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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불교 성지 순례

중국 불교 성지 순례(8) - 중국 법상종찰, 장안 흥교사

by 아미타온 2024. 3. 1.

<중국 불교 성지 순례(8) - 중국 법상종찰, 장안 흥교사>

 

<법상(法相)의 글씨가 쓰져 있는 호국 흥교사 정문>

 

1. 중국 법상종의 총본산, 흥교사

 

오늘은 장안 종남산에 있는

흥교사(興敎寺)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번 중국 장안의 '대안탑과 대자은사' 편에서

삼장 법사 현장의 경전 역경 사업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흥교사는 유식 불교 종파인 법상종(法相宗)총본산으로

삼장 법사 현장의 유골을 모신 사리탑이 있습니다.

 

흥교사는 동원, 중원, 서원의 세 구역으로 잘 꾸며진 도량이었습니다.

 

이곳도 단장한지 얼마되지 않아 보였지만,

그동안 보았던 중국 사찰들 중에서 가장 편안하고 단아한 곳이었습니다.

 

대웅전이 있는 중원을 거쳐

현장 법사와 두 수제자인

원측과 규기의 사리탑이 있는 서원으로 갔습니다.

 

현장법사의 큰 사리탑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원측규기 두 제자의 사리탑이

죽어서도 스승을 모시고 있었습니다.

 

아름답고 감동스럽습니다.

 

<현장 법사 사리탑인 당삼장탑>

 

2. 위대한 법사, 현장 법사

 

현장 법사는 유식 불교의 위대한 법사(法師)였습니다.

 

법사는 부처님 법(진리)에 달통해야 하고,

법을 구하는 열의가 그 누구보다 열렬해야 합니다.

 

현장 법사는 이 두가지 조건을 모두 갖춘 법사였습니다.

 

현장 법사는 반야심경, 해심밀경, 성유식론(유가사지론) 등의

수많은 불교 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했습니다.

 

<법상상주 : 진리의 법상은 항상 이곳에 머문다는 뜻>

 

현장 법사는 20년 동안 장안 대자은사에서 역경 사업에 몰두했습니다.

 

현장 법사는 매일 계획을 세워서 번역할 분량을 미리 정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분량만큼은 그날 안으로 모두 번역했습니다.

 

이렇게 매일 정해진 양을 번역할 뿐만 아니라,

번역한 부분은 아침, 저녁 두 차례씩 학승들을 위해 강의했습니다.

 

이와 같이 역경과 설법을 함께 했던 위대한 법사였습니다.

 

즉, 역경이 곧 설법이고 전법이었던 것입니다.

 

<흥교사 대웅전>

 

3. 현장 법사의 번역의 특징, 직역

 

현장 법사는 인도 구법의 목적이었던

<성유식론(유가사지론)>을 번역하는데는

정열과 함께 신중을 기해서 2년에 걸려 완성했습니다.

 

가장 어려운 번역 사업은 현장 법사의 말년에

이루어진 <대반야경> 역경 사업이었습니다.

 

<대반야경> 인도 원본은 20만 송(640만 자)으로 된

모든 한역 경전 가운데 가장 방대한 양입니다.

 

경문이 너무 방대하고 반복되는 구절이 많아서

제자들은 중국인의 기호에 맞게 중복을 피하고

내용을 중심으로 간결하게 번역해 달라고 했습니다.

 

처음에 현장 법사도 그 의견을 따라 간추려 번역하려 했습니다.

 

<광명과 수명이 한량없는 아미타 부처님>

 

그런데, 현장 법사는 잠을 자면서

온갖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깎아지른 듯한 험준하고 위험한 산을 오르거나,

맹수에게 습격당하는 꿈이었습니다.

 

그는 식은 땀을 흘리며 꿈에서 깨어나곤 했습니다.

 

이 꿈을 제자들에게 말하며

결국에는 원전을 생략하지 않고

직역해서 있는 그대로 번역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흥교사의 나팔꽃>

 

그러자, 이번에는 불보살님이 나타나

미간에서 빛을 놓으시며 크게 기뻐했고,

현장 법사는 향기로운 꽃과 밝은 등불로 불보살님께 공양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 설법한 뒤 찬탄받으며 과일을 보시받는 길몽을 꾸었습니다.

 

그렇게 4년 동안 정진하여 <대반야경> 600권을 모두 번역하였습니다.

 

<인도로 구법 여행을 떠나는 현장 법사상>

 

4. 반야심경 독송

 

우리는 <대반야경>의 요점을 260자로

간결히 드러낸 <반야심경>을 주로 독송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독송하는 <반야심경>도 현장 법사가 번역한 것입니다.

 

현장 법사의 그 노고를 생각하며

우리도 감사히 <반야심경>을 독송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장 법사와 두 수제자 원측, 규기>

 

5. 후학 양성

 

한편, 현장 법사는 훌륭한 제자를 키워 내는 노력을 했습니다.

 

현장 법사의 유식의 가르침을 이어받은 두 분의 큰 제자가

바로 신라인 원측 스님과 중국인 규기 스님입니다.

 

원측 법사가 우리 신라 사람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아무튼 현장 법사의 유식 불교의 가르침은

원측 스님과 규기 스님을 비롯한 제자들에 의해 전승되어

한국과 일본에도 법상종의 가르침이 흘려 퍼졌던 것입니다.

 

<현장 법사와 원측, 규기 스님을 모신 자은탑전>

 

6. 현장, 원측, 규기

 

그런데, 어떻게 현장, 원측, 규기,

이렇게 세 분이 한 자리에 모셔진 것일까요?

 

현장 법사는 62세에 위대했지만 고단한 삶을 마칩니다.

 

그리고, 산골짜기 외진 곳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깁니다.

 

고승다운 유언이지만,

현장 법사가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는지 엿볼 수 있는 유언입니다.

 

당 고종은 유언대로 서안 동쪽 교외 백록원에 매장했습니다.

그리고, 몇년 뒤 측천무후가 장안 종남산 흥교사에 사리탑을 세워 모셨습니다.

 

<규기 스님을 모신 기사탑>

 

18년 뒤 규기 스님은 50세에 숨을 거두고

스승의 옆에 묻어달라 유언합니다.

 

규기 스님의 제자들은 유언대로 현장 법사의 옆에 모십니다.

 

<원측 스님의 유골을 모신 측사탑>

 

현장 법사의 또 다른 상수 제자인 원측 스님은 83세까지 장수하고,

규기 스님이 죽은 후 14년 뒤에 을 마칩니다.

 

원측 스님 또한 스승인 현장법사 옆에 묻어달라 유언했지만,

원측 스님의 제자들은 종남산 풍덕사에 사리탑을 세워 안치합니다.

 

학자들은 당시 규기 파와 원측 파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그 영향 때문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지금 흥교사에 있는 원측 스님의 사리탑은

400여년이 지난 송나라 시절 풍덕사 사리탑에서

유골 일부를 옮겨 조성한 탑입니다.

 

죽어서도 스승 현장 법사를 모시고자 했던

우리 신라 스님인 원측 스님의 바램이

뒤늦게나마 이루어진 것이 애잔하면서도 다행스럽습니다.

 

<사리탑전에서 그림 그리는 사람들>

 

7. 자은(慈恩)

 

흥교사 사리탑에 참배하는 시간은 고요했고 아늑했습니다.

 

흥교사에는 단정하고 고운 풍경을 그리고 있는 사람들과

사진 모임으로 보이는 관람객들이 있을 뿐 소란스럽지 않아 좋았습니다.

 

<자은탑원>

 

스승의 훌륭한 가르침이 제자에게 전승되고,

천 년이 넘는 세월동안 아름답게 지켜왔다는 것이 훌륭합니다.

 

스승의 자비로운 은혜인 자은(慈恩)을 잊지 않고

마음 속에 잘 품고 지켜낸 그 정신을 잘 계승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배>

 

그리고, 현장 법사가 외국에서 온

신라 출신의 원측 스님을 차별하지 않고

잘 품어서 훌륭하게 길러낸 점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에는 국경이 있지만,

진리의 세계에는 국경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께서 카스트를 초월하여

모든 이들에게 법을 설하신 것처럼

진리의 문은 누구에게나 차별없이 열려져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흥교사에서 중국, 한국을 따지지 않고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불법의 가치를 느낄수 있어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