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43) 나체 수행자 빠티까 이야기>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시던 어느 때,
나체 수행자 빠티까와 관련하여 게송 50번을 설법하셨다.
사왓티에 사는 한 여인은
나형 외도(裸刑外道 : 발가벗고 생활하는 수행자 자이나교도)
니간타의 제자 빠티까를 양자로 받아들여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웃 마을에 살고 있는 여인의 친구 하나가
가끔씩 기원정사에 가서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오곤 했는데,
그녀는 그때마다 연방 감탄과 찬사를 하곤 하는 것이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 여인은 자기도 한번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는 빠티까에게 한 번 넌지시 운을 떼어 보았는데,
빠티까는 이에 반대하는 뜻을 보였다.
그 후로도 그녀는 친구로부터 계속해서
부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그때마다 빠티까에게 의견을 물어 보았었다.
그러나 빠티까의 견해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자 여인은 이렇게 선언했다.
“내가 너에게 이 일에 대해 일일이 허락을 받아야 할 까닭은 없다.
나는 부처님을 초청하여 그분의 설법을 듣겠다.”
결심이 서자 여인은 먼저 어린 아들을 기원정사로 보냈다.
그런데 소년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수도원으로 가기 전에 먼저 빠티까를 찾아갔고,
빠티까는 여인의 아들에게 기원정사에 가지 말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소년은 어머니의 꾸중이 두렵다면서
가야만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빠티까가 후퇴하여 말했다.
“좋다.
정 그렇다면 가거라.
그러나, 그 대신 네가 부처님을 초청하더라도
너희 집이 어딘지는 말해 주지 말아라.
그리고, 네가 살고 있는 집을 헷갈리도록 하는거야.
알았지?”
소년은 그 말에 동의하고 부처님을 찾아가
내일 아침에 집을 방문해 주십사는 어머니의 청을 전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빠티까를 찾아갔는데,
빠티까는 어떻게 했는지를 물었다.
소년은 시키는 대로 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자 빠티까는 소년과 함께
먼저 여인의 집에 가서 뒷방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한편, 여인은 부처님이 오실 것을 대비하여
집 안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꽃으로 장엄한 다음
부처님께서 앉으실 자리도 훌륭하게 준비해 놓고 있었다.
그런데, 나형 외도 빠티까의 짐작과는 다르게
부처님께서는 집을 찾는데 아무런 장애도 없으셨다.
부처님께서는 아침 일찍이 공양 받으실 집으로 곧장 오셨다.
여인은 너무나 기뻐서 집 밖으로 나가 부처님을 맞아들여
준비된 자리에 모시고 오체투지로 예를 올렸다.
그리고 나서 공양 공덕수로 부처님의 손에 부은 다음
맛있게 요리된 음식을 부처님께 공양 올렸다.
부처님께서도 공양을 잘 드신 다음
그녀의 공양 공덕을 칭찬해 주셨는데,
그녀가 너무 기뻐했으므로 부처님께서는 다시 한번
“사두, 사두(착하구나, 착하구나: 善哉, 善哉 :선재, 선재)!”
하고 칭찬을 해주셨다.
그래서, 그녀의 기쁨은 한껏 고양되었다.
이런 모든 경과를 뒷방에 숨은
니간타 수행자 빠티까가 다 보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뒷방에서 뛰어나오면서 여인에게 소리쳤다.
“당신은 이제 더 이상 나와는 관계가 없소!
당신은 니간타 수행자인 나를 공양하면서
어떻게 이런 사람의 설법에 환희심을 낸단 말이오!”
빠티까는 흥분한 나머지 여인과 부처님에게 모욕적인 말을 퍼부었다.
그러자 여인은 마음이 흐트러져
더 이상 부처님의 설법에 마음을 집중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으신 채 말씀하셨다.
“여인이여, 그대는 여래의 설법을 듣는데
마음을 고정시킬 수 없느냐?”
“부처님이시여!
저의 마음이 흐트러져 버렸습니다.
저 빠티까의 모욕적인 행동 때문에
마음이 완전히 빗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잔잔한 음성으로 그녀에게 충고하셨다.
“여인이여!
정법을 배우는 자는 그런 외도의 말 따위에
신경을 쓰거나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느니라.
정법을 배우는 자는 단지 자기 자신의 착한 업과
착하지 않은 업에만 마음을 집중시켜야 하느니라.”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을 읊으시었다.
남들의 허물을 보지 말라.
남들이 한 일과 하지 못한 일에 상관하지 말라.
오로지 자신의 허물만을 보라.
그리고, 자신의 착한 일과 착하지 못한 일을 살펴보라.
이 게송 끝에 여인은 수다원 과를 성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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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도들의 비난
전법의 길을 결심하시고 승가를 만들고
사람들을 교화하면서부터 부처님은 적이 많으셨습니다.
부처님 교단과 경쟁 관계에 있던 외도들은
불교 교단의 급성장에 대한 시기와 두려움 때문에
그리고, 자신들을 공양하던 신도들로부터 밥줄이 끊길 수 있다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부처님을 맹비난했습니다.
이들은 부처님은 왕자 출신임을 내세우며
스스로 깨달음을 얻었다고 주장하며
혹세무민하는 사이비라는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여자를 살해하여 기원정사 앞 마당에 묻어놓고는
부처님의 소행이라고 대중을 선동하는
극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외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목련 존자를 비롯한 많은 수행자들을
살해하는 살인까지 서슴지 않으며 가지각색이었습니다.
옷을 벗은채 수행하는 나형외도인
<니간다>의 무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불교 교단에 적의를 갖고
불교 교단에 대해 비방과 악담을 퍼붓거나,
자신의 신도들이 부처님의 설법을 들으러 가거나
공양을 올리려는 것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다 썼던 것입니다.
이번 법구경에 나오는 니간다 수행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신을 양자로 삼고 적극 지원해주던 신도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불교에 귀의하는 것이 두려워
부처님이 그녀의 집에 오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
온갖 치졸한 방법을 사용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부처님께 가르침을 들은 여인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수행자로서의 개념과 품위를 상실하고
부처님께 온갖 모욕과 비난을 퍼부었던 것입니다.
2. 비난과 억울함에 대처하는 법
이러한 상대의 비난에 대해 부처님은 어떻게 대응하시는가요?
자신의 양자였던 외도가 부처님께 모욕을 주고 맹비난하는 것에 대해
창피함과 억울함과 분노가 뒤섞여 마음을 진정할 수 없었던 여인에게
부처님은 어떻게 대응하라고 하시는가요?
상대의 비난에 밖으로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자신을 돌이켜보며 안으로 집중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마음을 잘 챙기라고 하셨습니다.
즉, 감정적이 되지 말고, 이성적이고 쿨하게 대응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이렇게 이성적이고 쿨한 대응이 구체적으로 가능할까요?
그것은 상대의 비난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대의 비난하는 말에 잡혀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내가 비난받을 행동을 했다면 그 비난을 받아들이고,
비난 받을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마치 소 닭 보듯이
담담히 대응할 수 있는 마인드컨트롤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상대를 오히려 가엾이 여기고
달래서 보내는 성숙한 태도를 갖는 것이
상대의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상대의 행동을 보지 말고
자신을 행동을 돌아보라는 부처님의 말씀은
상대의 비난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고 이성적이고 쿨해지라는 말씀입니다.
상대의 비난에 대해 자신을 돌이켜보아
내가 비난받을 일을 했다면 이렇게 말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잘못했소.
미안하오.
그러나, 욕을 하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소.
마음을 진정시키시오."
이렇게 대응하라는 것이다.
반대로, 비난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면
억울해서 씩씩거리며 억울함을 밝히려고
언성을 높이며 맞불을 놓거나,
복수를 하기 위해 이를 뽀드득 갈며
같이 미쳐 날뛰지 말고
담담하게 대응할 수 있는 마음상태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것이
마음 챙김이고 마음 집중인 것이고,
수행자의 품위와 자세는 어려울 때에도
이러한 마음 챙김과 마음 집중을
할 수 있는 모습에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수행자의 자세에 대한 짧은 경전 중에
<보왕삼매론>에는
"억울함을 당해 밝히려고 하지 마라.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나니
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 수행하는 문을 삼으라."
고 하는 가르침이 나옵니다.
이 말씀은 억울함을 당해
속이 시커멓게 타 들어가면서
억지로 분을 참으라는 말씀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비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을 돌아보아 비난받을만한 행동을 했으면 그 비난을 받아들이고,
비난받을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소 닭보듯이 담담히 넘어갈 수 있는
마음챙김과 집중을 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것이 수행자의 자세이자 품위이자 여유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갈망과 집착의 시스템이
긴 욕망의 윤회의 사슬을 만드는 것처럼
비난에 대처하는 분노의 감정 싸움이
긴 원망의 윤회의 사슬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긴 원망의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
수행자로서의 올곧은 품위와 자세를 지키는 길은
비난과 억울함을 당했을 때 눈이 남에게로 향하지 않고
자신에게로 향해 보다 이성적이고 쿨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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