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인물사(2) - 신라 불교의 새벽별, 원효 대사(3) - 회향>
원효 대사는 해골물을 마신 체험 이후
당나라로 향하던 발길을 신라로 돌렸습니다.
10년간 두차례에 걸쳐 고생하며 떠나려 했던
중국 유학의 꿈을 접은 것입니다.
서라벌로 다시 돌아온 원효는 분황사에 머물렀습니다.
분황사는 현재에는 작은 절이지만,
당시에는 신라 최대의 사찰인 황룡사와 비견될 정도로 큰 사찰이었습니다.
분황사는 자장 율사를 비롯한 신라의 많은 고승들이 주석했던 절입니다.
그래서, 중국 유학승이 가져온 많은 불경들이 소장되어 있었습니다.
원효 대사는 분황사에서 자신이 해골물의 깨달음의 체험을 기반으로
그동안 공부했던 많은 경전들에 대해 다시 한번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원효 대사는 집필에 몰두했습니다.
그는 먼저 여러 경전들의 핵심을 요약 정리하는 "종요(宗要)"를 지었습니다.
열반경과 법화경의 대의를 파악한 <열반경 종요>, <법화경 종요>,
무량수경의 대의를 파악한 <무량수경 종요>,
용수보살의 삼론(중론,백론,십이문론)의
중관 사상의 핵심을 파악한 <삼론 종요>이 대표적입니다.
그리고, 당시 중국에서 유행하던 새로운 불교적 흐름인
유식, 화엄의 여러 경전들과 논서들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원효는 유식과 화엄의 경전에 주석을 다는
논(論)과 소(疏)를 쓰면서 자신의 불교적 지평을 확대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왕성한 저술 활동을 통해
신라에 명성을 날리던 원효 대사는 갑자기 붓을 던집니다.
화엄경에 대한 주석을 다는 <화엄경소>를 저술하다가
보살이 중생을 위해 일체의 깨달음과 선행 공덕을 회향함을 설하는
"10회향품" 에 이르러 보살의 회향과 실천에 대해 깊이 통찰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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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술 활동
원효 대사는 해골물의 각성을 통해
자신의 불교적 의문의 문고리를 잡는 체험을 통해
문자로만 알고 있던 경전의 구절구절들이
자신의 피가 되고 살이 됨을 느꼈다고 생각합니다.
즉, 더 이상 배움에 대한 갈증이 사라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원효 대사는 당나라로 갈 필요가 없슴을 깨닫고
다시 신라로 들어가 자신이 공부한 경전들의 가르침을 돌아보았던 것입니다.
선종에서 깨달음을 증득하면
'보림(寶林)'이라는 과정을 통해 깨달음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진다고 합니다.
원효 대사 또한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경전들의 핵심된 가르침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자신의 해골물의 깨달음의 체험과 함께 하며 자기화하는 작업을 거쳤던 것입니다.
원효 대사는 총 99부 240권의 방대한 저술을 남겼습니다.
원효 대사와 동시대를 살았던 서유기의 주인공 삼장법사 현장이
인도에서 가져와 번역한 경전과 논서가 총 50여부였던 것에 비하자면
실로 엄청한 저술량이라고 생각합니다.
원효 대사는 그만큼 방대한 공부량이 축적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여러 경전의 대의와 핵심을 정리한 '종요',
경전에 자신의 견해와 주석을 다는 '논'과 '소'의 저술 활동을 했습니다.
특히, 원효 대사가 '대승기신론'의 주석을 단
'대승기신론소'는 '해동소(海東疏)'라고 불리며
전세계적인 극찬을 받는 대표적인 주석서라고 합니다.
원효 대사의 저술은 난해하지 않고 쉬우면서도
자신의 주장이 분명하고 명료한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당시 원효의 저술은 신라 뿐 아니라,
일본이나 중국으로 전파되어 국제적으로
후대의 불교 지식인들에게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2. 회향
이러한 원효가 해골물에 의한 체험 이후
다시 한번 강렬한 인식의 전환을 체험하게 된 계기는
대승보살의 실천을 위한 화엄경 '십회향품'의 주석을 달 때였습니다.
이 때 원효 대사가 어떤 새로운 각성을 하게 되었는지는
해골물의 스토리처럼 극적이고 구체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보살의 모든 공덕과 수행의 열매를
중생에게로 되돌리는 회향(回向)은 보살의 자비행입니다.
즉, 고통받는 민중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구체적인 실천의 길을 나서야 한다는 강한 자각이 일어났다고 생각합니다.
대승불교의 이상은 "해탈"과 "중생 제도"입니다.
이것을 흔히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고 표현합니다.
해탈을 위해 공부하는 수행자는
자신의 각성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보살의 '회향'에 눈 뜨기 전의 원효 대사의 삶이
자신의 각성인 해탈에 주력했다면,
이제는 보살로서 새로운 삶에 대한 자각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원효 대사는 이제 회향의 길을 가는 보살로서
자신의 깨달음을 중생들에게 회향하려는 자비와 실천의 염을
화엄경 십회향품을 통해 자각하면서 새롭게 삶의 행로를 정한 것입니다.
즉, 해골물의 체험이 그를 해탈로 이끄는 이정표였다면,
화엄경을 통한 회향의 자각은 중생제도의 보살행으로 나아가는
또 하나의 큰 이정표가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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