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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불교 성지 순례

중국 불교 성지 순례(6) - 서안 대안탑, 대자은사

by 아미타온 2024. 2. 10.

<중국 불교 성지 순례(6) - 서안 대안탑, 대자은사>

 

<대자은사와 대안탑>

 

1. 서안(장안)과 불교

 
오늘날 ‘서안(西安)’으로 불리는 장안(長安)
중국 고대 왕국의 수도로 유명합니다.
 
특히, 장안이 가장 발달했던 시기는 중국 당나라(AD 618~925) 때입니다.
 
당나라는 중국 문화를 발전시킨 왕조이자
동시에 대외 활동을 활발하게 추진했고,
이민족의 문화와 그들의 자치를 인정하는 등
다민족적이고 국제적인 요소가 가장 짙었던 왕조로 평가받습니다.
 

<대안탑에서 바라본 서안(장안)>

 
당나라 때 장안은 실크로드의 출발지로서 로마까지 교역하며
당시 인구 100만의 국제적인 도시로 이름 높았습니다.
 

<서안(장안>

 
신라의 수많은 구법승들도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에서
불교를 공부하고 우리 나라로 돌아와
우리나라 전역에 불법의 가르침을 널리 펼쳤습니다.
 
우리 나라 불교와도 깊은 연관이 있는 장안입니다.
 

<대안탑>

 

2. 대안탑

 
서안의 랜드마크로 불리는 유명한 탑이 있습니다.
바로 ‘대안탑(大岸塔)’입니다.
 
높이 64m의 벽돌로 쌓은 대안탑은 당나라 시대 때 세워진 탑으로
오늘날에도 서안을 상징하는 대탑입니다.
 
대안탑은 손오공이 나오는 <서유기>의 주인공인 현장 법사
인도에서 가져온 많은 불경을 번역한
대자은사(大慈恩寺)’라는 절에 세워진 탑입니다.
 

<삼장 법사 현장>

 

3. 삼장법사 현장

 
‘대자은사’와 ‘대안탑’을 통해
현장 법사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현장 법사는 흔히 ‘삼장(三藏) 법사’라고도 불립니다.
삼장 법사는 ‘경장, 율장, 논장의 삼장(三藏)에 달통한 법사’라는 뜻입니다.
 
삼장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은 경전인 경장,
불자들이 지켜야 할 행동 규범인 계율을 담은 율장,
경전의 가르침을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해석한 논장의 셋을 말합니다.
 
즉, 삼장은 불법의 모든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삼장 법사는 불법의 진리에 가장 많이 달통하여
중생들에게 불법의 가르침을 설할 수 있는 법사입니다.
 

<대안탑과 현장 법사 동상>

 
대안탑 입구에 가면 현장 법사의 큰 동상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현장 법사는 ‘당 삼장(唐 三藏)’이라는 별칭으로 불립니다.
 
당나라를 대표하는 국가대표급 법사라는 뜻입니다.
왜 현장 법사가 이렇게 당나라를 대표하는 삼장 법사가 될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먼저 불법을 구하는 구법의 열정이 남달랐기 때문입니다.
현장 법사는 불법의 바른 이치를 정말로 바르게 알려는 열정을 가졌습니다.
 

<말을 타고 구법의 길을 가는 현장 법사를 그린 그림>

 

4. 구법 열정

 
그는 특히 유식 불교의 가르침에 관심이 많았는데,
당시 어렵게 해석된 유식 불교의 가르침을 인도에 직접 가서 공부해서
그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공부하려는 열망을 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는 당나라 창건 초기라서 국제 정세가 불안했습니다.
당 태종은 국가 허가 없이 중국인이 서역으로 향하는 것을 엄격히 금하고 있었습니다.
 

<구법의 길을 가는 현장 법사를 그린 조각>

 
그런데, 현장 법사는 인도로 직접 가서
법을 구하려는 구법의 열정으로
국법을 어기고 목숨을 걸고 인도로 향했습니다.
 
오늘날처럼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도 아니라 걸어서 인도를 가려면
서역의 험한 산맥과 모래 폭풍이 부는 사막을 지나야 했습니다.
 
모래 폭풍이 휘몰아치는 고난의 구법 여행 중에
중국으로 돌아가고픈 유혹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러나, 현장 법사는 구법의 길을 떠난 이유를 되새기고,
반야심경을 독송하고 관세음보살님을 염불하며
불보살님의 가피를 기원하며 앞으로 나아갔다고 합니다.
 

<대안탑과 미륵전>

 

5. 유식 불교의 대가, 현장 법사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마침내 인도에 도착한
현장 법사의 구법 여행은 전설이 되고 신화가 되어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과 함께 나오는 <서유기>의 실제 모델이 되었습니다.
 
인도에 도착한 현장 법사는 제일 먼저 부처님의 4대 성지를 참배했습니다.
특히,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성지 붓다가야에서는
자신이 구하는 불법을 깨닫기 전에는 결코 돌아가지 않겠다는 서원을 내었습니다.
 
그리고, 인도 나란다 대학에 들어가
당시 유식 불교의 대가였던 계현 화상으로부터
10여 년간 유식 불교를 배워 유식 불교에 달통한 법사가 되었습니다.
 
중국 출신이었지만 인도어를 자유자재로 습득하여
훌륭한 유식 법사로 인도 왕 앞에서 법을 설하여
인도 왕의 귀의를 받았다고 합니다.
 
인도 왕은 현장 법사가 중국으로 돌아갈 때
불상과 경전 등을 선물하며
중국으로 떠나는 것을 애석히 여겼다고 전합니다.
 

<대안탑>

 
한편, 현장 법사는 법을 설하는 법사로서
자신이 인도에서 깨달은 불법을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공부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유식 불교의 많은 경전들을 번역하고자 하는
열망을 갖고 열정적으로 경전을 번역하였습니다.
 
원래 대안탑은 현장 법사가 인도에서 가져온
경전과 불상을 모시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당 현종의 귀의를 받는 현장 법사>

 

6. 불경 번역 작업

 
당 태종은 현장 법사가 중국으로 귀국하자
현장 법사를 직접 만나보고
그의 폭넓은 학식과 견문에 경의를 표했습니다.
 
그리고, 환속하여 황제인 자신을
보좌해줄 것을 간곡히 간청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현장 법사는 그 제안을 완곡하게 거절했습니다.
 
“인도에서 가져온 경전을 번역하여 후대의 사람들이
불법을 바르게 이해하게 하는 일대의 염원인
경전 번역 사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저는 환속할 수 없습니다.”
 

<대안탑 광장>

 
당 태종도 마침내 승복하고 황제의 칙명에 의해
경전 번역 사업을 국가적으로 지원해 주었습니다.
 
현장 법사가 번역 사업을 시작하자
전국에서 유능한 승려와 석학들이 역경의 협력가로 모여들었습니다.
 
현장 법사는 번역된 경전의 의미가
올바른지를 검증하는 소임을 맡은 승려 12명,
역경의 문장을 다듬는 소임을 맡은 승려 9명,
문자와 어구가 올바른지를 살펴보는 승려 1명,
역경 중의 범어 범문을 검증하는 승려 1명으로
주요 역경의 보직과 인원을 선발하였습니다.
 
그 밖에도 역경한 내용을 필사하여 받아적는
수많은 필수자(筆受者)를 채용하여
경전 번역 작업을 보조하도록 하였습니다.
 

<현장법사가 20년간 경전을 번역한 대자은사 대웅보전>

 
현장 법사는 20년간 대자은사에 상주하며
경전 번역 사업에 몰두했습니다.
 
현장 법사는 매일 계획을 세워서
번역할 분량을 미리 정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분량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날 안으로 모두 번역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낮에 용무가 있어서 번역하지 못할 때에는
한밤중에라도 번역하여 밤 10시가 넘는 시간까지 번역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번역 작업을 마치면 부처님께 감사의 예불을 올리고
매일 12시에 잠자리에 들었다고 합니다.
 

<대자은사 부처님>

 
그리고, 다음날은 새벽 4시에 일어나
그날 번역할 부분의 경전 원본을 읽고
순서대로 붉은 점을 찍고서 번역할 준비를 하였다고 합니다.
 
참으로 대단한 열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장 법사의 공덕을 찬탄하는 조각>

 

7. 현장 법사의 큰 은혜

 
이와 같은 현장 법사의 구법의 열정과
경전 번역의 열정을 느낄 수 있는 불교 성지가 바로 대안탑입니다.
 

<경전 번역의 큰 은혜>

 
 
불법을 모르는 중생들에게 대한 깊은 자비심으로
불법을 널리 세상에 펼치려는 현장 법사의
자비의 원력과 열정의 은혜 가득한 곳이기 때문에
절 이름을 대자은사(大慈恩寺)라고 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