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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법구경(38) 파세다닛왕의 아들 위두다바와 석가족의 멸망(1)

by 아미타온 2024. 3. 25.

<법구경(38) 파세다닛왕의 아들 위두다바와 석가족의 멸망(1)>

 

<순천 선암사>

 

부처님께서는 기원정사에 계시던 어느 때,

코살라 국왕 파세나딧의 아들인 위두다바와 관련하여 게송 47번을 설법하셨다.

 

어느 날 파세다딧 왕은 사왓티의 자기 왕궁의

위층 창가에 앉아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왕은 수 천 명의 비구들이 탁발을 하기 위해 거리를 지나

아나타삔디까, 쫄라아나타삔디까 위사카,

그리고 숩빠와사의 집으로 가는 것을 보고 시종에게 물었다.

 

“저 비구들은 어느 집으로 탁발들을 가시는 건가?”

 

시종이 대답했다.

 

“대왕이시여,

저 수천의 비구들은 매일같이 음식이나 약품을 공급받기 위해서

아나타삔디까, 쫄라아나타삔디까 위사카, 그리고 숩빠와사의 집으로 가십니다.”

 

이런 대답을 들은 파세나딧 왕은 자기도 그들과 같이

비구 승가를 위해서 무언가 봉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곧 수도원으로 부처님을 찾아 뵙고

 비구들을 초청하여 공양을 올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비구들을 초청하게 된 왕은

이레 동안 부처님께 자신이 직접 공양을 올렸고,

마지막 날에 이르러 부처님께 이렇게 사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이후부터는 매일같이 제 왕궁에 오시어 공양을 받아 주십시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대답하시었다.

 

“대왕이여, 여래는 한 곳에서 규칙적으로 공양을 받는 법이 아니오.

왜냐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여래에게 공양을 올리고 싶어 하기 때문이오.

여래는 그들의 집을 골고루 방문하여 그들의 정성을 받아 주지 않으면 안 되오.”

 

“부처님이시여, 정 그러시다면 한 분의 훌륭한 스님만이라도

규칙적으로 저의 왕궁으로 탁발 오시도록 해 주시면 어떻습니까?”

 

그런 왕의 청을 받아들여 부처님께서는

부처님의 비서인 아난다 비구를 왕궁에서 공양받는 비구로 정하셨다.

 

그래서 아난다 비구가 중심이 된 일군의 비구들은

매일같이 왕궁에가서 공양을 받게 되었다.

 

왕은 비구들이 도착하면 자기가 직접 발우를 받아 들고

음식을 담아 비구에게 건네주곤 했다.

 

왕은 그처럼 자기가 직접 비구들을 공양하면서,

시종들은 다만 자기를 돕는데 그치도록 했다.

 

<선암사>

 

이같이 공양을 베풀던 도중 여드레 째가 되던 날

왕은 정신이 약간 흐트러져서 직접 공양 올리던 일을 소홀히 했다.

 

그러자 비구들 간에 이런 말이 돌았다.

 

“이제 왕궁에서는 아무도 우리에게 앉을 자리를 권해 주지 않는다.

혹시 왕이 챙겨서 명령을 내리면 모를까 왕궁 사람들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기다리지 말고 다른 곳으로 탁발을 가도록 하자.”

 

그래서 비구들은 다른 곳으로 다 떠나고 

책임이 있는 아난다 비구만 혼자서 왕궁에 가 음식을 받아오곤 했다.

 

그래서 왕은 많은 비구들을 공양하지 못했다.

 

부처님의 제자들 중에서도 특별한 제자가 있다.

아난다 비구도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

 

그들 특별한 인연을 가진 제자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법을 수호하고 비구 상가를 지키는 신심 깊은 사람들이다.

 

이는 비구 상수 제자인 사리뿟따와 마하 목갈라나  비구나

비구니 상수 제자인 케마(Khema)와 웁빠라완나(Uppalauna)테라,

남자 재가 신자로서 으뜸인 찟따(Gitta)와 핫타까 알라와까(Hatthaka Alauaka),

그리고 여자 재가 신자로써 으뜸인 난다(Nanda)의 어머니

웰루깐타끼(Uelukanthak)와 쿠주따라(Khujjutara)를 말한다.

 

이들 여덟 사람은 과거 전생부터 큰 서원을 세우고

열 가지 공덕을 성취하여 금생에 부처님의 으뜸가는 제자가 된 것이다.

 

아난다 비구도 이들에 못지 않아서

과거 십만 겁 동안을 큰 서원과 열 가지 공덕을 성취해 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언제나 초인적인 인내와 으뜸가는 지혜로써

부처님의 정법을 지키며 책임있는 역할을 수행하게 마련이었다.

 

비구들이 왕궁을 떠날 시간이 되어 음식을 살펴 본 빠세다닉 왕은

많은 음식이 건드려지지도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시종에게 물었다.

 

“비구 존자들은 오늘도 오시지 않았느냐?”

 

“예, 오직 아난다 비구만이 오셨을 뿐입니다.”

 

“비구들이 나에게 큰 손해만 끼치는구나!”

 

<선암사 원통전 관세음보살님>

 

왕은 이같이 화를 내고

는 곧 부처님을 찾아뵙고 자기의 심정을 사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오늘도 오백 명의 비구들이 드실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음식은 아무도 손대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오직 아난다 비구만이 오셨을 뿐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된 까닭입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여래의 제자들에 대왕에게 가지 않은 데에는 반드시 까닭이 있을 것이오.”

 

부처님께서는 곧 비구들을 불러서 수행하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는 공양을 받고,

어떤 경우에는 공양을 받지 않아야 하는지,

그 바른 태도에 대해 이렇게 설법하셨다.

 

“비구들이여,

어떤 집에 아홉 가지의 결함이 있으면 비구들은 그 집에 가서는 안 되며,

만일 부득이하여 방문했을 때에는 그 집에 들어가 앉아서는 안 되느니라.

무엇이 그 아홉 가지인가?

1) 가족이 모두 일어나 반갑게 맞이하지 않을 때,

2) 가족이 모두 반갑게 인사하지 않을 때,

3) 그들이 기쁜 마음으로 자리에 앉지 않을 때,

4) 그들이 소유한 것을 감출 때,

5) 많은 음식이 있으면서도 아끼며 조금만 공양할 때,

6) 좋은 음식이 있으면서도 나쁜 음식을 공양할 때,

7) 공양 올리는 마음이 존경스럽지 않고 불경스러울 때,

8) 그들이 앉아서 여래의 가르침을 듣고자 청하지 않을 때,

9) 그들이 기쁘고 즐겁지 않은 목소리로 말할 때 등이니라.

 

비구들이여, 그런 집에는 가지 말아야 하며 그럴 책임도 없느니라.

또 행여 그런 집을 방문할 때에는 그 집 안에 들어가 앉아야 할 책임이 없느니라.

 

비구들이여, 그러나 어떤 집에 아홉 가지 좋은 태도가 있으면

그 집은 비구의 방문을 받을 자격이 있느니라.

 

그런 집을 방문하지 않았다면 방문하도록 해야 하며,

만일 방문했다면 마땅히 집안에 들어가 앉아야 하느니라.

 

그렇다면 그 아홉이란 무엇인가?

1) 비구가 그 집을 방문하였을 때 가족 모두가 반갑게 맞이하며,

2) 그들이 기쁜 마음으로 인사하고,

3) 기쁜 마음으로 자리에 앉고,

4) 가진 것을 감추지 않으며,

5) 충분한 음식을 준비하여 다 공양하고,

6) 좋은 음식을 공양하며,

7) 불경스럽지 않고 존경하는 태도를 보이며,

8) 공양이 끝난 다음에는 여래의 가르침을 청하고,

9) 그들이 즐겁고 기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니라.”

 

<선암사 선암매>

 

부처님의 이 같은 설법을 듣고 파세니딧 왕은 스스로 생각했다.

 

‘내가 비구들의 신임을 다시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도 부처님의 혈족을 왕실에 두어

비구들에게 공양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래서 왕은 왕궁으로 돌아오자 곧 사신을 카필라 성에 보내어

석가족의 공주를 자기 왕비로 삼겠다고 제의했다.

 

이 요청을 받은 석가 족 사람들은 회의를 열고

마하나마 왕(정확히는 왕족)과 노예 사이에 태어난,

아주 예쁜 와사바캇띠야를 공주로 만들어서 코살라국의 파세나딧 왕에게 보내기로 결정했다.

 

빠세다닉 왕의 사신이 돌아와서 왕의 청을 사끼야 사람들이 받아들였다고 보고하자

왕은 공주가 누구의 딸이냐고 물었고, 사신은 사끼야 족의 마하나마 왕의 딸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왕은 매우 흡족해 했다.

 

왕은 즉시 그녀를 왕비로 책봉하고

오백 명의 궁녀들로 하여금 왕비를 보호하도록 했다.

 

그리고, 왕비는 곧 아들을 낳았는데,

왕은 아들의 이름을 석가족에서 받아와 "위두다바(Vidudadha)"라고 지었다.

 

<선암사 부도탑비>

 

위두다바는 그렇게 왕자가 되었는데, 

그가 일곱 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어머니, 저에게는 왜 외가에서 아무런 선물이 오지 않나요?

다른 왕비 슬하에서 난 왕자들은 다들 외가에서

선물로 장난감을 보내 준다든지 하는데 말예요.

어머니에게는 아버지나 어머니가 안 계신가요?”

 

이에 당황한 왕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건 네 외할아버님이 석가족 왕족으로서

여기서 너무 먼 데 사시기 때문이란다.”

 

그러자 위두다바는 자기가 외가에 가겠다고 말했다.

 

위두다바가 외가에 가겠다는 마음은

끈질긴 것이어서 왕비는 더 이상 막지 못하고,

그가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 그를 석가 족들에게 보내게 되었다.

 

그 전에 왕비는 따로 석가 족들에게 편지를 띄웠다.

 

그 편지에다 왕비는 말하기를,

자기는 지금 코살라 국의 왕비가 되어 매우 행복하게 살고 있으며,

이제 아들이 외가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아들에게 왕자에 합당한 대우를 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석가 족들은 회의를 열었고,

노예의 아들과 상대하지 않게 하려고 왕자 위두다바를 객사에 쉬게 하는 한편 

자기네의 나이 어린 공주나 왕자들은 모두 지방으로 여행을 보냈다.

 

그래서 위두다바는 석가 족의 어른들에게만 인사를 하게 되었다.

그는 어른들에게 여기에는 어린 왕자나 공주가 없느냐고 물었고,

석가 족의 어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모두 지방으로 여행을 떠났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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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승선교>

 

1. 석가족의 멸망의 배경 스토리

 

부처님의 모국인 석가족 멸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자존심이 강했던 석가족이 천한 신분의 여인을 위장하여

코살라국에 보낸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왜 코살라국에서 석가족의 여인을 요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배경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이번 법구경 편은 그 배경부터 상세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인과 연이 만나 또 다른 과를 낳고,

그 과가 다시 인이 되고 다른 연을 만나 또다른 과를 낳는

첩첩히 이어지는 인과의 과보와 연기의 흐름을

깊이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시작은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기원정사를 부처님께 기부했던 아나타판다카 장자나

녹자모 정사를 부처님께 기부했던 위사까 부인과 같은 이들은

수행터만 부처님께 보시한 것이 아니라

많은 수행자 대중들의 음식과 약품까지 책임지고 공양했던 분이었습니다.

 

이 분들은 부처님 당대에 출가 교단의 물적 토대를 보시했던

재가 보살의 삶을 사셨던 분이었습니다.

 

이 분들이 부처님을 비롯한 많은 수행자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을 보았던 코살라국왕이

왕인 자신도 부처님과 승가에 공양을 올리고 싶은 마음을 내고

부처님을 초청하여 공양을 베풀었습니다.

 

왕은 매일 부처님이 왕궁에 오셔서 공양을 받아가기를 원했지만,

부처님은 다른 많은 이들에게 골고루 공양을 올릴 기회를 주고

가르침을 펴셔야 했기 때문에 거절하셨습니다.

 

부처님은 대신 아난 존자를 비롯한 여러 비구들이

왕궁에서 공양을 받도록 하여 왕의 호의에 답하셨습니다.

 

왕은 처음에는 자신이 직접 정성을 다해 공양을 올렸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흘해졌습니다.

 

그래서, 비구들은 왕의 이러한 소흘한 공양에

서운해하며 왕궁으로 가지 않았고,

오직 사려 깊은 아난 존자만이

그래도 계속 왕궁을 찾아 공양을 계속 받았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왕은 자신이 공양을 올리는 마음의

순수함과 정성의 부족은 생각하지 않고,

많은 비구들이 왕궁을 찾지 않는 것에 대해 

왕의 권위의 손상이라고 생각하고 괘심했던 모양입니다.

 

보시라는 행위를 하지만,

그 행위가 참 빈틈이 많았던 보시였던 것입니다.

 

<선암사 강선루>

 

2. 공양의 9가지 법도와 품위

 

여기에 대해 부처님은 공양을 주고 받는 바른 법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때는

가르침을 줄 책임이 없는 것처럼

공양을 올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

공양을 받을 책임이 없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9가지를 구체적으로 말씀을 하셨다.

 

반갑게 맞이하고,

기쁜 마음으로 인사하고,

즐겁게 자리를 권하고,

가진 것을 숨기지 말고,

아낌없이 충분한 양을 공양하고,

질좋은 음식을 공양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공양하고,

공양한 후 가르침을 청하고, 

기쁘고 예의바른 태도로 말하기가 바로 그 9가지입니다.

 

즉, 공양을 올리는 사람의 마음과 말과 행동이

삼위 일체가 되어 품위가 있을 때

이러한 공양이야말로 공양을 하는 사람이나

공양을 받는 사람이나 모두 빛나는 공양이라는 말씀입니다.

 

공양이라는 행위가 무주상 공양이 되어

참된 공덕이 될려면 구체적으로 이 9가지를 잘 기억해야할 것 같습니다.

 

<금강경>에서 무주상 보시를 이야기합니다.

 

어떻게 보시하는 것이

상에 걸리지 않고 보시하는 것일까요?

 

부처님의 공양에 대한 법문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주상 보시는 품위 있는 보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품위란 마음과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이 세 가지가 잘 어울어져 일체가 된 것을 말합니다.

 

마음으로는 베풀려는 마음을 내면서

말로는 퉁명스럽게 내뱉는다든가,

좋은 물건을 선물해 주면서도

속이 쓰리고 아까운 마음이 얼굴에 가득하다면 

보시를 하는 사람이나 보시를 받는 사람이나

이 보시를 통해 행복과 품위를 느낄 수가 있을까요?

 

무주상 보시는 베품을 통해 느껴지는

행복한 마음과 품위 있는 행동,

사려 깊고 배려 있는 말이 어울어져

베푸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

모두 행복과 품위를 느낄 수 있는 참다운 명품 보시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9가지 법도 있는 공양에 대해 깊이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도 있는 공양에 대한 설법에 감동받은

파세나딧 왕은 비구들의 신임을 다시 받고

부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려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부처님의 혈족인 석가족의 여인을 왕비로 받아들이고 싶었습니다.

 

의도는 좋았으나,

이것이 결국은 새로운 불행의 인으로 작용했습니다.

 

파세나딕 왕이 자신의 이러한 의도를

석가족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자존심이 아주 강했던 석가족은 

비록 강대국이지만 자신의 고귀한 혈통의 여인을 시집보내는 것을

마치 고려 시대 때 원나라에 공녀를 보내는 것과 같은 엄청난 모욕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파세나딧왕을 속이고

당시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천한 계급의 여인을 위장해서 보냈습니다.

 

이 그릇된 결정이 몇 십년 후에는 국가가 멸망하는

대재앙의 불씨가 될 것이라는 것은 그때는 몰랐을 것입니다.

 

좋은 의도의 인이라도 잘못된 연을 만나게 되면

그 결과는 불행한 과보로 올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뒤에 이어질 석가족 멸망이 주는 인과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