 같고,

목련 존자는 아버지와 같다고 칭찬을 하셨습니다. 

 

사리불 존자는 부처님의 제자 중에서 그 지혜의 깊이나 넓이,

해탈의 교리를 가르치는 능력 등에 있어서 뛰어나

부처님 제자 중에서 "지혜 제일"로 그 명성을 드높였습니다.

 

불교 교단에서 사리불 존자가 맡은 소임과 역할은 

불법을 체계화하고 그 내용을 상세히 분석하는 일이었습니다.

 

진리의 궁극까지 꿰뚫는 깊은 통찰력과

현상계에 대한 날카로운 식별력으로 법의 미묘한 의미를 드러내고

그 의미를 아주 세밀하게 설명하는 것이 사리불 존자의 책임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리불 존자는 그 뛰어난 지혜로

부처님의 교화 사업에서 보조자 이상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그리고, 도반들과의 관계도 아주 원만했습니다.

 

사려 깊고 친근한 도반으로서,

손아래 비구들의 이로움을 지켜주는 보호자로서,

스승의 교의를 충실하게 담는 저장고이자 교사로서

주도적 역할을 해서 "법의 장군(法將)"으로까지 불릴 정도로 뛰어난 분이었습니다.

 

아울러 생각과 말과 행동이 겸손하고 고결하며,

자신에게 행한 조그만 친절도 평생 잊지 않고

감사하며 마음 속에 간직한 사리불 존자였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부처님의 진리의 세계로 귀의하게 해 준

앗사지 존자에 대해 평생동안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고

만날 때마다 극진한 예절로서 앗사지 존자를 떠받들었던

숭고하고 섬세한 인간성의 소유자이기도 했습니다.

 

부처님의 법을 만났을 때도

바로 부처님을 찾아 떠나지 않고 옛 스승을 설득하는 장면이나,

앗사지 존자에게 법을 들을 때도 탁발이 마치기를 기다린 후에

법을 청하는 장면은 이런 섬세하고 사려깊은 인간성을 드러냅니다.

 

이러한 이유로 사리불 존자의 지도를 받은 사람들은

사리불 존자의 온유하고 다정하고 사려깊은 성품에 크게 고양되어

수행의 향상에 용기를 얻고 매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리움 미술관 금동 사리함>

 

2. 교단의 아버지, 신통제일 목련존자

 

반면에 목련존자는 잘 알려진대로 "신통 제일"로 불리웠습니다.

 

당시 불교 교단을 위협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고 전하는데,

목련존자는 이들을 신통력으로 물리치고

교단을 보호하고 외호하는 사천왕과 같은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교단의 성립기에 부처님과 교단에 대항하는

외도들의 음모와 폭력을 물리치는데 공헌을 하였고

교단 내부의 분열을 진압하고 교단을 굳건한 반석 위에 올려놓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두 분 제자분을 포함한

여러 제자분들이 각각의 소임과 역할을 담당하며

교단의 안팎에서 부처님을 도와주고 외호해주셨기에

부처님께서 효율적으로 법륜을 굴리고 전법하실수 있으셨습니다.

 

초기 불교 승가가 잘 정착하고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두 분의 존자를 비롯한 여러 제자분들의 공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제자분들의 역할과 소임처럼

우리들도 깨달음에 대한 열정과 부처님에 대한 존경심을 계속 간직하며

자신의 개성과 성품에 맞게 불법을 전하는 일에 공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목련 존자와 사리불 존자의 깨달음의 과정도 흥미롭습니다.

 

목련 존자는 사대와 오온에 대한 관찰 명상과 함께

망상과 혼침에 빠질 때 부처님의 도움으로 7일만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반면 사리불 존자는 경전에 대한 구절을 듣고서

경전의 의미를 자신의 삶의 문제에 적용하고 응용하며 명상한 결과

14일만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부처님은 사리불 존자가 깨달음을 얻는데 시간이 더 걸린 이유를

먼 길을 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체계적으로 법을 설하는 소임을 맡으실 분이었고,

보다 섬세한 성품의 사리불 존자가 깨달음을 위해서는

보다 깊은 법에 대한 사유와 공부가 필요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이러한 사리불 존자와 목련 존자가 부처님 교단에 들어갔을 때

먼저  교단에 입문했던 많은 제자분들의 반발이 있었슴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각자 전생부터

서원을 세워서 닦아온 바가 다르다는 것을 말씀하시며

두 제자분이 부처님의 으뜸가는 제자가 되기 위해

자신들을 꾸준히 닦아온 큰 그릇임을 대중들에게 선언하셨습니다.

 

<리움 미술관 금강저>

 

3. 고집

 

그리고, 사리불 존자와 목련 존자가 부처님을 찾아 길을 떠났을 때,

부처님 밑에는 들어갈 수 없다며 거부하며 피를 토했던 옛 스승 산자야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진실을 진실로 알고,

진실 아님을 진실 아님으로 알았을 때

고집 피우지 않고 인정하고 수용하는

겸손한 마음 가짐을 가진 사람이 올바른 진리의 길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자기 고집 없이 바른 가르침을 잘 수용할 수 있는 수용성과 겸손함이

공부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자각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