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인물사(15) - 해동화엄의 초조, 의상 대사(2) - 유학>
1. 지엄 화상과 화엄 불교
의상 대사는 중국에 와서 앓은 병이 완쾌된 후
당시 당나라 수도였던 장안으로 향했습니다.
당시 장안은 화엄, 유식, 밀교, 율종 등의
다양한 종파 불교가 꽃피우던 곳이었습니다.
의상 대사는 장안 남쪽에 있는 종남산으로 갔습니다.
종남산의 화엄 도량인 지상사에서
중국 화엄학의 대가로 중국 화엄종의 제2조인
지엄 화상의 문하에 들어가 8년간 화엄학을 공부했습니다.
지엄 화상이 제자인 의상 대사를 얼마나 아꼈는지는
<삼국유사>에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옵니다.
"중국 화엄의 대가인 지엄이 어느날 종남산에서 꿈을 꾸었다.
해동에서 큰 나무가 나타나
가지와 잎이 무성하여 중국 전체를 뒤덮고
그 위에 봉황의 집이 있어서 가지를 헤치고 올라가 보니
마니보주가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난 지엄은 그 다음날 도량을 깨끗히 청소하고 기다렸더니
신라에서 의상이 왔다고 하였다.
지엄은 의상이야말로 중국을 뒤엎을만큼
잎과 가지가 무성한 큰 나무이며,
찬란한 빛을 발할 광명의 마니보주로서 여기고
의상을 지극히 대하였다."
이렇게 종남산에 들어간 의상 대사는 당시 중국 화엄의
제1인자인 지엄을 모시고 화엄 불교를 공부하였습니다.
지엄 화상은 의상 대사를 자신의 후계자로 정하고
강의를 대신하게 할 정도였습니다.
2. 해동 화엄의 초조, 의상대사
지엄 문하에는 뛰어난 두 제자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의상 대사이고, 다른 한 사람은 법장 화상이었습니다.
의상 대사는 신라인이었고, 법장 화상은 서역인이었습니다.
지엄은 의상을 의지(義持), 법장을 문지(文持)라고 평했습니다.
법장 화상은 후일 중국 화엄종을 확립한 인물로
글에 뛰어났으므로 "문지(文持)"라고 하였습니다.
그에 비해 의상 대사는 화엄의 깊은 이치와 뜻을
마음으로 확실하게 체득하고 있었슴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상 대사의 화엄학은 한국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중국 화엄을 확립하여 후일
중국 화엄종의 제 3조로 추앙받았던 법장 화상은
자신의 저술을 신라에 보내어 사형인 의상 대사에게
검토해 줄것을 부탁할 정도였습니다.
법장 화상은 자신의 저술에 대한 검토와 함께
가르침을 청하는 정중한 글이 <삼국유사>에 실려 있습니다.
"당나라 서경 숭복사의 법장은
해동 신라의 대화엄 의상 법사께 글을 올립니다.
듣건데 법사께서는 귀국하신 후
<화엄경>을 천명하시고 진리의 세계의 무애연기를 선양하시니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후 부처님의 광명을 빛나게 하시고
진리의 수레를 굴리시는 이는 법사님뿐이십니다
...
청컨데 법사님께서는 저의 저술의 옳고 그름을 검토하여
가르침을 주신다면 그보다 더 큰 다행은 없겠습니다."
이 편지를 통해 법장이 의상을 얼마나 우러러보고 있었슴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일본 화엄종의 중흥조로 일컬어지는
명혜 상인도 의상 대사를 매우 존경하였다고 합니다.
1206년 명혜 상인이 당대 최고 화가들을 초빙하여
현재 일본의 국보로 전해지고 있는
'화엄종 조사의 그림(일명 화엄연기)'는
중국의 법장 뿐 아니라 원효, 의상, 선묘의 삶이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의상은 화엄 불교뿐 아니라,
우리가 자랑할만한
동아시아 불교 사상사에 있어서도 큰 나무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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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법성게를 통해본 의상 대사의 화엄 불교
의상 대사가 남긴 화엄 관련 저술은
흔히 법성게로 불리는 <화엄일승법계도>뿐입니다.
그러나, 고려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의상 대사가 제자들에게
화엄경을 강설한 내용을 담은
<추동기>,<도신기> 등의 저술이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문헌들은 유실되고
현재까지 남아 있는 저술은 210자의 짧은 법성게뿐입니다.
법성게는 사물을 고정된 것으로 보고
다른 사물과 분리시켜 이해하는 '망상(妄想)'을 버리고,
관계를 통해서 변화 발전하며 상호 연관되어 존재하는
사물의 본성(법성,法性)에 대해 바르게 이해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법성(법의 성품)에 대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세계를 장엄하게 발전시키는 거리낌없는 실천을 해 나갈 때
그 존재는 이미 부처와 다름없다는
"중생들의 보살행이야말로 부처로 가는 길"이라는 실천적 사상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물의 본질(법성)을 깨달으면
중생도 처음 발심을 하면(초발심시)
곧 정각을 이루어 부처와 다름없다는 혁명적인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즉, 법(法)과 부처(佛)와 중생(衆生)의 3가지에 촛점을 맞추어
법성을 바르게 깨우쳐 중생이 보살행을 통해
법계를 장엄하고 이익되게 할 때
부처의 자리에 앉게 된다는 것이 <법성게>의 핵심입니다.
<법성게>는 화엄 사상을 간결하면서도
실천 지향적으로 집약해 놓은 명게송으로 이름 높습니다.
이러한 의상의 화엄 사상과
이를 기반으로 한 실천적 삶은
신라 이후 화엄 사상을
우리 나라의 중요 불교 교학으로 자리잡게 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의상 대사를 화엄의 대가로써
존경하게 만든 중요한 측면인 것입니다.
중국 화엄의 제3조가 된 법장 화상의 편지나,
<화엄연기>을 그려 의상 대사를 존경한 일본의 명혜 화상의
그림을 보더라도 의상 대사가 얼마나 뛰어난 화엄의 대가인지 알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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