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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인물사

불교 인물사(45) - 경전 번역의 선구자, 구마라집 법사(5) - 8년간의 역경 작업

by 아미타온 2024. 8. 6.

<불교 인물사(45) - 경전 번역의 선구자, 구마라집 법사(5) - 

8년간의 역경 작업>

 

<구마라집 법사가 주석했던 중국 장안 초당사 대웅전>

 

 

구마라집 법사가 제일 먼저 번역한 경전은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 이었습니다.

 

구마라집 법사는 인도 범본(梵本:산스크리트본)을 갖고

한역 경전으로 새롭게 번역하고

당시 국왕인 요흥도 직접 참여하여

이전에 번역하였던 경전을 들고 서로 대조하며 교정을 하였습니다.

 

옛 번역을 구마라집 법사의 새로운 번역어로 바꿔 놓으니

그 뜻이 원만하게 소통하여 대중들이 모두 기뻐 찬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훌륭한 번역이었음에도

구마라집 법사는 번역의 어려움을 다음과 같이 토로했습니다.

 

"인도의 풍속은 문장의 체제를 대단히 중시한다.

그 오음(五音)의 운율이 현악기와 어울리듯이,

문체와 운율도 아름다워야 한다.

국왕을 알현할 때에는 국왕의 덕을 찬미하는 송(頌)이 있다.

부처님을 뵙는 의식은 부처님의 덕을 노래로 찬탄하는 것을 귀히 여긴다.

경전 속의 게송들은 모두 이러한 형식인 것이다.

 

그러므로 범문(梵文)을 중국어로 바꾸면

그 아름다운 문채(文彩)를 잃는 것이다.

아무리 큰 뜻을 터득하더라도 문장의 양식이

아주 동떨어지기 때문에 마치 밥을 씹어서 남에게 주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다만 맛을 잃어버릴 뿐만이 아니라,

남으로 하여금 구역질이 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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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경>이나 <예불문>과 같은 경전을 독송할 때

우리는 보통 한문으로 독송합니다.

 

그 이유는 한문이 한글보다 뛰어나서가 아니라,

경전을 독송하는 운율과 리듬의 맛이나 

감성에 미치는 영향이 한문이 훨씬 더 맛깔 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일체법을 다 익히기 원합니다."라고 독송하는 것보다

"원아속지일체법"이라고 7언절구의 리듬 있는 한문으로 독송하는 것이

훨씬 리듬감있고 독송하는 맛이 납니다.

 

우리말로 된 소월의 <진달래>같은 시를 읊을 때도

우리나라 말로 읊으면 그 맛이 나지만,

이것을 한문이나 영어로 번역하면 의미는 전달되겠지만,

그 시적인 맛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경전의 구절을 지나치게 직역만 해도 알아듣기 힘들고,

의미 전달을 위해 지나치게 의역을 하더라도 원문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직역과 의역을 중도에 맞게 잘 해야하는데,

그것이 만만한 문제가 아닙니다. 

 

"밥을 씹어서 남에게 주는 것과 같이

그 맛을 잃어버릴뿐 아니라,

남으로 하여금 구역질을 나게 한다."는

구마라집 법사의 말씀은 번역가의 그 어려움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

원전과 모국어에 대한 구사 능력,

읽을 독자들의 독해 능력 등이

잘 어울어져야 좋은 번역이 이루어질 수 있는데,

그 작업이 참으로 힘들고 어렵다는 고백인 셈입니다.

 

<장안 초당사 대나무 숲>

 

2. 8년간의 경전 번역 작업

 

이러한 번역의 어려움을 토로하였지만,

구마라집 법사는 8년 동안 정력적으로 경전을 번역했습니다.

 

계속해서 <소품반야경> <금강경> <십주경(화엄경 십주품)>

<십지경(화엄경 십지품)> <법화경> <유마경> <능엄경>

<아미타경> <무량수경> <미륵상생경> <미륵성불경> <미륵하생경> 등 여러 대승경전,

<중론> <백론> <십이문론> <대지도론> <십주론> <성실론> 등의 중관 학파의 여러 논서,

그리고, <십송률> <보살계본> <십송비구계본> 등의 계율에 대한 경전 등 약 300여권을 번역했습니다.

 

양적으로도 대단한 양이었지만,

그 경전의 질적인 내용도 더없이 훌륭했습니다.

 

<양고승전>에 의하면 

당시 사방에서 교리를 공부하는 이(義學之士)들이

만 리를 멀다 하지 않고 모여들었다고 합니다.

 

또한, 당시 중국의 고승이던 도생, 혜원 등이 의문이 나는 부분은

편지를 보내어 구마라집 법사에게 자문을 구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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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라집은 난관 속에서도 때를 기다렸고,

자신을 후원하는 황제 아래서 8년의 세월동안 많은 경전을 번역했습니다.

 

구마라집 법사의 번역이 얼마나 중국인들에게

불교에 대한 이해와 감성의 폭을 넓혔는가 하면

구마라집 법사의 번역을 기반으로 중국에는 '종파 불교'가 생겨났습니다.

 

'종파 불교'는 하나의 경전을 소의 경전으로 해서

그 소의경전을 중심으로 불교를 이해하려는 움직임입니다.

 

예를 들어, <중론>, <백론>, <십이문론>의 중관 논서들을 중심으로 한 삼론종,

<법화경>을 소의 경전으로 하는 천태종,

<화엄경>을 소의 경전으로 하는 화엄종,

<아미타경>,<무량수경> 등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정토종 과 같이 말입니다.

 

후일 수나라, 당나라를 거치며 불교의 전성기를 맞이하는데,

구마라집 법사의 번역이 가장 중요한 단초를 제공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중국,한국,일본의 많은 불자들은

실크로드의 위대한 번역가이자 사상가인

구마라집 법사에게 참으로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