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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인물사

불교 인물사(47) - 경전 번역의 선구자, 구마라집 법사(7) - 구마라집 번역의 특징

by 아미타온 2024. 8. 13.

<불교 인물사(47) - 경전 번역의 선구자, 구마라집 법사(7) - 

구마라집 번역의 특징>

 

<구마라집 법사의 번역어, 번뇌즉도량 (중국 초당사)>

 

1. 경전 번역의 역사

 

수천년간 중국에서 한역한 불교 경전의 수는

6,000~7,000권에 달한다고 합니다.

경전을 번역한 번역자 수도 200명에 가깝다고 합니다.

 

이 사실은 불교의 전파와 함께 인도에서 온 경전을 

자신들의 언어와 사유 체계로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가를 나타냅니다.

   

이 번역가 가운데서도 유명한 역경가가 4사람이 있습니다.

 

5세기 초의 구마라집, 6세기 중엽의 진제,

7세기 중엽의 현장, 8세기 중엽의 불공입니다.

 

이들은 가장 뛰어난 번역가로 '중국 4대 번역가'로 손꼽힙니다.

 

이 중 경전의 부수나 권수가 가장 많은 사람은 현장과 불공입니다.

 

그러나, 중국, 한국, 일본에서 불교가 대중화되는데,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분이 바로 구마라집 법사입니다.
 

구마라집 법사가 번역한 경전을 통해서

불교의 참뜻이 비로소 중국에 전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도 이미 수백 부의 경전이 번역되었지만, 

번역된 경전은 불교의 참뜻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불충분한 번역으로 혼란이 많았고, 

바르게 불교 교리와 학설을 온전히 수용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구마라집 법사가 경전을

번역하거나 강의하거나 주석서를 씀으로써

중국인들은 올바르게 불교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구마라집 법사는 많은 역경가 중에서

중국, 한국, 일본 불교의 최대 공로자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구마라집 법사 사리탑 전각(중국 초당사)>

 

2. 창조적 역경학으로서의 번역

 

중국에 처음 불교가 전래되었을 때

중국인들은 불교의 개념을

중국의 기존 사상인 도가, 유가의 사상으로 파악했습니다.

 

예를 들어, 불교의 열반을 무위, 공(空)을 무(無),

 부처님을 진인(眞人), 무아를 비신(非身), 계(戒)를 예(禮)와 같이

이미 존재하는 비슷한 개념을 인용하여 설명하는 방식을 상요했습니다.

 

이러한 불교를 "격의(格儀) 불교"라고 합니다.

 

격의불교란 인도에서 건너온 불교를 

중국적 사유 방식에 의한 중국적 해석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은 생소한 불교적 개념을

자신들이 알고 있는 개념으로 이해하는데는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교에서 추구하는 원래의 뜻을 왜곡시킨다는

결정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도가적, 유가적 탈을 벗어버린

불교 본연의 개념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 작업은 범어로 된 불교경전을

중국어로 바르게 번역하는 작업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 작업을 가장 창조적이고 선구적으로 해 낸 분이

바로 구마라집 법사인 것입니다.

 

구마라집의 번역을 일반적으로 

'창조적 해석학으로서의 역경'이라고 평가합니다.

 

'창조적 해석학'이란 원전의 숨은 의미를 

자신이 살고 있는 그 시대의 독자를 위해 다시 해석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즉, 원저자의 입장에서 글자 그대로 해석하기보다는

자신의 역사적 위치에서 원전을 이해하려는 노력입니다.

 

구마라집 법사는 산스트리트어(범어)로 된 인도 경전을

당시의 중국인의 사유 구조에 알맞게 번역하기 위해 고심했습니다. 

 

"창조적 해석학으로서의 역경"은

원전에서 부처님이 가르침을 설했다고 한다면

부처님이 현재에 살아 계신다면

현대어로 어떻게 말할 것인가에 대한 고뇌를 통한 번역입니다.

 

< 구마라집이 번역한 불자들의 이상향 극락 >

 

3. 경전 내용을 바르게 전하기 위한 노력

 

'창조적 해석학으로서의 역경'이라는

구마라집 법사의 번역 특징은 무엇인가요?

 

첫째, 구마라집 법사는 스스로의 사상 철학과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원전을 대폭 축약, 가감하여 번역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원문에 없는 부분을 첨가하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구마라집 법사는 자신의 생각에 따라 또는 중국인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대담하게 취사 가감을 했던 것입니다.

 

인도의 관습도 중국인이 알기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최근 연구 결과 구마라집 법사의 번역에는

원전에는 없는 많은 개념이나 구절들이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아미타경>에서 구원을 가져다 주는 이상향을

'더할 나위 없는 지극한 즐거움이라는 뜻의

"극락(極樂)"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구마라집 법사은 '극락'이라는 세계를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범어 원전에는 없는 상상의 동물을 표현했습니다.

 

구마라집 법사가 번역한 <아미타경>에는 

극락 정토에 살고 있는 새 중에 '공명조'가 있습니다.

 

'사리불아! 

또 저 극락에는 항상 천상의 음악이 연주되고,

대지는 황금색으로 빛나고, 

밤낮으로 천상의 만다라 꽃비가 내리는데,

이 국토의 사람들은 항상 이른 아침마다 

바구니에 여러 가지 아름다운 꽃을 담아 가지고

다른 세계로 다니면서 십만억 부처님께 공양하고, 

아침 식사 전에 돌아와 식사를 마치고 산책하느니라.

 

사리불아!

극락세계는 아름답고 기묘한 여러 빛깔을 가진

백학, 공작, 앵무새, 사리새, 가릉빈가, 공명조(共鳴鳥) 등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항상 화평하고 맑은 소리로 노래하는데..'

 

<아미타경>

 

< 대구 동화사 벽화 속의 극락정토 >

 

 공명조는 실크로드의 전설에 전해지는 새입니다.

그런데, 머리가 2개, 몸이 하나입니다.

 

각각의 머리 이름은 우파가루다와 가루다였습니다.

 우파가루다는 선한 반면 가루다는 악했습니다.

 

이들은 밤낮을 교대로 잠을 잤는데, 

가루다가 자는 동안 우파가루다는 

향기가 좋은 열매를 발견하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 열매를 혼자 먹는다고 해도

뱃속에 들어가면 우리 둘이 모두가 배부를 것이 아닌가.’

 

이러한 생각을 한 우파가루다는

가루다에게 알리지 않고 열매를 혼자 먹었습니다.

 

가루다는 깨어나 자신의 배가 부르고

향기로운 기운이 감도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우파가루다가 자기 몰래

향기 좋은 열매를 먹은 자초지종을 알고는 분노했습니다.

 

원한을 품은 가루다는 어느 날 독이 든 열매를 보고

우파가루다에게 복수할 생각으로 먹었습니다.

 

결국 독을 먹은 가루다와 우파가루다는 둘 다 죽고 말았습니다.

 

<공명조 >

 

구마라집 법사의 고향인 실크로드에는

이와 같은 공명조의 안타까운 전설이 전해집니다.

 

즉, 선과 악을 한 몸에 지니고 사는

인간 마음의 모순을 나타내는 새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같은 운명 공동체이면서도

서로 으르릉거리면서 사는 우리 인간들의 현실을 상징하는 새가 공명조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공명조일지라도 극락의 불국토에서는

참다운 생명과 환희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어떠한 악인이라도 극락에 오면

참다운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는 뜻을 전달하기 위해

구마라집 법사는 원전에 없는 공명조를 일부러 집어 넣어

극락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세심하게 표현했던 것입니다. 

 

<구마라집 법사가 상주한 중국 초당사>

 

4. 오실본 삼본의

 

구마라집 이전에도 번역상의 유의점에 대해

도안(道安)이라는 승려가 '오실본 삼불이(五失本 三不易)'이라는 제안을 했습니다.

 

오실본(五失本)은 번역 과정에서

원본의 형태를 잃게 되더라도 허용되는 다섯 가지 경우를 말합니다.

 

 첫째, 인도의 원전을 중국말로 번역할 때

원본의 어순을 그대로 살리지 못하더라도 중국식으로 도치하는 것입니다.

 

 둘째, 숫자에 대한 양식을 중국 방식으로 하는 것입니다.

 

 셋째, 번쇄한 설명을 삭제하는 것입니다.

 

 넷째, 계속되는 반복구를 생략하는 것입니다.

 

 다섯째, 같은 주제에 대해 중언 부언하는 것을 줄이는 것입니다.

 

삼불역(三不易)은 원본의 형태를 절대로

바꿔서는 안 되는 세 가지 경우입니다.

 

첫째는, 시대의 풍속에 따라 문장을 고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성인의 말씀을 세속적인 것에

맞춰 고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말법 시대의 천박한 사고로

부처님의 말씀을 함부로 고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도안은 번역으로 인해

원전의 본래 의도를 잃게될 것을 염려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원형을 손상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제거해야 할 부분은 중국인의 어법에 알맞게 문장을 구성하려고 했습니다.

 

구마라집도 이러한 점에 염두에 두었으나,

그의 번역 이론은 도안보다 훨씬 진취적이고 창조적인 해석 이론을 수용했습니다.

 

당나라 현장 법사(600∼664)의 번역은 범

어 원전에 따라 정확하게 번역했기 때문에 학자들은 이를 선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마라집 법사의 번역은

더 종교적이고 신앙적인 분위기를 갖게 해줘서

일반 불교도들이 독송할 때는 더 애호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승조'라는 유명한 승려는 구마라집 법사의 번역의 특징을

이전 번역가들과 비교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지겸(支謙)의 번역은 화려함(華)에 치우쳤는데,

구마라집은 그것을 고쳐 질박함(質)으로 만들었으며,

축법호(竺法護)가 지엽적인 것에 빠졌다면

구마라집은 그것을 간결함(簡)으로 만들었다."

 

삼장법사 현장의 경우에는 원전에 충실한 직역을 한 반면에

구마라집은 중국인들에게 잘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가감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그 문체가 학문적이거나 건조하지 않고,

서정적이며 종교적 감성을 자극하는 번역이었다는 것입니다. 


후대에 오역이라는 비난을 뒤집어 쓸 위험이 있지만,

독자들을 위해 그러한 선택을 했다는 것입니다.

 

구마라집 법사의 번역이 의역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번역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인 것입니다.

 

대표적인 경전이 구마라집 법사의 법화경입니다.

종교적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대표적인 번역으로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한편, 구마라집의 번역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원전을 독송하기 편하게 번역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우리들이 자주 독송하는 금강경이 대표적입니다.

 

금강경을 4자씩 6자씩 등등으로 박자를 끊어서 

독송하기 아주 편하게 번역하여 

사람들이 리듬감있게 독송하기 편하도록 번역하는 세심함이 있었습니다.

 

표음 문자인 산스크리트어와 표의 문자인 한자는

서로 언어적 구성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번역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두 언어의 차이를 파악하는 천부적인 감각과 함께

대중들이 종교적인 감성을 일으킬 수 있도록

운율에까지 신경을 쓴 구마라집 법사의 섬세함이 돋보이는 부분입니다. 

 

< 구마라집의 조국 쿠차의 키질석굴에 있는 창공을 날으는 자유로운 새 벽화 >

 

5. 음역

 

두번째로, 구마라집은 범본의 용어를

대부분 의역(意譯)하지 않고 음역(音譯)을 시도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이전의 번역가들은 남녀재가신자를

청신사(淸信士), 청신녀(淸信女) 라고 번역한 반면,

구마리집 법사는 우바새(upasaka), 우바이(upasika)라는 음역을 통해 번역했습니다.

 

위없는 깨달음을 의미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나,

모든 번뇌가 다한 적정의 세계를 뜻하는 니르바나를 "열반"이라는 음역으로

최초로 번역한 이도 바로 구마라집 법사였습니다.

 

이처럼 구마라집 법사는 새로운 불교 전문용어를 창출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 번역은 이전의 도가적이거나 유가적인 용어를 끌여들여

억지로 불교 용어를 설명하던 것에서 탈피한 것입니다.

 

구마라집 법사가 새롭게 불교 용어를 만들어냄으로써

기존의 격의 불교적 한계를 떨쳐버릴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던 것입니다. 

 

< 구마라집이 번역한 대승불교의 캐치프레이드 '색즉시공 공즉시색' >

 

6. 공사상

 

세번째, 구마라집 법사는 대승불교의 "공"과

"반야"적 개념을 정립시키는데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대승불교의 캐치 프레이드로 삼는

구절들은 대부분 그의 번역에 기인합니다.

 

예를들어, 반야심경에 나오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8글자를 창조해낸 것도 바로 구마라집 법사입니다.

 

'색'이란 형태가 있는 것을 말하고, 

'공'이란 실체가 없어 연기되어 있는 것을 말합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모든 것(색)은 무상하여 변하기 마련이지만,

이러한 무상성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속에 빠지지 말고

공성과 연기법을 바르게 통찰하여 고통이나 혼란에 빠지지 말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여덟 글자는 구마라집 법사와 같이

전란의 고난 속에서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나,

현실의 무상함과 모순에 고민하던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해방시켜주는 구원의 메세지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 마음의 자유 선언을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8글자로 축약시켜 번역한 배경에는

구마라집 법사가 대승불교로 전향한 후

대승의 "반야"와 "공"사상에 대한 철저한 인식을 하고 있었는지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구마라집은 <유마경>에서 

"번뇌시도량"이라는 유명한 번역을 남겼습니다. 

 

"번뇌 안에야말로 깨달음의 씨앗이 있다"는 그의 번역은

고난과 가혹한 인생 속에서 구원의 끈을 놓지 않고

분투했던 대승적 삶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구마라집 법사의 번역은 단순히 언어적 번역이 아니라

대승의 공(반야)사상에 대한 뚜렷한 자각을 바탕으로 한 번역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1,6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세속에서 살아가면서도 구원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대승적 삶과 공성에 대한 체득을 강조하는 대승 경전에 대한 번역본으로

가장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이 구마라집의 번역은

언어 감각이 뛰어난 한 천재의 번역이 아니라,

가혹한 현실 속에서도 결코 퇴전하지 않고

각성을 위해 노력하는 대승의 공성에 대한 체득이 바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이해되고

종교적 감성을 불러일으키려는 포교적 열의에 입각하여

섬세하게 이루어졌기에 후대 사람들에게 그의 번역이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