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77) 찐밥을 보관한 벨랏타시사 비구 이야기>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시던 어느 때,
벨랏타시사 비구와 관련하여 게송 92번을 설법하시었다.
벨랏타시사 비구는 탁발을 나가
음식을 얻어 거기서 음식을 먹은 다음
다시 탁발을 계속하여 음식을 받아서
그것을 수도원에 가지고 와서는 건조시켜 찐밥으로 만들어 저장하곤 했다.
이와 같이 해서 그는 매일 탁발을 하지 않아도 좋게끔 한 다음
여유 있는 시간을 이용하여 2,3일씩 선정 삼매에 드는 것이었다.
그는 선정을 익히다가 배가 고프면
건조시켜 저장해 둔 찐밥을 물에 불려서
간단하게 공양을 마치고 다시 좌선에 몰두했다.
그러자 다른 비구들이 벨랏타시사 비구가 밥을 저장하여
먹고 지낸다는 사실을 부처님께 보고했다.
그 당시 비구들이 음식을 저장해 두는 일은
부처님에 의해 금지되어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보고를 받으시고
벨랏타시사 비구가 밥을 저장한 것은
여래가 계율을 정하기 이전부터 해온 일로서,
그는 욕심이 많아서 음식을 저장한 것이 아니라
시간을 절약하여 수행을 하기 위해서 저장한 것이므로
계율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선언하셨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아라한은 아무것도 저장하지 않는다.
그는 음식을 받을 때도 그 의미를 잘 비추어본다.
니르바나는 빔(空)이요, 자취 없음,
그는 다만 해탈만이 목적이니
아, 마치 새들이 허공을 날아도 자취가 없듯이
그들이 가는 길에도 자취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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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행위의 의도와 업의 과보
법구경 제 1장은 '마음이 모든 것의 근본이 된다'는 게송으로 시작합니다.
이 게송이 나오게 된 배경은
한 장님 아라한이 경행을 하다가 모르고 벌레를 밟아 죽인 일에서 출발합니다.
부처님은 그 행위가 의도적으로 살생한 행위가 아니므로
그의 계행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반면 장님 아라한이 전생에 의사였을 때
거짓말을 하는 여인을 괘씸하게 생각하여
일부러 눈을 멀게 한 행위에 대해서는
그가 여인을 해치려는 악한 의도에서 출발한 행위이므로
다음 생에 장님이 되는 악업의 과보를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벌레를 밟아죽이는 행위나,
누군가의 눈을 멀게 한 행위나,
누군가를 해치게 한 사건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남을 해치려는 의도를
전혀 갖지 않은 마음 상태에서의 행위의 과보와
자신이 남을 해치려는 의도를 가지고 분노의 마음 상태에서의 행위의 과보는
180도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불교의 인과법은 자신이 어떠한 의도와 의지를 갖고
행위하느냐에 따라 그 다음의 과보가 따라붙는 것입니다.
한 아라한 수행자가 탁발을 나가서 밥을 얻어먹은 다음
다시 한번 탁발을 나가서 얻은 밥을 건조시켜 찐밥으로 만든 후
2~3일간 집중력 있게 선정 수행에 들어야 할 상황에서
배가 고프면 그 찐밥으로 끼니를 때웠습니다.
2. 음식을 보관하지 말라는 계율 제정의 의미
당시 출가 수행자의 계율로는
음식에 대한 욕심을 갖고 음식을 저장하거나,
탁발이 귀찮고 게을러 여러 날의 음식을 저장하는 것을 금했습니다.
또한, 저장하여 상한 음식을 먹어 건강상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음식을 저장하는 것을 계율로서 금했습니다.
아라한은 감각적 쾌락부터 색계, 무색계의 욕망까지
욕구의 완전한 소멸에 이른 존재입니다.
아라한 수행자는 음식에 대한 욕망이나
탁발의 귀찮음 때문에 음식을 저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오로지 시간을 절약하여
선정 수행에 전념하기 위한 의도에서 밥을 저장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음식의 저장 중에 음식이 상한다는 것을 통찰하고 있었으므로
찐밥으로 만들어 보관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아라한 수행자가
음식을 저장하여 계율을 어겼다고 비난하는 비구들에게
부처님께서는 욕망과 악의가 한 치도 붙어 있지 않은 의도에서
찐밥을 저장한 것이므로 계율을 어긴 것은 아니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니르바나(열반)은 "빔(空)"이요, "자취가 없슴"이라고 하셨습니다.
"빔"이라는 말은 "욕구의 완전한 소멸(무욕)"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취가 없슴"이란 "업의 결과를 남기지 않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욕구가 완전히 소멸된 마음 상태에서의 행위는
더 이상 업의 결과를 남기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비유를 드셨습니다.
텅 빈 허공을 나는 새는
비록 하늘을 나는 행위를 한다고 해도
그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이 비유는 욕망의 완전한 소멸에 이른 아라한 수행자는
비록 음식을 저장하는 행위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 의도에는 욕망과 악의가 없으므로
업의 과보를 받는 자취나 흔적이 없다는 것에 대한 비유입니다.
물론, 이 게송을 내 목적만 좋으면
계율을 아무렇게나 어겨도 좋다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즉, 수행의 목적이라면 언제나 음식을 저장해도 된다는 식으로
아전인수격으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게송을 보면 아라한은 음식을 받을 때도
그 의미를 잘 비추어본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은 출가 수행자는 음식을 함부로 받아서는 안 되며,
탁발을 할 때는 세 가지를 잘 반조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주인이 땀 흘려 장만한 음식을
자신이 먹지 않고 복을 짓기 위해 보시했으므로 감사히 먹어야 합니다.
음식에 대한 욕심이나 애착에서 음식을 모아서
저장하려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비록 즐겁고 맛있게 먹은 음식도
곧 더러운 대소변으로 나온다는 진실을 생각하며
먹는 것에 탐착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즉, 음식에 대한 감사와 함께 음식에 대한 탐욕에서 벗어나라는 의미에서
이 계율이 설정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아라한 수행자는 음식을 저장하지 말라는 계율의 의미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계율의 의미를 잘 인식하고 있지만,
선정 수행에 전념하기 위한 목적에서
음식을 보관한 아라한 수행자의 행위의 의도를 보라는 의미인 것이지
아라한이 되면 계율을 업수히 여겨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또한 잘 알아야 합니다.
3. 계율의 중요함
부처님과 가섭 존자의 다음 이야기는
아라한일지라도 계율을 왜 중요시 여겨야 하는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부처님께서 어느 수도원에서 여러 비구들을 위해
상황에 따라 지켜야 하는 계율에 대해 설법하시고는
계율의 공덕에 대해 찬탄하셨다고 합니다.
그 때 가섭 존자도 그 법회에 참석하셨는데,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고는 마음이 불편해지며
부처님이 계율에 대해 찬탄하신 것을 불평하였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미 아라한의 경지에 오른 비구는
욕망을 떠나 때묻지 않은 마음 자리에 앉아있으므로
계율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섭존자는 이내 자신의 언행을 후회하고는
코살라 국으로 떠난 부처님을 찾아뵙고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자신의 잘못을 참회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참회하는 가섭 존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만일 스스로 허물을 알고 그 허물을 뉘우치면
미래 세상에는 율의계가 생기고
착한 법은 더욱 자라나서 줄어 들지 않게 될 것이다.
비록 네가 비구의 맨 윗자리일지라도
계율을 배우려 하지 않고 그것을 중하게 여기지 않으며,
만든 계율을 찬탄하지 않는다면 나는 너를 칭찬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내가 너를 칭찬하면
사람들은 곧 너를 가까이하고 공경하고 존중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 사람들은 오랫동안 고통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장로 비구든, 중견 비구든, 어린 비구든
계율을 즐겨 지키지 않으면 칭찬하지 않는다.
그러나, 장로 비구든 중견 비구든, 어린 비구든 계율을 지키는데 힘쓰고,
계율을 범하지 않으면 나는 그들을 칭찬할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사람들이 악한 행위를 짓고 악한 과보를 받는 이유는
계율을 지키지 않고 계율을 찬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미 욕망에서 벗어난 아라한의 경지에 올랐다 하더라도
함부로 계율을 파하거나 계율을 업수히 여기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을 위해 모범을 보여야 함과 동시에 계율을 찬탄함을 통해
사람들을 바른 길과 선한 과보로 인도하는 자비심이기 때문입니다.
가섭 존자는 더욱 그후 두타행에 힘쓰는 한편 계율을 지키며 찬탄하고,
사부 대중들에게 계율을 지키는 공덕에 대해서 많은 설법을 하셨다고 합니다.
이처럼 계율은 악한 행위를 짓지 않고
악한 과보를 받지 않는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므로
비록 모든 욕망에서 벗어났다는 아라한일지라도
계율을 지키고 찬탄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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