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인물사(2) - 신라 불교의 새벽별, 원효 대사(2) - 해골물>
원효 대사는 이와 같이 공부에 열중하여
스승을 구하고 경전을 연구하고 정진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 남는 깨달음의 앙금을 해소하지 못하게 되자
당시의 풍조에 따라 의상 대사와 함께 중국 당나라로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그 때가 원효의 나이 34살, 의상은 25살 때였습니다.
두 사람은 처음에는 육로로
고구려를 통과하여 만주를 거쳐 당나라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더 요동성 근처에서 고구려 군에게 그만 잡히고 말았습니다.
신라 첩자로 오인받아 고초를 겪다가 결국 귀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법을 구하려는 그의 열망을 잠재울 수는 없었습니다.
신라가 백제를 합병하고 당나라로 가는 바닷길이 열린 661년,
원효 대사는 다시 의상과 함께 다시 당나라로 가는 뱃길에 올랐습니다.
그 때가 원효 대사의 나이 45세 때였습니다.
당시 중국 당나라에는 인도에서 불경을 구해서
경전을 번역한 삼장 법사 현장이 가르침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삼장 법사 현장은 특히, 유식 불교 경전을 많이 번역하여
유식 불교의 가르침을 널리 펼치고 있었습니다.
원효 대사도 당나라에서 현장 법사가 번역한 유식 불교 경전을
체계적으로 깊이 공부하려는 열망을 가졌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원효 대사는 당시 당나라로 가는 뱃길이 있던
당항성(경기도 화성)으로 가던 도중 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밤이 깊어 야밤에 동굴로 보이는 무덤에 들어갔는데,
그 무덤 동굴 속에서 큰 각성을 했습니다.
빈 동굴에 도착한 원효와 의상은 피곤에 밀려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얼마나 잤을까..
너무 못이 말라 잠을 깬 원효는 주위를 더듬다가
바가지에 담긴 물을 발견하고 정신없이 달게 마셨습니다.
그러나, 간밤에 일어나 보니 그 바가지는 간 곳이 없고
피고름 찌꺼기가 붙어 있는 해골바가지가 덩그라니 놓여 있었습니다.
이것을 본 원효는 비위가 상하여 심하게 구토를 했습니다.
그러다 큰 깨달음을 얻었다.
어젯밤에 마셨던 감로수와 같은 달콤한 물과
해골바가지를 보는 순간 느낀 순간의 괴로운 구토...
이를 통해 원효의 머리를 탁 치는 것이 있었습니다.
원효 대사는 다음과 같은 오도송을 불렀다고 합니다.
"마음이 생하면 갖가지 법이 생겨나고
마음이 사라지면 해골물과 감로수가 둘이 아니네.
(心生故種種法生(심생고종종법생)
心滅故龕墳不二(심멸감분불이) )
삼계는 오직 마음이요
만법은 오직 인식하기에 달린 것을.
(又三界唯心(우삼계유심)
萬法唯識(만법유식))
마음 밖에 다른 법이 없는데
어찌 달리 구함을 두겠는가!
나는 이제 당나라로 들어가지 않겠다."
(心外無法(심외무법)
胡用別求(호용별구)
我不入唐(아불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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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골물 이야기와 무덤속 귀신 이야기
원효의 해골물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그런데, 해골물 이야기는 여러 자료에 따라 그 내용이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원효의 전기가 주로 나타난 자료는
<삼국유사(고려 때 일연이 지은 역사책)>와
<송고승전(중국 송나라때 중국에서 지은 고승열전)>입니다.
이 두 자료에는 원효가 해골물을 마신 이야기는 없다고 합니다.
이 두 기록에는 다음과 같은 스토리가 있다고 합니다.
원효가 처음 들어갈 때는 좋은 동굴(감실)이라고 해서 들어가서 잘 잤는데,
꿈 속에서 무서운 귀신에 시달려 일어나니 무덤임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합니다.
즉, 몸이 피곤할 때는 최고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감실이었는데,
단잠을 잘 때 귀신 악몽 속에서 무덤임을 알고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해골물을 마신 이야기는 <삼국유사>나 <송고승전>보다
이후의 11세기의 자료부터 보인다고 합니다.
원효 대사의 깨달음을 더욱 선명하게 독자들에게 각인시켜주기 위해
해골물 이야기로 후대에 편집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그러나, 무덤의 스토리든 해골물 스토리든 전하는 메세지는 비슷합니다.
2. 동일한 대상에 대한 두가지 반응
먼저 해골 속의 물이라는 '동일한 대상'을 두고 보인
원효 대사의 반응을 살펴 봅시다.
원효는 전혀 상반된 두 가지의 반응을 보입니다.
하나는 너무나 시원하게 그 물을 벌컥벌컥 마시면서
하늘에서 내린 감로수인 양 지극히 시원해 하는 모습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 동일한 해골물을 보고
썩은 물이라도 마신 듯 견딜수 없는 구토와 고통을 느낀 것입니다.
그런데, 원효 대사가 하늘에서 내린 감로수를 마신 듯 시원해 할 때에도
해골 바가지의 물은 여전히 해골바가지의 물이었습니다.
반대로 못 마실 썩을 물을 마시며 구토와 고통으로 괴로와할 때에도
해골 바가지의 물은 여전히 해골바가지의 물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즉, '해골바가지의 물'이라는
사물 자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는데도,
원효 대사는 그 '동일한 대상'에 대해 전혀 다른 상반된 반응을 보인 것입니다.
3. 마음
그렇다면 원효 대사의 그 '상반된 반응'의 원인은
해골바가지의 물 자체에 있는가요?
원효 대사의 마음(불교적 용어로 분별심(分別心)) 에 있는가요?
그것은 분명 원효 대사의 마음에 있었습니다.
해골바가지의 체험을 통해 원효 대사가 깨달은 것은
깨끗하니 더럽니 하는 이러한 분별이
존재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의 인식의 문제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삼계는 마음이요,
만법은 인식하기 따름이라는
'삼계유심 만법유식'의 깨달음을 얻은 것이지요.
이 체험을 통해 자신의 인식의 전환을 통해서는
해골 바가지의 물이 감로수로 바뀔 수 있다는 자각이었습니다.
"번뇌 즉 보리"라고 하는 대승의 핵심적 교리가 머리를 치면서
번뇌가 보리를 낳을 수 있는 방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확고하게 납득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4. 각성을 위한 준비
우리도 원효 대사와 비슷한 이와 같은 경험을 가끔씩 합니다.
그러나, 그 경험을 통해 원효대사만큼 확고부동하게 각성하지 못합니다.
반면 원효는 그 해골물 체험을 통해 그가 그동안 공부했던
유식, 화엄, 반야와 같은 대승의 가르침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서말의 구슬들이 하나의 실로 꿰어지며 확고하게 납득되어지는
인식의 전환을 맞이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원효 대사가 법(진리)에 목말라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로수를 마셔 새로운 생명을 얻는 것처럼
해골물 체험을 통해 그것을 납득하기 이전과는 전혀 다른
확고부동한 마인드와 삶의 가치를 갖고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원효의 깨달음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저는 이 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불교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얼마나 철저하게 납득했는가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체험한 것을 소중히 명상하고,
그 체험을 자신의 고뇌와 배움과 일치시키려는 노력의 끈을
항상 놓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뭐든지 대충 알고 대충 느꼈다가
놓아버리는 공부 행태가 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에 목말라 하며 배움을 열심히 구해야 하며,
자신의 소중한 체험을 그냥 넘기지 말고
소중히 명상하는 깨달음을 향한 준비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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