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천은사>
1. 원교 이광사
구례 천은사.
천은사는
지리산 노고단 올라가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천은사 입구에는 작지만
정갈한 일주문이 있습니다.
일주문에 걸려있는 '지리산 천은사'는
원교 이광사의 필체입니다.
천은사의 옛 이름은 '감로사'입니다.
'감로(甘露)' 라는 이름에 어울릴만큼 달고
청량한 샘이 절 마당에 있었다고 합니다.
감로사라는 이름으로
800여년 내려오던 유서깊던 절이
숙종 때 중창하면서
이름이 천은사로 바뀌었습니다.
사연인즉,
감로샘에 커다란 구렁이가
자주 출몰해서 사람들을 놀래키자
한 스님이 구렁이를 잡아 죽였답니다.
이날부터 감로샘이
말라 사라져,
샘이 숨었다는 이름의
'천은사(泉隱寺)'로 절 이름을 바꿨습니다.
그런데, 천은사가 되면서
절에 시시때때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그러더니
영조 때인 1773년
절의 전각 모두 화재로
전소되었고,
그 이듬해 다시 짓기
시작했는데,
이 무렵에 원교 이광사가
일주문에 달 글씨를
써 주었다고 합니다.
물이 흐르는듯한
필체의 편액을
단 이후부터
천은사에서 화재가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글씨가 자연재해나
천지의 운행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니
놀랍고 신기합니다.
궁극의 기예를
이룬 이들은
자연과 통하고
하늘과 땅과 통하고
하늘과 땅의 신들인
천지 신명과 통한다는
믿음에서 나온
전설일 것입니다.
이런 전설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각자 알아서 할 일이지만,
저는 믿고 싶습니다.
새벽에 일주문 기둥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저 편액속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고 하니
새벽에 와서
듣고 싶습니다.
2. 수홍루
일주문을 지나면
천은사 계곡을
가로 지르는
아치형 다리 위에
'수홍루(垂虹樓)'라는
2층 누각이 있습니다.
‘무지개 다리’라는
뜻의 '홍교'에 지은
누각이라 무지개를
드리웠다는 뜻으로
‘수홍루’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천은사의 전각에
붙은 편액 글씨는
원교 이광사,
창암 이삼만,
염제 송태희
세 명필이 쓴 것이
많습니다.
수홍루는
염제 송태희가 썼습니다.
수홍루는 사진찍는
명소이기도 하고,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에서는 고애심과 김희상이
이 누각 아래에서
이별을 했습니다.
‘미스터 션샤인’을
보신 분들은
그 애절한 씬을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3. 다문천왕
천왕문의 북방을 지키는
천왕인 다문천왕입니다.
고대 인도에서는
나찰과 야차를 거느린
귀신의 왕으로써
숭배받던 악신이었습니다.
악신이었던 사천왕이
부처님께 귀의해서
불법을 수호하는
외호신이 된 것인데,
악한 중생이나 귀신들을
형벌과 공포와 위엄으로써
제도하고 무찌르는 역할을
자임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절은 불보살님이
거하시는 곳이자
수미산을 중심으로 한
법계(우주)를
가상화한 만다라입니다.
전각의 불상 뒷편에
탱화를 그리고
그 탱화에 불보살님을
비롯한 아라한, 사천왕,
범천과 제석천, 용왕 등을
그려 놓은 것은 그냥
멋있으라고 한게 아니라,
이곳이 불국토이자
법계임을 표현한 것입니다.
사천왕은 불국토에 드는
불교신자와 중생들에게
부릅뜬 눈과 두려운 외형을 통해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하고
정화하라고 일깨워주는 존재입니다.
절은 물질적 현실에서는 신앙과 예배와
승려가 거주하며 모임을 갖는
수행공간이자 생활공간이지만,
내적인 상징에서는
불보살님의 법계를
현실화한 만다라이므로
천왕문을 통과할 때는
삼가함을 통해
마음을 단정히 하는
정화의 의식을 치루는
것이 좋습니다.
4. 보제루와 이삼만
천왕문을 지나면
드디어 천은사 도량이
펼쳐집니다.
좌측에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고,
우측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습니다.
뒷편에는 강당이자
행사를 치루는
'보제루'가 있고
옆으로 종각이 있습니다.
그 위로 극락보전을
중심으로 불보살님을
모신 법당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절의 중심이 되는
대웅전이나
극락전 앞의 누각은
보통 '만세루'나'보제루'의
이름을 붙이는데,
여기 천은사는
'널리 중생을 제도' 한다는
‘보제루’라는 편액을
걸고 있습니다.
편액의 글씨는
중국의 왕희지와
원교 이광사의 글씨를
보며 서체를 공부한
창암 이삼만의 글씨입니다.
창암 이삼만의
대표적인 글씨 중 하나가
천은사 보제루의
이 현판 글씨입니다.
창암은 10살 전에
글씨에 뜻을 두어
글쓰기를 시작했고,
60세가 지나
'창암체(유수체)'라는
자신의 독특한 글체를
완성했다고 합니다.
30년을 글쓰기에
매진해서
간신히 쓰고자하는
글씨를 쓰는데
성공했으며(득필),
다시 20년을 정진한
끝에서야 서체의 완성을
보았습니다.
벼루를 몇 개나 구멍내고
붓은 천 개가 닳도록
연습했다는 상상초월의
지독한 연습벌레인데도
무려 50여년을
서체 외길을 통해
마음을 담는데
도달했다는 것입니다.
끝없는 노력을 통해
서체를 마음에 담는데
성공했다니
부처님 최후의 유훈인
게으름 없는
정진의 가르침을
되새기게 됩니다.
5. 극락보전
천은사의 중심되는 건물은
아미타 부처님을 모신
극락보전입니다.
아미타 부처님과
관세음, 대세지 양보살님께서
자비롭게 맞이해 주십니다.
지리산의 기운 가득한
천은사 극락보전에서
불보살님께 인사드리고
염불기도 올리면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극락보전' 편액은
원교 이광사의
글씨입니다.
날렵하면서도
편안한 글씨체입니다.
원교 이광사는
소론 출신의 잘 나가던
집안 출신이었습니다.
그러나, 당파 싸움의
희생양이 되어
힘든 귀양살이를
수십년 보내는
고통의 세월 속에
‘동국진체(東國眞體)’라는
자신의 글씨 세계를
완성했습니다.
원교 이광사는
글씨의 대가이면서
양명학의 대가이기도
합니다.
성리학에 염증이 난
조선의 소수 유학자들이
꾸준히 연구했고,
원교는 조선 양명학의
거두인 정제두와 그의
문하생인 백하 윤순에게서
양명학과 글씨를 배웠습니다.
창암이 글씨의
한 길만을 걸었다면,
원교는 사상과 글씨를
겸비한 대가였습니다.
6. 명부전
극락보전 옆에
지장보살님을 모신
명부전이 있는데,
명부전 편액도
원교 이광사의 글씨입니다.
저승 사자가
영가를 데리고 가는 듯한
재미있는 모양새를
하고 있어
유심히 바라보게 됩니다.
7. 성적문
극락보전 우측으로
살짝 틀어 들어가면
담장이 나오고
'성적문(惺寂門)' 이라고
적힌 문이 있습니다.
마음이 깨어있는 가운데
고요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문을 지나면
'방장 선원'이 있는데
현재는 선방이 아니라
템플스테이 건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천은사는
지리산 자락의
맑은 기운 속에
넓직한 마당의
극락보전이 있어
염불 기도하면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는 도량입니다.
아울러 한 시대에
서체의 완성을 위해
정진하며
자신의 글씨 세계를 완성한
선지식인 원교와 창암의
끝없는 정진의 세계를
느끼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도량이기도 합니다.
지리산의 기운 속에
포근한 아미타 부처님,
그리고 멋진 글씨,
멋진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도량이 바로 천은사입니다.
<유튜브 극락회상 - 구례 천은사>
https://youtu.be/o3ksp21_Hr4?si=HzuXuOJgWzK8p5t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