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24) 니가마와시 띳사 비구 이야기>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시던 어느 때,
니가마와시 띳사 스님와 관련하여 게송 32번을 설법하시었다.
니가마와시 띳사는 사왓티 근처의
니가마와시라는 작은 상업 도시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그는 나이가 들어 부처님의 교단에 들어와 비구가 되었는데,
매우 검소한 생활을 했다.
그는 물건을 극히 조금만 가졌고,
탁발은 자기 친지들이 사는 곳에서 얻어 왔는데,
무엇이든 얻어지는 대로, 즉 음식이 나쁜 것이든 거친 것이든 가리지 않았다.
그는 다만 최소한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정도의 음식으로 만족했으며
나머지 시간은 좌선에 몰두했다.
심지어 그는 큰 부자인 수닷타 장자가
수많은 스님들을 공양하는 만승 공양(萬僧供養)이라든가,
파세다디 왕이 베푸는 화려하고 풍부한 공양 행사에도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런데, 일부 비구들에게는 그의 이같은 초연하고 검소한 생활이
곱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비난을 받게 되었다.
그들은 비난하기를 니가마와시 띳사 비구는
자기 친척들과 매우 가까이 지내면서
그들의 공양만을 받아올 뿐만 아니라 입에 맞는 것만을 골라서 먹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출가한 비구로서
예전의 가족이나 친척과 가까이 지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비난했다.
또 수닷타 장자와 빠세나디 왕의 공양회에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는 매우 교만한 비구라는 것이었다.
이 같은 비난은 부처님에게도 전해졌다.
부처님께서는 그 비구를 불러 소문의 진상을 물으시었다.
니가마와시 띳사 비구가 대답했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가족 친지들이 사는 곳 가까운 데서 수행을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음식을 탁발해 오는 것도 또한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결코 집착이나 애욕 때문에
그들 가까이에서 수행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제 가족이나 친지들을 다른 일반 신자들과 차별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들이 어떠한 음식을 제공하든지 간에
결코 좋거나 싫은 태도를 보인 적이 없습니다.
저는 다만 수행을 하는 데 있어서 최소한도의 음식을 받는 것으로 늘 만족합니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큰 공양 행사에 참석하지 않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 시간에 좌선 정진을 하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저는 다만 이처럼 검소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 비구의 대답에 대해서 아주 만족하게 생각하셨다.
부처님께서는 그 비구의 그런 생활 태도를 칭찬하신 다음
모든 비구들은 마땅히 그 비구를 본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한때 앵무새 왕이 갠지스 강변의 무화과
나무 동산에서 많은 무리의 새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앵무새들은 버릇이 이상해서
한 숲을 정해서 그 숲에 있는 열매를 다 먹고 나면 곧 그곳을 떠나곤 했다.
그런데 앵무새의 왕만은 열매가 다 없어진 다음에도 그곳을 떠나지 않고
나무순이라든가 나무껍질, 썩은 과일 등을 먹으면서 남아 있었다.
그때 천상의 제석천왕은 앵무새 왕의 이런 생활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그는 앵무새 왕의 태도가 진실한 것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짐짓 신통력으로 숲 속의 모든 나무들을 시들게 했다.
그런 다음 그와 그의 아내 수자따는 기러기로 변신하여
앵무새 왕에게 접근하여 이렇게 물어보았다.
"당신은 왜 늙고 시든 이 나무들을 떠나
싱싱한 열매가 많은 나무들을 찾아가지 않은 겁니까."
앵무새 왕이 대답했다.
"이 나무들은 전에 열매를 생산하여
나로 하여금 잘 먹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었소.
나는 그 점을 이 나무들에게 감사하고 있소.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 무엇이든 먹을 만한 것이
남아 있는 한 나는 이 곳을 떠날 생각이 없소."
제석천왕은 앵무새 왕의 대답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그는 곧 자기의 본모습을 드러내어 신분을 밝힌 다음
갠지스 강물을 끌어와 시든 무화과 나무들을 모두 소생시켜 주었다.
그러자 나무들의 잎이 푸르게 무성해졌고,
오래지 않아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리게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었다.
"이와 같이 비록 짐승이라 할지라도 어질게 생활하며
욕심을 부리지 않고 현재에 만족할 줄 알았느니라."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마음 집중 수행을 기뻐하고
게으름과 무관심을 두려워하는 비구는
뒤로 물러서지 않아서
열반에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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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인
성경에 "의인(義人)은 자기 고향에서조차 대접받지 못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의인"이란 진리에 입각한 바른 삶을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진리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 눈에
0바른 길을 가는 의인은 이상하게 보이는 법입니다.
그래서, 의인의 삶에 대해 이런저런 말이 많고 심지어 위해를 가하기까지 합니다.
예수님도 고향 이스라엘에서 박해 당해 죽었고 역사상에 이러한 예는 수없이 많습니다.
<법구경>의 위 이야기도 비슷합니다.
진정한 수행자는 자기 고향인 승가에서조차 대접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부처님 당시에 출가 수행자는 욕심을 버리고 분별심을 내지 말고
의식주에 있어서 검소하고 작은 것에 만족하는 소욕지족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욕심을 버리고 분별심을 내지않고 소욕지족하며
수행에만 전념하는 수행자를 부처님은 칭찬하셨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두타 제일"로 불리우는 마하 가섭 존자입니다.
니가마와시 띳사 비구도 마하 가섭 존자와 비슷한 유형의 수행자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교단에 이런 비구에 대해
삐딱한 시선을 가지는 비구들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그가 어떤 수행자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고
독선적이고 교만한 비구라고 말들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2. 구업
오직 눈밝은 부처님만이 진의를 파악하시고
니가마와시 띳사 비구에 대해 진정한 수행자라고 대접을 해 주셨습니다.
부처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그는 고향인 승가에서조차
대접받지 못하는 외로운 의인 신세가 되었을 것입니다.
의인을 의인으로,
수행자를 수행자로 볼 수 있는 밝은 눈을 가진 사람만이
의인을 의인답게, 수행자를 수행자답게 대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그러한 밝은 눈이 없다면
그러한 눈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밝은 눈이 없다면 함부로 남에 대해 평가하는 일을 삼가야 할 것입니다.
특히, 끼리끼리 모여 옥의 티만 보고
사람을 헐뜯고 비방하는 구업은 정말 조심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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