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48)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디까 스님 이야기>
부처님께서 죽림정사에 계시던 어느 때
고디까 스님과 관련하여 게송 57번을 설법하시었다.
어느 때 고디까 스님은 마가다 국
영취산 바위 위에 앉아서 부지런히 수행하고 있었다.
고디까 스님은 마음을 고요히 하여 내적 현상 관찰에
집중하는 위빠싸나를 열심히 닦고 있었는데,
스님이 일념 삼매를 성취하여 매우 깊은 수준에 이르렀을 때
병이 생겨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스님은 몸을 돌보지 않고 정진을 계속했다.
그러나, 매번 병이 엄습하여 그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 여섯 번이나 반복되었다.
그리하여 스님은 다시금 아라한 과를 성취하기 위해
총력을 다해서 한시도 쉬지 않고 정진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결심했던 대로 예리한 면도날로 자기 목을 그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스님은 모든 번뇌가 다하는
아라한 과를 성취하였으며 동시에 죽고 말았다.
고디까 스님이 죽은 것을 안 죽음의 왕 마라는
그가 죽어서 어느 세계에 다시 태어났는지 알아보려 했지만 그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젊은 남자로 변신하여 부처님 앞에 나타나
고디까 스님이 어느 곳에 태어났는지 알려 달라고 청했다.
이에 부처님께서 대답하시었다.
“마라여, 그대가 고디까가 태어난 곳을 알려고 하지만
그 같은 노력은 아무 소득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그는 아라한이 되어 모든 번뇌로부터 해탈하였고,
그래서 다시 태어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니라.
마라여, 네가 가진 모든 힘과 능력을 다 동원하더라도
깨달은 이가 가는 곳을 찾아내지 못하리라.”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만일 그가 계를 지키고
정신을 차려 깨어 있는 생활을 하며
올바른 깨달음을 얻어 해탈을 성취했다면
마라도 그가 가는 길을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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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의 길
만해 한용운 선생의 "나의 길"이라는 시입니다.
이 세상에는 길도 많기도 합니다
산에는 돌길이 있습니다.
바다에는 뱃길이 있습니다.
공중에는 달과 별의 길이 있습니다.
강가에서 낚시질하는 사람은
모래 위에 발자취를 내입니다.
들에서 나물 캐는 여자는 방초(芳草)를 밟습니다.
악한 사람은 죄의 길을 좇아갑니다.
의(義) 있는 사람은 옳은 일을 위하여는 칼날을 밟습니다 .
서산에 지는 해는 붉은 놀을 밟습니다.
봄 아침의 맑은 이슬은 꽃머리에서 미끄럼을 탑니다.
그러나 나의 길은 이 세상에 둘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님의 품에 안기는 길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죽음의 품에 안기는 길입니다.
그것은 만일 님의 품에 안기지 못하면
다른 길은 죽음의 길보다 험하고 괴로운 까닭입니다.
아아! 나의 길은 누가 내었습니까?
아아! 이 세상에는 님이 아니고는 나의 길을 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나의 길을 님이 내었으면 죽음의 길은 왜 내셨을까요.
한용운 선생의 '나의 길' 시에서
의인은 옳은 일을 위해서는 칼날을 밟는다고 했습니다.
아라한 과를 성취하려는 열망을 놓지 않는 수행자는
힘든 병고의 와중에서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도
자신의 수행 정진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리고, 최후의 순간에 뜻을 이루지 못하자
면도칼로 자신의 목을 그어 자신의 생을 마감합니다.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 노량 해전에서
적의 총탄에 맞아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자신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고 하며
장수로서의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는 모습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몸은 죽었지만 장수로서 영원히 사는 길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준 이순신 장군처럼
고디까 스님은 수행자로서 영원히 사는 길은
끝없는 정진과 불퇴전의 모습이라는 것을 몸으로 보여 줍니다.
2. 수행자의 길
의인에게는 의인의 길이 있고,
장군에게는 장군의 길이 있고,
수행자에게는 수행자의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은 자신의 존재 이유이며 생명이며 가치입니다.
만해 선생은 나의 길은
이 세상에 두 가지밖에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는 님의 품에 안기는 길이요,
하나는 죽음의 품에 안기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님의 품에 안기지 못한다면
다른 길은 죽음의 길보다 험하고 괴롭다고 하셨습니다.
수행자의 길은 부처님께서 걸으신 길과
그렇지 않은 길 두 길밖에는 없습니다.
붓다가야의 우주의 중심으로 향하는 보리수의 길과
네란자라강의 화장터의 죽음의 길의 두가지 길밖에 없습니다.
수행자는 자신의 길을 항상 살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행자로서 결실과 성취를 이루는 길을 가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허망한 죽음의 길을 향해 가고 있는가를
언제나 잘 살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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