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인제 백담사>
1. 백담사와 설악산
인제 설악산 백담사.
대학 수학여행 때
처음 백담사에 갔습니다.
강원도 인제 산골을 넘어
군인들 검문을 받으며 용대리에서
백담사, 봉정암을 지나 설악의 최고봉인
대청봉에 섰던 즐거운 추억이 있습니다.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교통이 참 좋아졌습니다.
내설악 입구에 있는 백담사.
주차장이 있는 용대리에서 백담사까지
7km를 걸어 올라가든, 마을 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합니다.
백담사(百潭寺)는
‘내설악 100개의 계곡 웅덩이를 지나 있는 절’이라는 뜻입니다.
그만큼 심산유곡에 있는 도량이라는 뜻입니다.
꼬불꼬불 계곡길을 올라가야 하지만,
백담사에 올라 내설악을 바라보면
정말 잘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백담사는 신라 진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외설악 쪽의 한계리에 ‘한계사’라는
이름으로 처음 창건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거듭된 화재와 소실로 중수와 옮겨 짓기를 거듭해
지금의 백담사에 이르렀다 합니다.
사찰명이 백담사인 것도
사찰의 잦은 화재와 관계가 있다고 보여 집니다.
2. 금강문
백담사는 일제시대 민족 시인이자 대선사이신
만해 한용운 님의 출가 도량입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갔다’는
<님의 침묵>의 시 한구절이 생각나는 설악에
둘러싸인 멋진 도량이 백담사입니다.
백담사 들어가는 다리를 건너면
제일 먼저 금강문이 나옵니다.
금강문은 입을 벌린 ‘옴 금강’과 입을 닫은 ‘훔 금강’,
두 분의 금강 역사가 도량을 지키고 계십니다.
이 두 분은 그 힘이 엄청나서 악귀를 막아내어
부처님 도량을 지키는 특별한 수호신입니다.
그리고, 사자를 타고 있는 문수 동자와
코끼리를 타고 있는 보현 동자가
함께 절 입구를 지키고 있습니다.
어린 동자의 모습은
순수한 마음 상태를 상징하며,
순수한 마음으로 사자와 같은 지혜와
코끼리와 같은 실천을 닦아나가라는 의미입니다.
금강문을 통과하면 좌우로
화엄당과 법화당을 거느린 정갈한 극락보전이 들어옵니다.
화엄경과 법화경은 대승 불교의 가장 중심되는 두 경전으로
화엄당과 법화당에서 대승의 불법을 공부하라는 전각입니다.
3. 극락전과 나한전
극락전의 아미타 부처님은
조선 후기 영조 때 조성되었으며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인자한 모습으로 그 앞에서 예배드리면
마음이 포근해집니다.
지금의 백담사는 관광객이 많이 붐벼
예전의 조용한 산사의 모습은 많이 퇴색했습니다.
예전에는 설악의 청정한 기운 속에 세속을 떠나서
극락왕생을 위한 염불 기도에
집중하기 좋은 도량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연이 되면 인적이 드문 아침이나 저녁에
차분히 염불 기도드리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극락전 옆에는 ‘나한전’이 있습니다.
나한은 ‘아라한’의 준말입니다.
아라한은 모든 번뇌의 먼지와 때에서
벗어난 누진통을 얻은 수행자입니다.
탐욕, 분노, 불안, 회의 등의 모든 번뇌를
소멸한 청정한 누진통을 바탕으로
중생들에게 유익을 주는 불교 신앙의 대상입니다.
백담사 나한전에는 각기 다른 포즈와 표정의
500분의 아라한이 계시고,
특색 있는 오백나한도가 있습니다.
4. 만해 한용운
나한전을 지나면
만해 한용운 선사의 흉상이 있습니다.
흉상에는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라는
만해의 시의 한 구절이 있습니다.
'기룬'이란 말은 ‘그리운’, ‘사랑스러운’,
‘애틋한’ 이라는 뜻의 옛말입니다.
즉, 내가 애틋해하고,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존재는 다 '님'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마음 속에는 기룬 님이 있습니까?
대승 불교는 자신이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부처님에 대한 공경과 헌신,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자비와 사랑의 불교라고 생각합니다.
즉, 기룬 님을 향한 사랑의 불교가
대승 불교라고 생각합니다.
만해 기념관에 들어가면
"인도에 간디가 있다면
조선에 만해가 있다"는 서예 글씨가 있습니다.
만해의 행적에 대한 여러 사진들과
글들이 잘 전시되어 있습니다.
독립선언 33인의 대표로서 3년간
형무소 생활을 마치고 나온 다음에
"감옥 속에서 극락을 구하라"는
만해의 옹골찬 신문 기사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만해는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고
백담사에서 출가했습니다.
백담사의 본사였던 건봉사에 들여온
중국 개화 서적을 읽고
세계 변화에 눈뜨려고 세계 여행을 계획했습니다.
그래서, 만주로 갔다가 일본 첩자로
오인받고 총을 맞기도 했습니다.
만해는 귀국한 후 백담사에 머물면서
당시 퇴락한 불교를 진보적으로 개혁하자는
<조선 불교 유신론>를 집필하였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일제의 탄압 속에 굴하지 않고
호연지기의 힘찬 기상으로
한 생을 사신 투사이자 시인입니다.
서울에서 활동하시다 심신의 안식처로 수행하고
시를 쓰던 곳이 설악산이었는데,
설악산에서 참선하며 깨달음을 얻었다는
오도송이 남아 있습니다.
남아도처시고향(男兒到處是故鄕)
기인장재객수중(幾人長在客愁中)
일성갈파삼천계(一聲喝破三千界)
설리도화편편홍(雪裏桃花片片紅)
사나이 가는 곳 어디나 고향인데,
몇 사람이나 오래도록 나그네로 지냈는가.
한 소리로 온 우주를 갈파하니,
눈 속에 복숭아 꽃 하늘하늘 붉어라.
이러한 깨달음이 있으니
불의에 굴복하지 않고
올곧은 만해의 길을 걸었다고 생각합니다.
극락 왕생을 염원하는 우리들이
현생의 이 삶을 어떤 가치 속에 살아야 하는지
만해를 보면서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도량이
백담사라고 생각합니다.
<유튜브 극락회상 - 인제 설악산 백담사>
https://youtu.be/q66CPvH4oLw?si=9_KwFUQIUto4Bx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