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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법구경(40) 파세다닛왕의 아들 위두다바와 석가족의 멸망(3)

by 아미타온 2024. 3. 31.

<법구경(40) 파세다닛왕의 아들 위두다바와 석가족의 멸망(3)>

 

<강화도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땅>

 


한편, 파세나딧 왕은 죽은 반둘라의 후임에

반둘라의 조카인 디가까리야나를 임명했다.


그런데, 의협심이 강했던 그는 왕에게

아무 죄도 없는 삼촌을 죽인 문제를 준엄하게 따졌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파세나딧 왕은 후회스럽고 고통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왕은 이제 마음이 평화롭지 못했고, 통치의 기쁨도 느끼지 못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가까운 곳에 있는 작은 마을 울룸빠에 계시었는데,
국왕은 부처님을 뵙기 위해 그곳으로 가서 

부처님이 계신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데를 잡아 임시 천막을 쳤다.

 

그런 다음 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다섯 가지 표지(왕관, 옥쇄, 왕홀, 반지, 망토)를
군사령관 디가까라야나에게 맡겨 두고 몇 사람의 수행원만을 거느린 채 부처님을 찾아갔다.

국왕이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떠나는 것을 본 

군사령관 디가까라야나는 즉석에서 결단을 내렸다.

 

그는 왕자 위두다바에게 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다섯 가지 표지를 주어 왕으로 추대한 뒤
빠세다닉 왕을 위해서는 말 한 마리와 시녀 한 사람만을 남겨둔 채

사왓티로 돌아와 버렸다.

한편 파세나딧 왕은 부처님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설법을 들은 다음 밖으로 나와 보니 단지 말 한 필과 시녀 한 사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는 매우 놀라 남아 있는 시녀에게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시녀가 모든 사실을 고했다.

파세나딧 왕은 새로 왕이 된 위두다바를 붙잡기 위해서는
마가다 국의 젊은 조카 왕에게 힘을 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마가다 국에는 파세나딧 왕의 여동생이 시집 갔기 때문에

지금의 아자투삿투왕은 그의 조카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도움을 청하려고 시녀와 함께 급히 말을 달려 라자가하에 도착했다.

그러나 날은 이미 저물어 성문은 굳게 닫혀 있었기 때문에

파세나딧 왕은 성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왕은 늙은데다가 더위와 피로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그리하여 늙은 왕은 허술한 휴게소에서 누운 채로 죽고 말았다.

 

다음날이 되어 시녀는 왕이 죽은 것을 알고 통곡했다.
그리고, 파세나딧 왕이 죽었다는 사실은 위두다바에게도 전해졌다.

 

위두다바 왕은 부왕의 장례를 치렀다.

 

<바다 건너 북한 개성 송악산>

 


이렇게 왕이 된 위두다바는 지난날 석가족에게서 당한 모욕을 상기했다.


그는 곧 군대를 일으켜 석가 족을 멸망시키려고 진군해 나갔다.
이날 새벽 부처님께서는 신통력으로써 당신의 모국인

석가족이 파멸의 위기를 맞게 된 것을 아셨다.
부처님께서는 석가족을 보호해야겠다고 생각하셨다.

 

그래서 탁발을 하시고 응향각에 돌아오신 다음 

사자와 같은 위용으로 오른편으로 누우셔서 저녁 해를 보내셨고 

석양 무렵에 허공을 날아 카필라 성 근처로 가셨다.

부처님께서는 그늘이 아주 짧은 나무 밑에 앉으셨다.
그때 그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군대를 주둔하고 있던
위두다바는 아주 큰 반얀나무 그늘 아래 서 있다가 부처님을 보았다.
그는 곧 가까이에 다가와 부처님께 머리를 땅에 대고 인사를 올린 뒤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이 더운 날씨에 왜 이렇게 그늘이 엷은 곳에 앉아 계십니까?
저쪽에 그늘이 좋은 반얀나무가 있으니 그곳으로 가시어 앉으시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여래에 대해 상관하지 마시오.

내 종족의 그늘이 나를 시원하게 해주고 있소."


위두다바는 곧 부처님의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짐작하였다.


'부처님께서 이곳에 계시는 것은 석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생각한 그는 곧 부처님께 머리를 조아려 

인사를 드린 다음 군대를 이끌고 사왓티로 떠났다.


이에 부처님께서도 허공을 날아 제따와나 수도원으로 돌아오셨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얼마 지나서 위두다바 왕은
다시 석가 족에 대한 분노를 일으켜 두 번째로 군대를 이끌고 진격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도 부처님은 같은 장소에 앉으셔서

위두다바를 제지하시었기 때문에
위두다바는 거의 카필라 성 국경까지 갔다가 군대를 철수할 수 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그는 다시 군대를 이끌고
석가족을 치러 갔고, 이때에도 부처님이 이를 막아내셨다.


부처님께서는 이 같은 방법으로 당신의 모국을 세 번이나 지키셨으나, 

사실은 이 또한 임시적인 것에 불과했다.

네 번째로 위두다바가 군대를 이끌고 석가 족을 치러 가자 부처님께서는
석가족의 업을 읽으시고 더 이상 그들을 보호하지 않고 그냥 수도원에 남아 계셨다.


꼬살라의 위두다바는 국경에 이르러 부처님이 보이지 않자 

주저하지 않고 카필라 성으로 진격해 나갔다.

 

<그리운 금강산 노래비 - 강화 통일 전망대>



위두다바는 직접 군대를 지휘하여 석가 족을 공격했다.
이때 석가족 중에서도 정각자 부처님의 친족들은
비록 자기들이 희생되더라도 적을 죽이지는 않으리라는 결심을 다지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석가족은 매우 능숙한 전술가들이고 또 훈련이 잘 된 사람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활을  쏘는 데 있어서 어떤 종족보다도 우수하다.
특히 우리의 긴 활은 매우 평판이 높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해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솜씨만을 보일 뿐 사람은 죽이지 말자."

그래서 그들의 창이나 화살은 사람은 다치지 않고 

위두다바의 병사들 사이로 날아가기만 했다.
위두다바도 곧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편, 위두다바는 병사들에게 석가 족은 모두 죽이되
자신의 외할아버지가 되는 마하나마 왕을 따르는 자들은 살려 주라고 지시해 두었다.


그래서 힘이 부족하고 숫자도 적은 석가 족은 마침내 다 멸망하였고,
단지 마하나마 왕을 따르거나 석가 족이 아니라고 자기 출신을 부정하는 자만이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석가족들은 여간해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그들 중 일부는 살기 위해서 풀잎을 뜯어 입게 물거나 갈대를 꺾어 입에 물고 있었다.

 

그것은 병사들이 그들에게 "너희는 석가족이냐?" 하고 물으면
그들은 "아니요, 우리는 풀잎이요." 라든가, 

"아니요. 우리는 갈대잎이요." 라고 대답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방법으로 그들은 살아날 수 있었는데,
이후부터 그들은 「풀잎 석가 족」,「갈대잎 석가 족」이라고 불리었다.

 

그런 풀잎과 갈대잎 석가족을 제외한 모든 석가족은
비록 젖먹이일지라도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하고 다 죽임을 당했다.

 

그래서 위두다바는 결국 자기가 어릴 때 앉았던 자리를
(우유와 물로 바닥을 씻으며 궁녀가 자신을 노예의 자식이라고 비웃던 자리) 
맹세했던 말 그대로 석가 족의 피로 씻을 수 있었다.

그렇게 복수를 한 다음 그는 군대를 철수시켰다.

 

<강화 통일 전망대 망배단>


위두다바는 군대를 철수하는 도중 날이 저물자

아찌라와띠 강변에 천막을 치고 하룻밤 야영을 하기로 했다.


그때 위두다바를 비롯하여 전생에 악업을 짓고

사끼야 족을 직접 살해한 병사들은 강둑에 천막을 쳤고,
전생과 금생에 악업을 짓지 않은 병사들은 강가 모래밭에 천막을 쳤다.


그런데 밤이 되자 이상스럽게도 많은 개미들이 떼를 지어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병사들은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천막을 옮기게 되었다.


그래서 강둑에서 자던 병사들이 강가 모래밭으로 잠자리를 옮기는 대신
강가 모래밭에서 자던 병사들은 잠자리를 강둑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렇게 자리를 옮기고 나서 개미들의 등살은 좀 덜해져서 그들은 잠이 들었다.
그런데 밤중에 강의 상류에서 큰 폭우가 내려 순식간에 강물이 불었다.


그리하여 강가 모래밭에서 잠자던 수천 명의 병사들과 위두다바는
급류에 휩쓸려가 버림으로써 물고기와 거북이의 밥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당신의 출신 석가 종족이 멸망한 것과,
위두다바를 비롯한 많은 병사들이 물에 휩쓸려 가버린

두 비참한 소식을 전해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석가 족들은 과거 전생에 강물에 독약을 풀어서 

많은 고기들을 죽게 한 일이 있었느니라.
그들은 그런 집단적인 불선업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이런 불행을 당하게 되었느니라."

부처님께서는 또 말씀하시었다.


"너희들은 홍수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위두다바의 일을 계기로 다시금 느꼈으리라.
거센 홍수가 잠자는 마을을 휩쓸어 가듯이
죽음이라는 이름의 홍수 또한 감각적인

쾌락에 집착해 있는 중생들을 휩쓸어 가느니라."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아름다운 꽃을 찾아 헤매듯

마음이 감각적 쾌락에 빠져 있는 자를
죽음은 순식간에 앗아 간다.
마치 잠든 마을을 홍수가 휩쓸어 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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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통일 전망대>


1. 아픔

2011년 일본 동일본 대지진 때

큰 쓰나미가 마을을 덮치는 뉴스를 본 적이 있습니다.

 

쓰나미가 농경지를 덮치고,

마을과 사람을 덮치고,

달리는 자동차를 덮치는 모습을 보면서 
지진과 홍수와 같은 자연 재앙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부처님의 말씀처럼 뉴스를 통해 두 눈으로 생생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제 3자가 보아도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일인데,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가 살고 있는 고향이

저러한 재앙을 당하는 모습을 본다면 당사자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얼마나 안타깝고 비통하고 가슴 아픈 일이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석가족의 멸망은 부처님이 75세였을 때 일어난 불행한 사건입니다.


쓰나미로 인해 자신의 고향 마을이 대재앙을 입는 것을 목격하는 것처럼
부처님께서 태어나고 자란 국토와 종족의 사람들이 몰살을 당하는 대재앙을

지켜봐야했던 부처님의 마음의 애잔함이 어떠셨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듭니다.
 
부처님은 70세가 넘은 노구에

3번이나 그늘 없는 나무에 앉아 코살라국의 진격을 막으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이렇게 행동으로 보이시는데도

자신의 원한을 버리지 않는 고집불통 왕을 보며 
4번째는 나가시지 않고 조국의 멸망을 지켜봐야 했던

부처님의 마음은 참 아프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부처님은 탐진치에서 벗어나신 분이기 때문에
슬픔과 비탄과 고통으로 두번째 화살을 맞지는 않으시겠지만,

당신의 조국에 닥친 불행과 재앙을 바라보는 안타까움은 크셨을 것입니다.

 

<북녘땅>


 2. 인과의 준엄함


석가족의 멸망 이야기는 수많은 인연이

얽히고 섥힌 새드 앤딩 스토리입니다.


이 스토리를 통해 인과의 준엄함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악행을 행하고 자신과 남에게 고통을 주는 삶을 살면 

그에 상응하는 과보를 어떻게 받는지,
첫번째 화살을 맞아도 두번째 화살을 맞지 않으려면

어떤 인연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자각하게 합니다.
 
반두라에 대한 시기심으로 그 가족을 몰살한

파세나딧 왕은 어떤 불행한 말로를 맞이하는가요?


개인적 원한으로 석가족을 말살하는 악업을 저지른

위두다바왕이 어떠한 끔찍한 말로를 맞이하는가요?


과거생에 집단으로 독약을 풀어 고기를 잡은 악업의 과보가 
현생에서 코살라 국과의 혼인에서 비롯된 거짓된 행동이

또 다른 연이 되어 석가족은 종족 자체가 몰살하는 후폭풍을 맞습니다.


현생에서든 미래생에서든 연이 조성되면

인과의 과보를 받을수 밖에 없는 인과의 준엄함을 자각하게 합니다.
 
석가족은 코살라국과의 결혼 문제에 있어

정면 돌파하는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종족의 고귀한 공주를 주자니 자존심이 상하고
그렇다고 코살라국을 상대로 싸우자니 피해가 클 것 같고
고육지책으로 코살라 국왕의 격에 맞지 않는 여인을 거짓으로 속여 보내는
돌아가는 잘못된 선택을 통해 나중에는 상상할 수 없는 큰 재앙을 당하게 됩니다.


인과적 측면을 바라본다면 순간의 선택을 할 때 

바르게 해 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빠세나딕왕, 위두다바, 석가족에 비해

말라카 부인의 모습은 참으로 대조적입니다.


인과를 바르게 보는 눈과 인과를 수용하는 마음 자세,
자신의 마음을 챙기는 위빠사나 수행의 힘을 통해

부인은 어떠한 삶을 살아가는가요?


자신이 맞은 첫번째 화살을 맞고도

괴로움에 빠지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두번째 세번째 화살을 다른 사람에게 날리지 않고 

자신의 선에서 악업의 윤회의 흐름을 끊어 버립니다.


이고득락과 윤회에서 벗어남은

말라카 부인과 같은 지혜와 수행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다.
 
부처님의 말씀처럼 잠든 마을에 홍수가 덮쳐 온 마을을 다 휩쓸어가듯
감각적 쾌락이나 분노와 복수심, 깨어 있지 않은 그릇된 사견에 취하게 되면
죽음과 윤회의 수레바퀴는 자신을 불행의 길로 인도합니다.


오직 인과에 밝고 순간순간 깨어있는 각성을 통한

바른 선택이 이고득락의 길로 자신을 인도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