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50) 왕과 가난한 남자의 아내 이야기(1)>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시던 어느 때,
코살라 국왕 빠세나디 왕과 가난한 남자의
아름다운 아내와 관련하여 게송 60번을 설법하시었다.
어느 날 코살라 국왕 빠세나디는 축제에 참석하기 위해서
코끼리 뿐다리까를 타고 위엄을 갖추어
태양의 운행 방향에 따라 시내를 돌고 있었다.
그때 그는 어떤 집의 이 층에서 창가에 몸을 기대고
밖을 바라보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과 눈이 마주쳤는데,
그 여인은 왕과 눈이 마주치자 안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왕은 그 여인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것에 놀라서
미처 생각을 정리하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여인이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밝은 보름달이 세상을 환히 비추다가
금방 구름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과도 같았다.
왕은 망연자실하여 코끼리 위에서 뒤로 넘어질 뻔했다.
왕은 시내 시찰을 마치자마자 수행했던 관리에게 물었다.
“너도 그 여자를 보았느냐?”
“예,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너는 당장 그 여자를 찾아가
그녀가 결혼을 했는지 않았는지 알아보고 오너라.”
관리가 가서 알아보니 그 여자는 이미 결혼한 몸이었다.
그랬지만 왕은 그녀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왕은 곧 그 여자의 남편을 불러들였다.
왕의 부름을 받은 여인의 남편은 왕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어서
왕궁으로 와서 예를 올리고 분부를 기다렸다.
왕은 그에게 너는 지금부터 내 심부름을 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당황해 하며 말했다.
“대왕이시여, 저는 제 나름대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대왕께서 원하신다면 저는 대왕께 다른 방법으로
보상을 하겠사오니 제발 저를 자유롭게 놓아주셨으면 합니다."
“네 보상 따위는 필요 없다.
오늘부터 너는 내 시종이 되는 거다.
알았느냐?”
왕은 우격다짐으로 이렇게 말하고 나서 그에게 창과 방패를 내렸다.
왕은 그에게 죄를 씌워서 죽인 뒤 그의 아내를 차지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었다.
왕의 시종이 된 여인의 남편도 왕의 속셈을 짐작했다.
그는 공포에 떨면서도 흠을 잡히지 않기 위해 힘껏 노력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왕은 여인을 차지하고 싶은
정욕이 더욱 불타올라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억지로라도 그에게 죄를 씌워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여인의 남편을 불러 이렇게 지시했다.
“너는 *1요자나 떨어진 강변에 가서
빨간 진흙과 흰색, 푸른색의 연꽃을 구해가지고 오너라.
그것들을 가지고 너는 내일 저녁 내가 목욕을 하는 시간에 맞추어 되돌아와야 한다.
네가 시간을 어기거나 그걸 가지고 오지 못하면 너는 사형에 처해질 것이다.”
*1요자나 : 고대 인도의 거리 단위, 1요자나는 14km
왕의 속셈은 뻔한 것이었지만,
여인의 남편으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는 왕이 원하는 빨간 진흙이라든가
푸른색, 흰색 연꽃은 용궁에서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절망하여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밥이 다 되었소?”
“지금 끓고 있는 중이에요.”
“그걸 그냥 주시오.
뜸들일 시간도 없소.
가지고 가다 보면 뜸이 들지 모르지.”
그는 밥과 약간의 반찬을 준비하여 길을 떠났다.
새벽 일찍이 집을 출발한 그는 가다가 밥을 먹었다.
그는 잘 익은 부분은 제쳐두고 설익은 부분을 먹으면서
혹 여행하는 사람을 보면 그들에게 좋은 부분을 주었다.
그리고 남은 음식과 밥주걱을 강물에 던지면서 외쳤다.
“강을 지키시는 용왕님이시여!
그리고 천신님들이시여!
빠세나디왕은 나를 죽이기 위해서 터무니없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나는 이제 내 밥을 여행자들에게 주었고, 남은 것은 물고기들과 용왕님께 드립니다.
용왕님이시여, 이 같은 공양 공덕으로 제가 원하는 것들을 얻을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이때 그의 안타까운 사정을 안 용왕이 노인으로 변하여 그 앞에 나타나서 물었다.
“당신은 지금 뭐라고 빌었소?”
“이러 저렇게 빌었습니다.”
용왕은 두 번 세 번 같은 질문을 되풀이했고,
그도 같은 대답을 되풀이했다.
그러자 늙은이로 변신한 용왕은 그가 찾는
빨간 진흙과 푸른색, 흰색 연꽃을 그에게 주었다.
한편 빠세나디 왕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놈이 그 진귀한 것을 구해올 리는 만무하다.
그렇지만 혹시 모르지.
만약 놈이 그것을 구해 오는 날이면 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 버리고 만다.’
그래서 그는 즉시 성문지기를 불러 오늘은 성문을 일찍 닫고
봉인을 한 다음 열쇠를 자기에게 가지고 오라고 지시했다.
원하는 것을 얻은 남편은 부지런히 달려 사왓티 성에 도착했다.
그렇지만 아직 시간은 남았는데도 성문은 잠겨 있는 것이었다.
그는 문지기를 불러 문을 열어 달라고 부탁해 보았다.
그러나 문지기는 왕의 명령이 있어서 문을 열 수가 없노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이 불행한 남자는 자기가 왕의 심부름꾼이니
문을 열어 달라고 몇 번이나 성문지기를 설득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는 이것이 왕의 농간인 것을 알고 다른 방법을 쓰기로 했다.
그는 자기가 가지고 온 진흙을 성벽에 붙이고 꽃들도 성벽에 꽂았다.
그런 다음 큰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사왓티 성 내의 시민들은 들으시오!
나는 왕의 지시를 받고 그 지시를 잘 이행했습니다.
이것들은 왕이 나에게 구해 오도록 지시한 물건들입니다.
그런데도 왕은 문을 일찍 닫아서 지시를 어긴
죄명을 씌워 나를 사형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내 증인이 되어 주시오!”
이렇게 세 번 외쳐서 자기의 무죄를 밝힌 뒤 그는 생각했다.
‘이제 나는 어디로 갈까?
그래, 비구들은 인정이 많은 분들이다.
나는 오늘 밤 수도원에 가서 잠을 자야겠다.’
그래서 그는 곧 제따와나 수도원에 갔고,
거기서 편안하게 쉬었다.
한편, 그날 밤 빠세나디 왕은 여인에 대한 욕망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는 날이 밝으면 즉시 남편을 처형하고 여인을 왕궁으로 데리고 오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그는 괴상한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사람이 쇳물이 끓는 큰 가마 속에 들어가서 내지르는 듯한 단말마의 비명이었다.
뜨거운 쇳물 안에 몸이 빠진 상태로 머리만 밖으로 나온 어떤 사람이
잠시 고통을 식히려 하나 금세 다시 쇳물 속으로 빠질 때 내지르는 지옥고의 비명이었던 것이다.
이 괴상한 소리는 끊이지 않고 계속 들려왔으므로 그는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왕은 공포와 불안에 떨면서 비몽사몽간에 어지러운 꿈을 꾸기도 했다.
그는 중얼거렸다.
‘나도 이제 죽으려는가?
아니면 왕비가 죽을 건가?
혹은 내 왕국이 멸망할 조짐인가?’
그는 밤새도록 시달리느라고 긴 밤을 꼬박 새우고 아침을 맞았다.
그는 곧 사람을 보내어 왕궁의 스승인 브라흐만을 불러 불어보았다.
“브라흐만 스승이시여,
저는 지난밤에 무서운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것은 무슨 조짐인지요?
어제 밤에 제가 들은 소리는 두(Du) . 사(Sa) . 나(Na) .소(So)였습니다.”
그렇지만 그 브라흐만은 그 소리가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그래도 모른다고 말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말했다.
“흠, 그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로군요.”
“그게 무슨 말씀이시지요?”
“그것은 대왕께서 곧 돌아가실 조짐입니다.”
“예? 그렇다면 이를 피할 방도는 없겠습니까?”
“염려 마십시오.
저는 베다(Veda:브라흐만 교의 성전)에 정통한 사람이 아닙니까?”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각종 생명들을 희생하여 신께 제사를 지내야 할 것 같습니다.
코끼리. 말. 숫소. 암소. 당나귀. 염소. 양. 돼지. 닭. 개. 고양이,
그리고 어린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를 각각 일 백씩 희생해야 합니다.”
(계속)
----------------------------------
1. 개로왕과 도미 부인
백제의 개로왕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개로왕은 정치를 제대로 돌보지 않고 바둑과 쾌락에 빠져 살다가
고구려 장수왕의 침입을 받아
당시 수도였던 위례성을 빼앗기고 죽임을 당한 백제의 폭군입니다.
이 개로왕이 백성들로부터 민심을 잃게 된 사건이
빠세나디왕과 비슷하게 백성의 아내을 탐한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도미'라는 남자의 아내가 예쁘다는 소문을 듣고
개로왕이 그녀를 차지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의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키려고
하녀를 대신 들여보냈다가 왕의 노여움을 샀습니다.
분노한 왕은 잔인하게 남편인 도미의 두 눈을 빼내고
장님으로 만들어버리고 배를 띄어 바다에 흘려보냈습니다.
나중에 이 여인은 계교를 짜내어 탈출에 성공하여
남편과 재회하여 고구려로 넘어갔습니다.
군주로서의 도리에 대한 개념을 상실하고
백성의 아내를 탐해 민심을 잃은 개로왕의 말로는 비참했습니다.
2. 탐욕의 해악
빠세나디왕도 비슷한 케이스입니다.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께 귀의하여
부처님의 교단을 잘 외호하였다고는 하나,
법구경에 나오는 여러 일화들을 보면
탐욕이 강한 왕이었슴을 알 수 있습니다.
식욕 제어가 안 되어 뚱보왕으로서
살을 빼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기도 하고,
말라까 부인의 남편을 시기하여 계략을 꾸며서
남편과 아들을 몰살시킨 장본인입니다.
그리고, 이번 법구경의 이야기처럼
백성의 아내를 탐하여 못된 짓을 꾸미는 일화까지 보면
탐욕으로 인해 왕으로서의 도리에서 벗어나는 일을 많이 행한 왕이었습니다.
나중에 석가족을 멸망시킨 아들 위두사카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비참하고 불행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아마 이 탐욕에 대한 과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원정사가 가까이 위치하여
자주 부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식욕이든 색욕이든 명예욕이든 권력욕이든
세속적 욕망에 대한 갈애와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리 부처님의 가르침을 많이 받았더라도
중생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부처님 당시에 많은 재가자들이
단 한 두차례 부처님의 가르침만으로도
수다원 과에 얻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빠세나디 왕은 자주 부처님을 찾아뵙고
가르침을 듣고 자주 감동을 받았슴에도 불구하고
수다원 과를 성취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탐욕을 버리지 않고 자신과 남에게 악업을 저지르고 고통으로 빠뜨려
이고득락과는 정반대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 것슴을 알 수 있습니다.
3. 삿된 길
'남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인의 미색에 눈이 멀어 권력의 힘을 이용하여
한 백성의 아내를 차지하기 위해 왕으로서의 도리와 품위를 상실하고
비열한 계략을 꾸미고 성문을 잠그는 악업을 저지르는 왕의 모습!
자기 아내를 지키려는 한 백성의 울부짖음에는
귀 기울이지도 마음의 문을 열지도 않는 몰염치한 모습!
여인에 대한 정욕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악업의 과보로 환청으로 무서운 소리를 듣고 괴로워하는 모습!
탐욕으로 어리석음이 증폭되어
사기꾼 브라만의 잘못된 가르침에 현혹되어
함부로 살생을 저지르는 그릇된 제사 행위에 솔깃해하는 모습!
출발은 길을 가다 아름다운 여인에 마음을 빼앗긴 사소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인에 대한 탐욕에 눈이 멀고
귀가 막히게 되면 어떻게 인과가 흘러가는가요?
악행과 오명과 괴로움과 어리석음의 굴레에서
헤매이는 왕의 모습을 통해
정도에서 벗어난 세속적 욕망에 치여살게 되면
인간이 얼마나 한심해지게 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법구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법구경(53) 마하 까싸빠 존자와 반항적인 제자 이야기 (0) | 2024.05.07 |
---|---|
법구경(51) 왕과 가난한 남자의 아내 이야기(2) (1) | 2024.05.05 |
법구경(49) 두 친구 시리굿따와 가라하딘나 이야기(1) (0) | 2024.04.30 |
법구경(48)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디까 스님 이야기 (1) | 2024.04.27 |
법구경(47) 마하 가섭 존자 이야기 (0) | 2024.04.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