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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금강경(26) 제8 의법출생분(依法出生分) 3 - 불법

by 아미타온 2024. 3. 21.

< 금강경(26) 제8 의법출생분(依法出生分) 3 - 불법  >

 

<익산 미륵사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다.

어떤 사람이 이러한 가르침을 믿고 실천하며,

단지 네 구절만이라도 사람들에게 설명해준다면,

이러한 공덕으로 얻는 공덕과 즐거움은 

세상의 칠보를 보시하여 얻는 것보다 더 클 것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모든 부처님과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깨달음의 법은

이러한 가르침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니라.

 

 

 

1. 설산 동자 이야기

 

이 대목은 불법(佛法)의 진리에

목마른 사람들을 위한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교와 처음 접했을 때 가장 감동스러웠던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설산 동자" 이야기였습니다.

 

설산 동자는 법 한 구절을 듣기 위해 나찰에게

자신의 몸을 던질 정도로 진리의 가르침에 간절히 목말라 있었습니다.

 

왜 공부가 더딜까?

그것은 바로 불법의 진리에 목말라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법에 간절히 목말라 있지 않기 때문에

법을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좋은 공부 인연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각성으로 연결시키지 못하고 헛되이 날려 보냅니다. 

 

 

2. 방거사 이야기

 

중국에 "방거사"라는 재가 거사가 계셨습니다.

스님이 아니라 거사로서 깨달음을 얻은 수행자였습니다.

 

방거사 말씀 중에 "세상 사람들은 진귀한 보물을 귀하게 여기지만,

나는 나의 밝은 마음을 가장 소중히 여긴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 말씀이 크게 와 닿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이 말씀이 마음에 많이 와 닿습니다.

 

내가 여러 가지 세속적인 가치나 부귀 영화보다

나와 주변인들의 밝고 착한 마음을 소중히 여길 수 있을 때

금강경 한 구절을 보시하는 것이 칠보를 보시하는 공덕보다

더 크다는 부처님 말씀을 납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나의 마음을 밝힐 수 있는 진리의 말씀 한 구절을

이 세상 그 어떤 진귀한 보물보다 소중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3. 보물

 

우리는 스스로에게 자주 물어봐야 합니다.

 

나는 무엇을 나의 보물로 삼고 살아가는가?

그 보물을 주변 사람들과 같이 나누며 살고 싶은가?

 

'물고기를 주는 것보다 물고기 낚는 법을 가르쳐 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금강경>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물고기 낚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마음 가짐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진리를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모든 부처님과 부처님의 깨달음이 모두 <금강경>의

가르침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금강경>의 가르침을 믿고 실천하려는 마음을 낸다면

집착과 억지와 욕심에서 벗어나 보살행을 갈수 있으므로

그 공덕은 참으로 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보리야, 불법(佛法)이라고 하는 것은 불법이 아닌 것이다.

 

4. 편협성

 

우리는 열린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닫힌 마음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모든 다툼은 닫힌 마음으로

나의 주의 주장만 고집하는

진리에 대한 이기적인 편협성이 원인이 되어 일어납니다.

 

불법이라고 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이 말씀은 불법이 아닌 것 속에서도

불법을 찾을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지라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세속의 번뇌 속에서 깨달음의 의미를 찾고 살아가는

강건한 보살의 삶을 "번뇌즉보리(깨달음)"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불법'을 '불법'이라는 새장 속의 새처럼 가두지 말고

새장을 열어 넓은 하늘로 날려보내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교라는 새가 세상과 문을 닫고

불교라는 틀 속에서 살아갈 것이 아니라,

세상과 부딪히고 타종교와 소통하며 살아가는 가운데

더욱 다채롭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 불교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제 불문을 열고 세상과 호흡하며 열린 마음으로

살아 가라는 부처님의 말씀으로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